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뜻밖의 귀촌(2)
노포동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울산행 1127 좌석버스에 타고 깜빡 잠이 들었던 열찬씨가 눈을 뜨니 시간은 10시 40분, 버스는 문수경기장 앞이었다. 얼른 버스에 내려 울산대정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하, 할아버지!”
웬 젊은이 하나가 깜짝 놀라 인사를 해 바라보니 뜻밖에도 백찬씨의 큰 아들 민우였다.
“어, 민우야. 니가 우째?”
열찬씨가 깜짝 놀라 몸 둘 바를 모르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할아버지가 뭐꼬? 큰 아부지지. 내가 그래 늙어 보이나?”
“아, 아닙니다.”
“그래 뉴질랜드 어학연수는 마쳤나?”
“예.”
“영어회화에 자신감은 좀 생기고?”
“예. 다면대화까지 연습 많이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좋은 소식이 있겠지. 지금 어데 가는데?”
“예. 학교도서관에 갑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예.”
공손히 인사를 하고 캠퍼스로 들어가는 아이의 등을 보며
(스물아홉인가 아무튼 서른이 다 되어가고 제 아비도 정년퇴직이 다 되어 가는데 큰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백찬씨의 큰아들 민우는 하루 종일 별 말이 없는 조용하고 착한 성격에 공부도 무난히 잘 해 정석씨와 더불어 서울로 진출해 집안의 대표주자로 쌍벽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고3시절 진학상담을 할 때 서울로 진출하기에는 성적이 조금 애매하다고 울산공대의 자동차학과로 진학했다. 울산대 설립당시 자동차학과자체를 현대자동차를 염두에 두고 개설한 데다 아비가 현대자동차의 장기근속자니 현대자동차에 취업이 되는 것은 따 논 당상 같았는데 졸업을 하면서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서를 내고 면접까지는 가는데 마지막엔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설마 제 이비가 다니는 회사에 취직이 되겠지 하고 기대하던 친척들이 저 애는 왜 저럴까 할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있었다. 아이자신도 무엇에 열중하거나 집착하는 성격도 아니고 부모가 특별히 교육열이 강하거나 세세하게 무얼 알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제 알아서 방치하는 바람에 그 흔한 자격증 한둘을 따거나 봉사점수를 따는 스펙이 부족할 뿐 아니라 재학 중에 남들이 다 가는 어학연수를 본인은 그렇게 절실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부모는 그런 제도자체가 있는지 그게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판이었으니 면접시험의 마지막 날 영어로 다면대화를 하면 말 한마디 끼어들지 못하고 물러서는 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갔다 오고 어느새 나이가 20대 후반이 되자 그간 제 아비를 따라 벌초, 묘사와 명절 등 언양출입에 빠짐없이 잘 따라다니며 특히 묘사(墓祀)날 큰어머니 영순씨가 만들어주는 1등 육으로 만든 살이 두꺼운 쇠고기 산적과 커다란 문어다리를 자른 숙회를 참 잘 먹었는데 어느 날 문득 얼굴을 보이지 않고 궁금해서 물어보면 제 아비어미도 뭔가 허둥대며 머뭇거려 이제 서로 민우나 취업에 대해서 말을 삼가게 될 형편이 되자
“여보, 우리 민우를 이대로 두어도 되나?”
“그럼 우짜겠노? 우리가 다 답답한데 제 부모나 당자는 얼마나 더 못 견디겠노?”
묘사를 마치고 조카 민우가 좋아한다고 산적과 문어숙회를 따로 한 도시락 싸서 제 아비에게 들려 보낸 뒤 열찬씨 내외가 한참이나 머리를 싸매며 의논하던 끝에
“우리 뉴질랜드에 갔을 때 김서방 저거 외사촌 형 있제?”
“그래. 경률씨 말이지. 사돈접대 한다고 오클랜드에서 숙소까지 두 시간이나 달려와서 시내에 데리고 가서 술대접을 하고 다시 데려다주던 사람 말이지.”
“그래. 맞아. 그 사람이 오클랜드에서 영어학원을 한다지.”
“한국유학생전문학원의 책임자로 있다고 했지.”
“맞아. 그러면 되겠네.”
