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꿈꾸는 도연명' 7 - 도연명 비켜가기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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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1 18:31 | 최종 수정 2021.09.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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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가 감히 제 처지를 위대한 시인 도연명에 한 번 비교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뱁새가 황새를 흉내내다 마땅히 가랑이가 찢어질 일이지만 그래도 저 역시 늙어 병든 시인이니 질끈 눈 한 번 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조상과 부모덕을 따지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저는 태수인 할아버지와 대장군인 아버지에 명문가의 규슈인 어머니를 가진 그분께 도무지 필적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의 생애와 화복을 좌우한다는 이름만 해도 도연명은 잠(潛)이라는 아주 침착하고 당당해 보이는 외자이름을 가졌는데 저의 이득수란 이름은 원래 아버지가 큰 덕(德)자 덕수로 지었는데 마을이장이 면사무소에 대신 출생신고를 하며 엉뚱하게도 얻을 득(得)자 득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뭐 그 시절에 아주 흔한 착오라고 할 수도 있지만 큰 덕(德)자는 크고 어질고 베풀고 완벽하다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의 글자임에 비해 얻을 득(得)자는 무언가를 챙기고 지켜야 하는 형이하학(形而下學)의 글자입니다.
또 글자의 모양을 보아도 <덕>자는 3개의 자모음이 서로 의지하며 잘 어울린 모양인데 <득>자는 한 생애가 위아래 세 토막으로 단절된 모양, 그래서 어쩐지 순탄지치 못한 제 생애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일개 마을이장의 착오로 한 사람의 이미지와 삶이 이렇게나 달라지다니요?
다음 처자식의 문제인데 도연명이 다섯 아들에 대한 꾸짖음과 한탄이 처절하면서도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일절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명문가의 딸로 부덕을 닦아 나무랄 데 없는 현모양처였나 봅니다.
저 또한 좋은 아내를 만나 평생을 의지하고 잘 먹고 잘 지내니 거의 같은 수준인 것 같고 도연명이 초개같이 벼슬을 버린데 비해 저는 거의 비굴할 정도로 그 복마전에서 살아남아 아이들을 공부시킨 바람에 제 아이들은 먹고살 걱정이나 부모 속을 썩이는 일은 없으니 그 하나는 제가 좀 다행인 것 같고요.
마지막 시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인 시심이나 혜안(慧眼)에 있어 저는 도무지 <신발 벗고 따라가도 못 따라갈>정도로 부족하고 더더욱 그 단아하고 초연한 기품을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세속의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여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거기다 어찌어찌 한 두 해 더 살아보려고 실낱같은 생명줄에 매달린 지금의 모습까지 호연지기를 잃지 않은 대시인에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절망을 않기로 했습니다. 제게는 천하의 도연명도 누리지 못한 호사, 꿋꿋이 노후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마초가 있으니까요.
(사진은 제 산책길에 따라나선 마초, 한참 앞서가다 제가 다기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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