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59 가을의 길목 - 추석맞이 한시(漢詩) 한 수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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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3 17:07 | 최종 수정 2021.09.2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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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옵니다. 지난해 추석은 울타리에 손녀 셋과 할아버지의 시화를 걸고 뜨락에서 잠자리를 잡으며 참으로 즐거운 명절을 보냈는데 올해는 인도로 떠난 아들네 식구 없이 딸네 집 식구만으로 명절을 보내려니 많이 허전합니다.
드는 정 보다 나는 정이라고 이렇게 잠깐만 떨어져도 말할 수 없이 섭섭하고 아쉬운 것이 바로 가족의 정이겠지요. 그러나 자식을 멀리 보낸 우리 내외보다도 동갑짜리와 한 살 적은 4촌이 없어서 못내 아쉬울 외손녀가 너무 안쓰럽습니다.
지난해처럼 이것저것 음식을 많이 장만하지도 않지만 갈비를 재고 찌짐을 붙이며 조그맣게 한숨을 쉬는 아내를 보며 올해도 추석맞이 칠언절구(七言絶句) 한 수를 지었습니다.
小秋夕吟(소추석음, 추석전날에 읊조리다)
平里 李得守
淸風一過 世黃染(청풍일과 세황염)
穗黃陌黃 山村黃(수황맥황 산촌황)
遠邦子女 未歸家(원방자녀 미귀가)
門前凝視 衰翁愁(문전응시 쇠옹수)
소슬바람 한 줄기에 산야 물들어
벼이삭, 들판너머 마을까지 다 누런데
멀리 떠난 아들가족 올해는 안 온대도
담장 밖 흘낏대는 늙은 아비 마음이여.
- 0. 현대식 감각에 맞게 한시의 율(律)을 무시한 자유시임.
- 0. 소(小)추석: 언양지방에선 설, 추석, 대보름 같은 명절의 전날을 작은 설, 작은추석, 작은 보름이라 함.
- 0. 수(穗)는 이삭이란 뜻이지만 여기에선 벼이삭 또는 볏논을 지칭함,
- 0. 맥(陌)은 논밭의 동서(東西), 또는 가로(橫)로 된 둔덕을 말하지만 여기에서는 들판전체를 뜻함.
- 0. 감상 포인트: 1연(連)에서 4연까지 세(世), 촌(村), 가(家), 옹(翁)으로 점점 압축되는 간절한 기다림과 그리움.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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