의기투합해서 민우와 부모까지 명륜동 슬비네 만두가게로 불러 어학연수의 필요성과 비교적 비용이 싼 뉴질랜드에 외사촌형이 책임자로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현장에서 경률씨와 통화를 해 무조건 보내기나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서 바로 어학연수 1년을 결정했다. 경률씨가 사돈네 식구라고 끔찍이 챙기기도 했지만 원래 착하고 순한 아이라 아무 말썽 없이 열심히 공부해 영어회화가 날로 발전하고 다면대화도 제법 능숙해져 연말에서 봄까지 이어지는 신규채용에 날짜를 맞추어 귀국을 한 것이었다.
(잘 되어야 될 텐데...)
아이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는 순간 빵빵, 클랙슨이 울리며
“혹시, 이국장님?”
하얀 산타페가 하나 멈춰서더니 동그란 얼굴하나가 창밖으로 향하는 지라
“혹시 설계사무소?”
“예.”
하며 자동차를 한쪽으로 새우는데 길이 복잡해 뒷 차가 빵빵 클랙슨을 울리는지라
“보자아, 차 문 좀 여소. 내가 타지.”
“예.”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자, 공원이나 어디 차 댈 수 있는 곳으로 갑시다.”
해서 평소 예식장으로 자주 찾아오던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 울산대공원의 잔디밭 옆에 차를 세우고
“건축사 안병돕니다.”
“아, 예. 이열찬입니다.”
“국장님은 우째 그래 겁나게 서두시는지요?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요. 구청에서 민원업무를 보는 것은 물론 그걸 감독하는 입장으로 40년을 살아온 내게 서류조차 접수시키지 않고 막연하게 허가가 늦어진다고 하는 사람을.”
“예. 죄송합니다. 일을 여러 건 하다보니...”
“그 쪽 땅에 대한 정보를 독식해서가 아니고?”
“...”
“내가 고향에 돌아가면서 굳이 남에게 큰 소리 내고 싶지 않아요. 단지 당뇨가 심한 내가 운동사마 채전이나 일구고 아침저녁으로 글이나 쓰려는 그 소박하지만 평생을 꿈꾸어온 소망을 장난 비슷하게 무시하는 게 화가 나서 그렇지.”
“...”
가만히 도장을 꺼내 건네주고 그걸 받아 서류에 찍고 화장지로 인주를 닦아 공손하게 돌려주는 건축사에게
“윤희수씨라는 내 중학교동창이 동래구청 앞에서 큰 설계사무소를 하고 또 조기축구회에서 같이 공을 차던 정운모라는 친구도 울산에서 설계 일을 하는데 나도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그래도 택지개발부터 기본도면을 작성한 설계사가 일을 하는 것이 쉽고 편리할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시켰는데 이렇게 일을 지연시킬 줄 몰랐어요.”
“예.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 대단한 전문가한테 부닥칠 줄 몰랐어요.”
“하여간 앞으로는 차질 없이 잘 해주세요. 한번 실수는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나도 구청에서 감사계장, 감사실장을 4년간이나 한 사람이라 일부러 일을 지연시키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산타페를 돌려 다시 부산 가는 버스가 대는 곳에 데려다 주고 설계사가 돌아갔다.
남이 장에 가면 자기는 거름 지고 따라간다고 영순씨가 땅을 사는데 무단히 신이 난 사람이 사촌언니 미혜씨였다.
“영순아, 너거 땅 사논 데 한 번 더 가보자. 얼핏 봐도 골짜기가 오목하고 대밭이 우거진 게 포근하고 따뜻하고 사람 살기에 참 좋을 것 같더라.”
하며 열찬씨와 현서까지 태우고 명촌으로 가서
“언니야, 내 명의로 산 땅이지만 나는 아직 뭐가 뭔지 감이 안 잡힌다.”
“지금은 대를 빈다고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나중에 정지만 하면 반듯하고 잘 생긴 땅이네. 남향으로 집을 지어도 되고, 동향도 좋고.”
휙 한번 둘러보고
“이서방, 배고프지요?”
묻는 순간 영순씨가 푸훗 웃음을 터뜨리며
“알았다. 언니 니는 땅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언양 소고기가 묵고 싶어서 왔제?”
“가시나 눈치도 빠르다. 우째 알았노?”
사내처럼 잇몸을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꼭 그런 걸 따질 기 뭐 있노? 돌아 댕기다가 좋은 식당 보이면 일단 한 번 먹어보는 거고.”
