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33 봄날은 간다 - 처음 보는 으아리꽃
이득수
승인
2021.05.05 10:13 | 최종 수정 2021.05.08 08:47
의견
0
저는 낯선 꽃이나 식물의 이름을 주로 해방 직후 중학교 교과서인 식물도감을 보면서 찾는데 펜에 잉크를 찍은 그림이 무색에 종류도 많지 않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 <으아리>라는 꽃을 보고 도무지 실물이 떠오르지 않고 대중가요에 나오는 <으악새>처럼 좀체 실체를 짐작할 수 없어 영구 미제사건(?)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사월초파일에 아랫마을의 <보림선원>이란 조그만 암자에 아내를 따라 갔습니다. 아내 파우스티나는 성당을 다니는데, 청소년수련관에 같이 아쿠아를 하는 비구니스님과의 인연으로 초파일을 맞아 저의 건강을 비는 등을 달고 나물밥도 먹고 오자 하기에 따라나선 것입니다.
시간이 늦어 이미 식은 나물밥과 떡은 별로였지만 화단에서 희고 고운 꽃 하나를 발견하고 눈이 번쩍 띄어 이름을 물어보니 뜻밖에도 <으아리>라고 했습니다.
여덟 개의 꽃잎이 절이나 성당의 장식이나 떡살무니처럼 매우 단정하고 반듯하지만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가는 꽃잎, 대칭·균형·조화까지 미술적 요소를 다 갖추고도 무언가 부족한 듯한 소박한 모습이 ‘마음이 아름답다’는 뜻의 순수 우리말 <으아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준말이나 서울말 쓰는 사람들이 식물의 이름을 어떤 방법으로 짓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꽃들은 <아그베, 얼레지, 살갈퀴, 으악새, 으아리>처럼 어감이 억세거나 엉뚱하면서도 싱그럽고 감칠맛이 나는 이름이 많습니다.
믿음보다 회의(懷疑)가 많아 쉽사리 신앙마저 못 가진 제가 뜻밖에도 오랜 숙제 하나를 풀었습니다. 뜻밖의 선물에 역시 부처님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