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재는 옛날 영남알프스 일대에서 재를 넘어 언양현 넓은 들의 곡식에 울산바다의 생선이 올라오는 언양읍을 향한 가장 큰 고개였습니다. 배내골은 울주군 상북면 배내리에서 발원한 배내천이 봄마다 온산에 가득히 핀 배꽃을 싣고 구비구비 흘러내려 낙동강 하구인 양산 원동포구에 이르는 긴 하천으로 그 길이가 근 30km에 이르는 긴 골짜기 입니다.
산은 높고 골이 깊고 들이 좁아 손바닥만한 다락밭이나 화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배내골(언양읍에선 신불산, 간월산 너머 사는 사람은 마을이름이랑 관계없이 모두 배내사람이라 불렀음)은 옛날의 생활 중심인 어느 장을 봐다 먹느냐에 따라서 아래쪽 원동, 물금에서 생필품을 구하는 사람들은 양산배내, 위쪽 배내고개나 오두재, 간월재를 너머 언양장을 보는 마을들을 언양배내라고 불렀습니다.
해발 800미터도 넘는 간월재는 언양배내에서 언양으로 넘어오는 가장 큰 고개이며 높은 고개입니다(지금은 포장도로로 자동차가 다니는 배내고개가 있지만 옛날에는 그들의 목표인 장(場)터, 즉 언양장터와 가장 가까운 간월재의 통행량이 가장 많은 수밖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한 20년 전 부산 일대에서 유행한 술집형태인 <정구지찌짐, 속에 천불 막걸리 한 통>이라는 간판을 걸고 그 아래로 가로로 길게 여남은 개의 다 찌그러진 노란 양은주전자(부산말로 쭈구렁방탱이)로 손님을 끌어 고단한 도시의 삶으로 늘 지치고 외로운 소시민이 정구지지짐과 막걸리를 먹고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씻던 일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속에 천불'은 무슨 말이며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 말뜻은 하늘의 불, 그러니까 너무 넓고 크게 또 아득히 번져 도무지 끌 수 없는 불을 뜻합니다. 도시인의 삶이 그만큼 도무지 잠재울 수 없는 거대한 가난과 피로와 울분으로 가득한데 IMF의 기습에 텔레비전만 켜면 난장판이 된 국회와 데모대가 가득한 광장과 성난 군중들의 함성을 들어야 했던 그 시절에...
그러니까 정구지찌짐과 막걸리로나 끌 수 있는 그 천불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정말 그 단서가 엉뚱하게도 우리가 산책 중인 간월산에 그 열쇠가 있답니다. 기가 막히죠?
간월재는 한문으로 천화현으로 쓴다고 합니다. 하늘 천(天)에, 불 화(火), 고개 현(峴)자니 하늘 가득 불이 붙은 고개를 뜻하겠지요. 그런데 왜 그런 이름이 나왔을까요? 만약 천주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루한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수많은 벽안의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신도들을 살해한 신유박해(辛酉迫害), 기해박해의 조선말에 저 간월산 뒤쪽이자 그 유명한 파래소폭포 뒷면에 한국천주교의 대표적 성지로 김범우 신부와 김영제 베드로성인이 은거하던 죽림굴과 그들의 은신처인 산속마을 살티를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천년왕국 신라가 멸망한 이후 왕도 서라벌과 가까운 지금의 경주, 청도, 밀양, 울주, 양산에 이르는 거대한 숲지대 영남알프스는 고려를 비롯한 모든 나라의 임금이 늘 반란을 우려하는 불안한 눈초리를 보내던 곳이고 실제도 수많은 산 손님(山賊), 반란군, 숯쟁이나 심마니를 가장한 도피자나 사상범들 반체제 인사들이 명맥을 이어온 곳이고 임진왜란 때는 단조성에 웅거한 의병이 몰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 반란 사례를 든다면 신라에서 고려로 귀부한 고루한 사대주의자인 신라의 왕족이 대대로 고려에서 벼슬을 살다 마침내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의 대업을 맡을 정도였지만 철저하게 귀족과 문신에게만 권력이 집중되어 문약해진 고려 의종 때 연속되는 연회에 굶고 비를 맞으며 밤새 경비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한 호위병 무신(武臣)들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늙은 무신 이소응 장군을 희롱한 사건을 기화로 반기를 들어 긴 <무인시대>로 접어들며 세계대국 몽고에 맞서 강화도에 웅거하며 끝까지 항거하던 때였습니다. 서라벌 소금장수 출신 무장 이의민이 무신정권의 집권자가 되어 울산의 반란군 효심, 청도의 반란군 중 김사미가 영남알프스에 웅거했을 때 진압군으로 내려 보낸 자기의 장남 이지영과 반란군을 내통하게 한 사실도 다 있습니다. 그만큼 불온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당시 숯을 져 나르는 태기꾼과 심마니와 장꾼들은 물론 화전꾼과 은신자, 그 범죄자들을 추포하러 다니던 포졸은 물론 일년 내내 천지강산을 떠돌던 소금장수, 방물장수와 보보상, 남사당까지 영취산에서 신불평원을 지나 다시 간월산을 넘어 배내재에 이르는 긴 능선을 매일 지나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덮으며 우거진 억새, 싸릿대, 국숫대, 조릿대에 철쭉과 온갖 잡목들, 그중에서도 수많은 잔가지가 철망처럼 얽힌 개다래덩굴은 그들의 발목을 사로잡는 커다란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일정한 면적의 숲을 태워 곡식을 심는 화전꾼과 더불어 숯쟁이를 비롯한 모든 배내사람들이 일시에 산꼭대기에 불을 질러 수백만평 억새평원과 몇 십리가 되는 능선을 타고 주야로 불길이 타올랐는데 특히 달이 없는 그믐께는 그 불꽃이 하늘에 닿을 정도가 아니라 하늘전체를 불태우는 것 같았을 테니 자연 천불(하늘의 불)이란 말이 나오고 간월재가 천화현으로 불리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천불이나 천화현이란 말은 배내골의 산사람들이 부른 이름이 아니라 그 천불을 날마다 바라보던 산 아래 상북면 이불, 즉 이이벌사람들에게서 나온 이름이랍니다. 재미 있는 건 그 이이벌이라는 넓은 들로 울산 일대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다는 이불마을이 한자로 지화(地火), 즉 속으로 타는 불, 땅불이라는 뜻이라는 점입니다. <하늘에 천불>에 맞서 <강가의 땅불>이라는 의미의 이불마을의 땅불이야기로 다음 회를 이어가겠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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