“그건 그런데 담당 선생님이 고기는 먹어도 된다 카더나?”
“의사가 말 안 하면 그 뿐이지 굳이 물어보면서 까지 못 묵을 기 뭐고?”
또 비시시 웃는데
“하긴 우리 갑장 처형은 먹는 힘으로 살지. 그 좋은 먹성이 아니면 자궁경부암을 우째 이겼겠노? 지금 그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직 힘도 펄펄 넘치고 밥도 잘 묵는 거 보면 사람이 산다는 건 정말 밥심인 거 같아요. 기왕 언양에 왔으니 가천린포크에 가서 언양소고기나 실컷 구워먹읍시다.”
“하모.”
하고 곧바로 국도로 경주방향을 한참이나 달려 오른 쪽 가천린포크로 향했다. 열찬씨가 현서를 안고 연못의 황금잉어를 구경시키는 사이 두 자매가 고기를 한 아름 들고 나오는 지라
“얼마나 샀노? 우리 친구들끼리 오면 보통 두당 200그램, 액수로는 평균 2만 원정도 사면 실컷 먹는데?”
“말도 마소. 우리 세 사람 두당 300그램에 저 꼬마 현서 몫까지 100그램 더 보태서 1kg를 샀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음식이 달랑거리는 것, 그것도 특히 회나 소고기 등 모처럼 맛난 음식을 먹으며 양이 부족한 것이라는 미혜씨가 자리에 앉자말자 옛날 삼겹살집을 했던 경험을 살려 고기와 버섯을 알맞게 구워 고기를 잘게 썰어 아이에게 먹이느라 정신이 없는 영순씨 대신
“자, 우리 갑장 많이 드소. 내 술 한잔 부아주까?”
하고 소주까지 따라주는 지라
“처형도 많이 잡수소.”
“우리 영감도 없는데 처형은 무슨 처형? 갑장 친구지. 나는 인자 얼매나 더 살고 여기 이집서 맛있는 고기도 몇 번이나 더 묵을지 모르지만 갑장 제부는 우짜든동 오래 살며 우리 영순이 하고 맛있는 것 많이 잡수소.”
잘 익은 고기를 밀어주는 표정이 하도 비장해
“언니야, 와 이라노?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그래. 그렇제? 그렇지만 몸에 중병을 실은 사람이 살면 얼매나 더 살 끼라고?”
그 대범하던 사람이 목소리가 다 울먹울먹한 지라
“처형,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평소처럼 씩씩해야 우리 처형답지.”
열찬씨가 상추에 고기를 싸서 한 점 입에 넣어주자
“어서 봄이 와서 열무도 심고 고추도 심고 또 집도 지어서 내가 영순이 너거 집에 가서 한 밤 자면서 고추도 좀 따주고 또 고기도 구워먹고...”
“그래. 그래 하고도 남지. 언니는 아직 힘이 장산데.”
“그래 말이다. 아직은 괜찮은데 어느 날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금방 끝장이란다. 제비족들 말마따나 <한방의 부루스>란다.
"설마?“
“그러니까 ‘있을 때 잘 해.’가 아이고 ‘건강할 때 많이 먹고 많이 놀아라.’ 다.”
“...”
설날 오전 열찬씨 부자가 언양산소에서 성묘를 하고 백찬씨에게
“우리는 명촌에 땅 사논 것도 둘러보고 누님도 만나러 갈 건데 너거는 우짤래?”
하자
“기어이 땅을 샀는가베요. 한번 가봅시다.”
하고 민우, 성우 두 아이와 함께 등말리 현장에 도착해서
“이 외진 산골짝에 도로는 무슨 도로가 이래 넓노?”
하고 한참이나 둘러보다
“대밭만 잘 정리하면 집터는 오목하고 좋을 겁니다. 옛날에 여기 집 있던 생각이 나네요.”
“그래. 나중에 집짓거든 자주 놀러오너라.”
“그럼 당장 집을 지을 겁니까?”
“나는 그냥 컨테이너나 하나 갖다 놓을까 하는데 너거 형수는 며느리도 오고 딸도 오고 할 테니 정화조를 묻고 수세식화장실이 딸린 작은 집을 지었으면 한단다.”
