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13)항암(抗癌) 특효, 첫 새우

이득수 승인 2020.05.02 20:16 | 최종 수정 2021.12.05 17:09 의견 0
내게 소중한 속살 토하(土蝦)를 조금 내어준 고마운 호수. [사진=이득수]

달포쯤 전입니다. 대문에서 들어오는 오른쪽 화단의 음습한 기운을 몰아내려 칙칙한 엄나무 고목하나와 숲처럼 얼크러진 죽단화와 황매화를 울타리 쪽으로 옮겨 심고 빛깔 좋은 강돌을 주어다 낮은 축대를 평평하게 고르니 집안분위기가 밝아졌다고 아내가 좋아했습니다. 

이튿날 중 밤새 바람이 몹시 불어 아침에 문을 여니 대문 파고라 위에 걸친 <제2회 조손시화전>의 플래카드가 늘어져서 그걸 바로잡으려다 그만 높이 1미터정도의 축대에서 떨어져 오른쪽 허벅지, 왼쪽 어깨와 가슴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마음 아파할까 크게 신음소리도 못 내고 며칠을 끙끙 앓고 정기진료를 받는 날 담당 여교수와 간호사가 암환자가 뼈를 다치면 큰일이라고 저보다 더 초주검이 되어 X-ray 사진을 판독하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어 한숨을 돌렸습니다. 

가장 심하게 다친 오른쪽 허벅지는 수십 대(代) 지게질로 진화(進化)와 단련을 거듭해 가히 금성철벽(金城鐵壁)이라 2, 3일 후 쉽게 나았습니다. 그런데 오른 쪽 어깨의 통증이 여간 아니라 물리치료를 받고 파스를 부치자 낫기는커녕 그 아픈 자리가 어깨에서 옆구리로 옆구리에서 허리로 내려가며 그 통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제가 몸이 무뎌 통증에 강해 쑤시고 아리고 지치고 우울하게 하는 것쯤은 음악도 듣고 글도 쓰며 잘도 버티는데 허리 쪽은 중추신경이라 그런지 너무 아파 이게 여자들의 진통(鎭痛)이니 대상포진만큼 아픈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왼쪽 팔꿈치 상단이 조금 아프기 시작하더니 다시 어깨로 올라가 허리로 내려오며 전보다 더 통증이 심해 앉고 서고 잠자고 자동차를 타기가 다 불편해 정말 울고 싶었지만 제가 조금만 아파하면 금방 눈물이 가득해지는 아내가 볼까봐 이를 깨물어야만 했습니다. 병원에선 진통제를 좀 강하게 처방해주었지만 별 효과도 없고...

그나마 아직 밥을 잘 먹고 산책과 글쓰기에 지장이 없고 몸무게가 줄지 않아 암 때문이 아니고 부상 때문이라고 자위하며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아침 저는 피하지 못할 고통이면 차라리 즐겨보자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창고에서 저수지용 커다란 3각 그물 5개를 찾아내어 마초의 식량인 사료와 된장을 개어 새우잡이 미끼를 만들어 넣고 제 주요 어장(漁場)의 하나인 모 저수지(영업상 비밀로 절대로 밝힐 수 없음)에 넣고 돌아왔습니다. 

필자의 비밀어장에서 잡은 토하. 가재도 몇 마리 보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제 오후 슬며시 한 두 개를 꺼내보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새우와 가재가 보였습니다. 아침 일찍 아내와 마초를 동행 그물을 터는데 새우와 가재 등이 근 1kg 이상 쏟아지자

“역시, 우리 영감은 쓸 만 해. 올해도 이득수 패밀리 20~30명이 토하(土蝦)가 들어간 최상급 김장을 먹겠는데.”
 
하고 하이파이브를 나무며 괜히 겅중거리는 마초를 데리고 돌아오는데 포토 에세이집 출판 관계로 인터넷신문 인저리타임의 대표인 전 국제신문 논설위원이 도착해 문학적 인터뷰는 미루고 새우자랑에 한참이나 열을 올렸습니다.

중간, 중간 아내의 차량지원을 받아 몇 군데 문학현장 방문과 식사를 다 마치고 손님을 보내고 나니 그새 새우를 깨끗이 씻어 팩에 나눠 담아 급랭(急冷)을 시킨 아내 왈(曰),
 
“야~, 우리 영감 하나가 아들, 딸에 장모에 처제 처남 셋, 남동생 하나, 누님 둘, 사돈 두 집까지 총 11집에 특급김장을 선물하는 구나. 거기다 올겨울 명촌별서를 방문하는 손님들도 별미를 맛보고...”
 
얼마나 표정이 흔쾌한지 제 통증도 잠깐 잊고
 
“오늘 같은 날 참으면 영감도 아니야.”
 
하고 면사무소 소재지 산전리로 나가 '짬뽕의 달인'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탕수육 소(小)자 하나에 사천짜장 하나, 도합 2만3000원을 들여 만족한 식사를 하고 탕수육 몇 조각을 남겨와 마초까지 기쁨을 나눴습니다.

커피까지 잘 마시고 나자 문득 이 산골어부의 시흥이 도도해지는데 명색 당구삼년(堂狗三年) 음풍월(吟風月)인데 명촌별서에서 5년을 보낸 동자(童子) 마초는 제 알아서 먼저 먹을 갈고 붓을 챙기기는커녕 탕수육별미에 기분이 좋아져 괜히 어둠이 내리는 대밭을 바라보며 컹컹, 두어 번 짖어보고는 느긋이 잠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그러면 어떠랴? 이미 시대가 좋아져 먹물을 가느니 컴퓨터 켜고 마우스 잡으면 되는 일, 아내가 듣는 연속극을 귀동냥하면서 옛날에 읽은 전라도 장흥의 올곧은 선비이자 술꾼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백련초해(百聯抄解)에서 읊은 율(律)

촌부일일(村夫一日) 일간죽(一竿竹)
시골영감 하루 행복 낚싯대에 달렸는데

 를 흉내 내어

 촌부일일(村夫一日) 일어망(一漁網)
 의외대풍(意外大豐) 토하만(土蝦滿)

 산골노인 하루 행복 그물 속에 담겼는데
 뜻밖에 어망 가득 저 살찐 토하 좀 봐,

 까지 잘 나갔는데 그만 시상이 끊어져 곰곰 생각을 더듬어 역시 김인후의 백련초해에 나오는

초려월조(草廬月照) 노처향(老妻香)
오두막에 달빛 드니 늙은 아내 향이 나고

 가 떠올라 

 토하대풍(土蝦大豐) 노처희(老妻喜)
 만면미소(滿面微笑) 구괘이(口掛耳)

 토종새우 풍년들자 늙은 아내 기분 좋아 
 얼굴가득 웃음 띠다 입이 귀에 걸렸구나.

 까지 간신히 구색을 갖추고 자랑도 할 겸 거실에 들어가니 이미 9시 뉴스도 끝나가는 시간이라 아내는 이미 꿈속을 헤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격심한 통증도 잊을 만큼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게 얼마나 더 여분의 날들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이런 소소한 행복 속에 그럭저럭 '여든'이라는 섬(島)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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