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8)명창(名唱), 수렴동(水簾洞)에서 득음을 하다

이득수 승인 2020.04.26 20:42 | 최종 수정 2020.04.26 20:54 의견 0

 

간월폭포의 측면사진
간월폭포 측면 [사진=이득수]

이 간월폭포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간월폭포가 아니라 그 폭포의 물줄기 뒤 수렴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시시피강의 나아아가라나 아마존의 이과수폭포는 물론 지상의 모든 자연폭포는 물길이 떨어지는 뒤 쪽에 오목한 바위공간이 있는데 이를 수렴동(水簾洞)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줄기로 대(竹)발을 친 것 같은 이 비밀스런 공간이 하나 생기는 셈이지요.

그런데 이 숨겨진 공간이 뜻밖의 용도를 가지는데 우선은 원숭이나 수달 같은 야생동물이 보금자리를 틀고 웅거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孫悟空)이 수백 마리 원숭이를 거느리고 별별 희한한 희학(戲謔)질을 다 벌인 수렴동이지요.

그러나 그 보다 더 아주 특별한 용도로 사람들이 이 수렴동을 찾는데 그건 이 사방이 막히면서도 요란한 물의 장막은 종일 벼락 치는 소리가 나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 그 소란 속으로 찾아오는 정신일도, 물아일체, 고요의 경지에서 피를 토하는 수련으로 자기만의 목소리, 즉 젖 먹은 힘까지 다 짜내어 각고 수련한 정신력에 우주의 호흡이 혼연일체가 될 때 마침내 이루어지는 득음(得音), 자신의 마음과 우주의 혼을 담을 수 있는 소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모든 음악과 조명이 다 초현대식 3차원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옛날 우리의 가객(歌客)들은 스승에게 회초리를 맞으며 배우는 수련을 거쳐 어느 경지에 이르면 이런 수렴동에서 홀로 수련해 자신만의 득음을 하여야 비로소 하나의 명창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입니다.

영남알프스 복합웰컨센터의 벽천폭포(인공). 폭포 물줄기 안쪽이 수렴동.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여섯 마당으로 정리하고 서편제와 동편제를 하나로 아우른 선구자 신재효나 절해고도의 천길 파도를 대갈일성 판소리 한 자락으로 잠재웠다는 전설의 명창 임방울 역시 이런 수렴동의 득음절차를 거쳤을 것입니다.

간월폭포도 예외는 아닙니다. 해방 전후 이 폭포의 수렴동에서 득음을 했다는 가수의 이야기기 여럿 전해지는데 그 대표적인 가수가 <탸향살이>와 <짝사랑>으로 유명한 고복수로 전해 듣고 있습니다. 이치적으로 따져보아도 해방 후 부산을 중심으로 귀환동포들이 모이고 피난민이 폭주할 때 얼마 안 되는 점령지이면서 가까운 간월폭포야 말로 바로 득음하기 가장 쉬운 장소였겠지요. 케이블카를 설치하느니 마느니 자꾸만 자연을 훼손해 관광지화 하는 간월산에 이런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다 있다니 말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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