“하긴 집을 지으면 좋기는 한데 돈이 많이 들어서 탈이지요. 땅만 해도 꽤 비쌀 텐데 형님이 보기보다 능력이 있네요?”
“뭐 있는 돈 딸딸 긁어모으고 은행 빚도 좀 내고 정석이도 좀 보태고.”
“그래 한 2억 들었능교?”
“그렇지.”
“암만 조립식으로 짓는다 해도 집 짓는데 만해도 한 5천은 들 텐데요?”
“또식이가 말하기로 적어도 열세 평 정도는 되어야 집 모양이 나는데 남들에게는 평당 300이지만 외삼촌한테는 250에 해준다고 하더군.”
“어데 그것만 들겠능교? 땅도 고르고 전기, 수도도 넣고 울타리도 치고.”
“그래 무엇보다 대나무 베어내고 땅 고르는 기 제일 큰일이다. 지금은 그냥 대밭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대밭가운데로 커다란 도랑이 하나 있더라. 아마 저 골티골짝에서 옛날부터 흘러내러 오던 도랑이 요새 아무도 관리 한 하는 사이에 넘쳐흘렀는지 커다란 바위가 다 굴러다니고.”
“골치 아프겠네. 형님 단디 하이소. 집 공사는 보통 처음 예산보다는 몇 십 푸로 더 든다 카던데. 거기다가...”
“거기다가?”
“또식이 가가 공사를 잘 할란지 모르겠네.”
“요즘 술도 안 먹고 교회 열심히 다녀서 집사까지 한단다. 술 안 먹으니 그리 착실할 수가 없다. 사람이 시원시원 대범한 적도 있고.”
“아무튼 형님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나는 와 자꾸 골치 아픈 명촌쪽으로 붙는지 모르겠네.”
“어이, 이 사람 봐라. 사람이 ‘길을 두고 뫼로 가느냐?’ 는 말이 있듯이 가까운 형제 두고 어데 낯선 데로 간다 말이고?”
“그렇지만 자영 살았을 때부터 형님이 소 사주고 논 사주고 얼마나 맘고생이 많았소? 처음부터 아예 떼먹을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한테 도라는 데로 다 주었으니 말입니다. 형님은 집도 없이 셋방살이를 전전하면서.”
“우짜겠노? 형제간에. 그 때 명촌에 한번 올라오면 묵을 것도 없는 집에 아이 다섯이 버글버글 하는 것이 기가 찼다 아이가?”
“그 돈 아직도 못 받았지요?”
“연산동에 아파트 살 때 본전 100만원 받았다. 15년 만에.”
“처음 백만 원이면 꽤 큰돈이었을 텐데?”
“공무원 월급 일 년 치가 넘었지. 내가 월급으로 7.8만원 받았으니까.”
“나중에 받았을 때는?”
“한 달 치가 좀 모자랐지. 물론 내가 승진도 하고 호봉도 많이 올랐지만 그 때 내 월급이 백 몇 십만 원 했으니까.”
“아니 그러고도 또 명촌에 오고 싶은 생각이 다 들어요?”
“우짜겠노? 형제간인데. 그리고 누님 말고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니까 조카한테는 절대로 내색하지 마래이.”
하고 금찬씨 댁에 들러
“누님, 설 잘 쑀능교?”
식구가 많고 작은 집 또식이네 네 아이가 자주 들랑거려 늘 열려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생 오나? 정석이도 오고. 아이구 이기 누고 울산동생하고 민우, 성우도 우리 집에 다 오네.”
반색을 하는 금찬씨에게
“할마시 잘 있었능교?”
백찬씨가 한 마디 툭 던지고 소파에 앉으며
“그런데 집안이 우째 이래 설렁하노? 일식이 내외는?”
“저거 동서집에 간다고 갔다. 또식이, 외식이도 아침 명절예배보고 다 저거 처가로 가고 오후에 현주식구가 온단다.”
하고 소반에 쌀강정과 홍시 몇 개를 담아오며
“우짜노? 우리 집엔 제사를 안 지내 묵을 것도 없다.”
민망한 표정을 짓는데
“암만 그래도 사위도 오고 할 건데 이래 묵을 기 없으면 우짜노?”
“몰라. 며느리 지가 안 하는데 내가 우짜노?”
“누님, 현주 신랑이 누님 사윙교? 며느리 사윙교?”
