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신고리5.6호기 백지화지지 부울경교수모임 탈핵 버스킹 행사. 가운데 하모니카 연주자가 필자인 김해창 경성대 교수, 왼쪽은 안영철 부산대 교수.
지난해 6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5·6호기 건설 허가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고리 일대는 무려 9~10기가 가동․건설 중인 세계 최대 ‘핵단지’가 됐다. 더구나 고리에서 반경 30km 내에는 인구가 380여만 명이 거주하는데, 이처럼 인구 밀집지역에 거대 핵단지가 건설된 경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대로 ‘탈원전’을 선언하자 소위 ‘핵마피아’들의 견고한 이권트러스트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보수언론을 통해 쏟아내는 ‘사실 왜곡’ ‘거짓뉴스’는 연일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에 맞서 탈핵부산시민연대와 신고리5·6호기 백지화 부산시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생존권 보장과 에너지정책 전환 촉구 차원에서 ‘신고리5․6호기 백지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신고리5․6호기 백지화를 위해 주권자이자 소비자인 우리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핵마피아’가 아닌 우리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 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백지화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10가지만 들겠다.
첫째, 지난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 허가 자체가 ‘불법,졸속’이었다. 원안위 자체가 규제기관이라기보다는 원전 진흥을 위한 정부의 거수기에 불과했다. 여야 추천위원 7대 2의 고착화된 의결구조 자체가 잘못된 조직인 데다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투표를 강행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당시 야당 추천 위원의 추가질의도 보장하지 않았다.
원안위가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예비안전성 보고서를 통해 충분히 검토했다고 강변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검증은 ‘원자력마피아’의 형식적인 ‘셀프검증’에 불과했다. 원안위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수행한 안전성 평가의 여러 시나리오에 대해 기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둘째, 신고리5․6호기가 건설되면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최악의 핵발전소밀집지대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부울경 주민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다. 반경 30km 내 38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부산항, 울산공업단지 등 우리나라 산업의 핵심시설이 밀집한 부울경 지역이 피해 범위임에도 원전 인근 5km 이내 주민의 형식적인 동의만 얘기하고, 중대사고시 대피 문제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특히 이와 관련해 다수호기의 안전성 평가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관한 어떤 기준이나 내용도 없었다. 원전 1기의 개별심사와 유사한 기준만을 적용하면서, 다수호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는 고의로 생략한 것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14년 5월 다수호기의 위험성 평가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달링턴 신규 원전의 준비허가를 보류시켰고, 캐나다 원안위도 원전사업자에 다수호기 위험성 평가 방법을 개발, 제출할 때까지 운영허가 갱신을 보류시켰다. 이에 비하면 원안위의 결정은 범죄적 수준이라 할 만하다.
셋째, 원안위는 미국 원전규제위원의 원자로 위치제한 기준인 ‘10CFR 100.11’을 고시로 준용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 그 예를 제시한 ‘TID 14844’에 따르면 신고리5․6호기는 1기당 인구밀집지로부터 32~34km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원자력안전기술원은 그 규정은 예시에 불과하다며 4km를 적용해 문제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법규위반이다. 개정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울산 30km, 부산 21km로 잡아놓고도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이렇게 치면 수도권 지역에 4km 이내에 인구 2만5000명 정도만 사는 곳에 신고리5,6호기를 지어도 아무런 기술적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국민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신고리5․6호기 건설허가는 잘못된 것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넷째, 한국수자원원자력(주)은 지난해 6월 원안위의 건설허가를 받기 2년 전부터 이미 4조원에 이르는 원자로 등 주기기를 임의로 발주해 건설허가 전에 이미 18.8%의 공정률을 보였다. 건설허가가 나기 전 이미 전체 사업비 8조6254억 원의 절반을 넘는 4조6562억 원을 계약, 발주했으며, 현재 매몰비용 운운하는 약 1조6000억 원이 집행됐다고 한수원이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는 원안위와 한수원이 사전에 짜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것이 적폐이다. 