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40 봄날은 간다 - 꽃보다 쑥갓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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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18:58 | 최종 수정 2021.05.1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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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중에는 화단에 심은 꽃보다 더 예쁜 꽃이 더러 있습니다. 우선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같은 과일나무의 꽃은 이 땅의 봄 한철을 주도할 만큼 아름다워 목련이나 벚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언제 꽃이 피는지도 모르는 벼나 감자, 심지어 무나 배추도 자세히 보면 꽤나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황량한 서역(西域) 땅에서 양귀비가 나오듯이 평범한 채소밭에도 아주 기가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데 그 대표적인 꽃이 수선화를 닮아 청초하기 이를 데 없는 부추(정구지)꽃이고 또 하나는 국화나 장미를 능가할 맵시나 색깔과 향기를 가진 쑥갓 꽃일 것입니다.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45년을 객지에 살던 제가 얼마나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으면
‘쑥갓 꽃 피는 고향 그리워라’
로 시작되어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호박도 심고 열무도 몇 골 흩는 시를 쓴 적도 있었지만 깜깜한 시골길의 어둠과 두엄냄새, 얄미운 모기, 파리를 싫어하는 도시에서 자란 아내를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퇴직 6년 만에 마침내 혼자 고향으로 돌아와 채전을 가꾸고 글을 썼는데 병이 나는 바람에 부산에서 외손녀를 보던 아내도 마침내 시골아낙으로 합류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꽃가꾸기는 물론 고추, 마늘, 감자, 옥수수 같은 채소농사에도 맛을 들여 이제 쑥갓 꽃의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지금 한창 미모를 뽐내는 노란 쑥갓 꽃을 올립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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