“몰라. 내가 정지출입 안 한지가 십 년도 넘었는데.”
“명절에 사위가 오면 씨암탉 잡는다는데,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사위, 힘들게 본 사윈데?”
평소 과묵한 편인 백찬씨가 뭔가 맘이 상한 모양이었다.
“아따! 그 사람 내가 암죽 먹여가며 키운 동생이라고 그러나 엔간히도 딱딱거리네.”
“하는 기 골치 아프니까 그렇지.”
같은 누님과 남동생의 사이, 그것도 어릴 때 직접 열찬씨를 업어 키운 순찬씨, 백찬씨를 업어 키운 금찬씨와는 뭔가가 많이 달랐다. 순찬씨는 다섯이니 되는 자기 자식과 별 늘 푼수도 없이 술을 즐기고 가끔 삐지기 반복하는 남편과 하느님을 섬기고 교회와 전도에 열심인 그 복잡한 가운데서도 열찬씨에 대한 어떤 신앙 같은 믿음과 애착이 있어 무엇하나라도 가져다 먹이려 하고 누구에게라도 내 동생이 이런 사람이라며 자랑하려 하고 늘 못 봐서, 못 챙겨주어서 애가 타는데 금찬씨가 백찬씨에게 대하는 태도는 딴 판이었다.
엄마가 마흔넷에 노산이 되어 아이는 안 나오고 힘이 빠져 누웠는데 이러다간 아이는커녕 아이어미까지 잃겠다고 대동아지매, 조일아지매가 난리가 나서 정거장마을에 흘러들어온 아편쟁이 의사 김종률씨를 데리러 간 일, 그리고 젖이 안 나와 자기가 흰떡을 빻아 암죽을 끓여 먹여 키운 일, 낮에는 “자야, 호박. 자야, 호박!”하며 어쩌다 한 번 맛본 수박을 내어놓으라고 등에 업힌 채 아우성을 치고 밤에는 복숭아나 사과를 팔러 배내나 소야까지 갔다 오는 어머니 명촌댁을 기다린다고 웃각단 담벼락에서 껌껌한 마구뜰을 향해
“엄마 오나? 엄마 오나아?”
등에 업은 백찬씨를 추스르며 옆에선 열찬씨를 달랬다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덕찬씨가 늘 그냥 무한의 애정을 퍼붓는데 비해 금찬씨는 늘 자신이 수고했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고모, 절 받으세요.”
정석씨가 금찬씨를 앉히고 민우, 성우와 셋이서 절을 하고 하얀 봉투하나를 꺼내주니
“자, 누님 내 업어 키운다고 고생했는데.”
백찬씨도 지갑을 열어 돈 한 푼을 주었다.
“받아도 되겠나? 내가 뭐 한 것도 없이...”
하면서도 금방 입이 벌어지는데
“할머니, 손님 오셨네요?”
2층에서 왠 청년하나가 눈을 비비며 내려왔다.
“그래 천태야, 할아버지들 하고 삼촌들 오셨다.”
하고 인사를 시키니
“일식이 큰 아들인가베. 제대했나?”
“예.”
“지금은 뭐 하노?”
“예. 요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두 형제가 한 마디씩 물으며 엉겁결에 절을 받자
“제가 커피 끓여올 게요.”
하고 금방 커피를 끓여왔다.
“야, 아메리카노다.”
당숙뻘이 되는 민우, 성우가 동년배 조카가 끓여주는 커피를 맛있게 먹는데
“참, 손주가 하나 더 있제?”
열찬씨의 말에
“지금 잔다.”
금찬씨가 현관 옆에 붙은 방을 가리키는데
“직장에서 밤일 하고 왔나?”
“아니 제대한 지 근 일 년이 되었는데 저래 주야로 자면서 취직할 연구만 한단다.”
“학교는 졸업하고?”
얼핏 대학에 다니다 군에 갔다는 기억이 난 백찬씨가 묻는데
“그것도 그냥 중도작파한 모양이다. 세상에 무슨 연구가 그리 많은지...”
금찬씨가 혀를 끌끌 차는데
“깨워 올까요?”
형 현욱이가 방쪽을 바라보는데
“나 놔라. 나오기가 좀 그럴 거다.”
만류한 열찬씨가
“차 다 마셨제?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니 우르르 일어섰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