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51 가을의 길목 - 모진 놈, 바랭이 풀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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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13:07 | 최종 수정 2021.09.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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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풀이 밭 매는 아낙이 가장 싫어하는 잡초 바랭이 풀입니다. 아무리 메마른 땅이라도 금방 뿌리를 내리고 끝없이 줄기를 뻗어나가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1m 이상 줄기가 뻗어 모든 농작물을 집어 삼키는 놈입니다.
저 놈이 얼마나 왕성하게 번지는지 저녁 답에 밭을 매던 아낙이 미처 못 뽑고 이튿날 가보면 하룻밤 사이에 한 뼘 이상, 몇 마디나 뻗어 ‘바랭이 풀은 하루 만에 고손자를 본다’는 말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금방 다섯 마디 이상을 번진다는 것이지요.
충청도사람 주병선의 노래 <칠갑산>에 나오는 ‘콩밭 매는 아낙네의 베적삼을 흠뻑 적신’ 잡초도 아마 저 놈일 것이고 태진아의 <사모곡>에 나오는 ‘앞산 노을 질 때 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 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를 괴롭힌 놈도 저 녀석이고 경상도 아낙 우리 어머니 명촌댁을 녹초로 만들었던 놈도 아마 저 바랭이 풀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존재 이유와 쓰임새가 있는 법, 빨리 자라고 영양분이 많아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은 물론 토끼나 고라니의 영양식이 되기도 하고 하루살이 같은 작은 곤충의 은신처가 되니 나름대로 생태계의 위치나 역할은 있는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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