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50 가을의 길목 - 호박꽃도 꽃이냐고?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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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13:52 | 최종 수정 2021.09.0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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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자를 보고 보통 호박꽃도 꽃이냐고 하는데 그 참 말도 아닌 소리입니다. 어설픈 선입관을 버리고 자세히 관찰하면 호박꽃만큼 예쁘고 장점이 많은 꽃도 없습니다. 우선 길쭉한 꽃대에 옛날 기차역이나 공원에서 보든 장명등(長明燈) 또는 초롱꽃처럼 멋지게 생긴 수꽃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김제 출신의 70이 다된 노총각시인 서규정이 ‘순아, 이제라도 네가 돌아온다면 나는 호박꽃 초롱 들고 마중 나가리.’ 라는 시를 쓴 일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수꽃보다 훨씬 크고 흐벅진 황금빛의 암꽃을 들여다본다면 왕관처럼 볼록한 네 개의 암술을 매단 고혹적인(어찌 보면 섹시함을 넘어 외설스럽기도 한)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 커다란 암술에 넉넉하게 꿀과 꽃가루를 담고 나비나 벌은 물론 개미까지 잘 찾아올 수 있게 네 개의 통로까지 뚫어놓은 세심함을 볼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아직 꽃이 지기도 전에 벌써 애호박이 맺지 않았습니까?
호박의 가장 큰 장점은 잎은 쌈으로, 애호박은 찌게나 나물로, 국수의 고명으로 또 누렁호박은 호박전, 호박범벅으로 먹을 수도 있고 부기를 빼는 한약재로 엑기스를 빼기도 하고 호박오가리로 말려 호박죽을 끓여먹을 수도 있는 용처(用處)가 많은 구황식물이라는 점입니다. 혈압, 당뇨, 부종에도 두루 좋다고 하니 가히 신의 선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거기에다 무엇보다도 황금빛으로 눈부신 호박꽃과 호박속이 있습니다. 누가 그런 속언을 지어냈는지는 몰라도 이제 부터라도 처우가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호박꽃도 꽃이냐?>에서 <꽃 중의 꽃 호박꽃>으로 말입니다. 하하하.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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