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90 가을의 노래 - 가을비 내린 오후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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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00:12 | 최종 수정 2021.10.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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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개의 태풍으로도 부족했는지 종일 가을비가 내린 우중충한 오후에 길을 나섰습니다. 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비에 쓸려가기 아쉬운지 축축한 길바닥에 한사코 버티고 있습니다.
흐린 하늘과 우울한 낙엽들, 봄에 불 꽃 같은 전성기를 보낸 벚나무의 가장 큰 약점은 꽃이 진 4월부터 11월까지 긴 세월을 우중충한 쇠퇴기를 보내는 점인데 단풍마저도 그렇게 곱지가 못 하고 그냥 칙칙하고 꾀죄죄합니다.
마치 먹고살기 힘들던 우리 어릴 적 눈망울이 또랑또랑 예쁘던 산골소녀가 너무 일찍 도시남자를 알아 한창 나이에 아이를 줄줄이 달고 홀로 친정으로 돌아와 눈물바탕으로 늙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들 저 벚나무처럼 너무 화려한 젊음을 맞으려 했고 불나비처럼 젊음을 허무하게 낭비한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혼자 함부로 누군가를 좋아해 밀어붙이고 습관처럼 술을 마시고 밤새 음정, 박자가 다 틀린 노래를 부르거나 달을 보고 절규하던 젊은 날에는 그게 잘못 된 건지도 모르고 그런 젊음이 금방 끝난다는 것도 모르고 그 화려한 젊음을 다 소진(消盡)시켰으니 말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힘겹게 젊음의 강을 건너온 채 비에 젖은 낙엽을 밟고 쓸쓸히 걸어가는 늙고 병든 늙은이, 할배의 먹먹한 가슴을 짐작이나 하듯 오늘 따라 마초도 나부대지 않고 가만가만 걸었습니다. 가을은 역시 조락(凋落)의 계절, 먹먹하게 가슴이 저려오는 오후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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