최근 공론화 과정에서 28.8%의 공정률 1조6000억 원의 매몰비용으로 ‘건설 중단’이 부당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이야말로 촛불민심이 말하는 적폐이자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적폐를 바로 잡는 차원에서 시민들이 공익감사와 국민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러한 적폐를 바로 잡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그리고 매몰비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추가비용이다. 앞으로 건설비용과 폐로비용,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등 최소 10조 원 이상의 추가비용을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투자할 경우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다섯째, 지진, 특히 활성단층대 조사 연구 결과나 지진학계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지극히 좁고 짧은 기간의 몇 안 되는 근거를 가지고 활성단층대에 관해 문제가 없다며 넘어갔다. 한반도 남동부지역인 월성․울진․고리원전지역은 역사지진으로 볼 때 진도 7.1 이상의 지진이 수차례 일어났고 활성단층이 존재하는 지역임에도 이런 우려가 무시됐다. 엉터리 건설 허가가 난 지 석달 뒤에 국내 최대의 규모 5.8의 경주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한수원은 2009년 20억 원의 용역비를 들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연구개발 용역’(2009년 당시 소방방재청)을 몰랐다며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지적을 지난해 국감에서 받았다. 또 한수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제출한 2차 자문보고서(2014.12.5)에서 웅상단층의 단층길이가 ‘4km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적시하고도 원안위에 보낸 최종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2016.4.29)에서는 이를 ‘수십m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으로 바꿨다. 그럼에도 원안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건설허가’를 내줬다. 이러한 ‘불법·졸속허가’에 대해 이제 국민이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
여섯째, 신고리5․6호기를 비롯해 국내 원전은 테러나 전쟁 시 원전 공격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9.11테러 이후 미 해군특수부대의 원전 침입 모의테러훈련 실시 결과 11개 원전 가운데 7개 원전에서 노심파괴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미 핵관리연구소가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트럭폭탄이나 자폭하는 경우 원자로의 내부를 알면 주배관의 파괴나 계통장치의 기능마비를 일으키기는 어렵지 않고, 내부 협조가 있을 경우엔 노심파괴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원전이 IS와 같은 테러집단이나 전시 군사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에서 전시 또는 준전시에 고리일대가 1차 공격대상이 될 가능성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이렇게 밀집된 ‘핵단지’에 대해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대책이 있는가?
일곱째, 일상화된 원전 관련 부정부패 사고은폐로 인해 원전 운영의 안전성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2월 고리1호기 정전사고 은폐사건이다. 2012년 7월 신월성1․2호기, 신고리1~4호기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자료 위조사건은 그동안 돈을 받고 납품, 중고품 납품, 짝퉁부품 납품, 훔친 후 재납품, 품질보증서 위조납품 등에 이어 시험검증기관이 스스로 관련 자료를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013년 7월에는 한수원 김종신 사장이 1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2012년에서 2014년 2년간에 무려 89건 205명의 원전업계 관계자가 원전비리로 1년 이상의 형을 받았다. 지금까지 원전업계․학계에서 이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나온 적이 없다. 원전의 안전은 바로 부실․비리․은폐를 막는 데서부터 나와야 한다. ‘얼렁뚱땅’ 건설을 추진하는 잘못된 관행을 우리 국민들이 이참에 바로 잡아야 한다.
여덟째, 전력소비가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 이렇게 위험한 원전을 새로 더 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 예측과 달리 2014년 0.6%, 2015년 1.3%로 최근 전력소비증가는 정체로 돌아서고 있다. 한마디로 건설타당성이 없다. 포화상태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서두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원전 건설비용을 대기업에 밀어주고, 전기를 과소비하는 구조를 만들고, 전체 전기의 13%밖에 안 쓰는 국민들에게는 11.7배의 누진요금을 물리는 게 과연 정상적인 국가행정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8차 전력수급계획 워킹그룹에선 박근혜 정부때 설정한 7차 계획과 달리 2030년까지 무려 원전 8기에 해당하는 11.3GW의 전력수요가 과잉예측됐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장기적인 면에서 경제성장률의 둔화 그리고 인구감소를 고려한다면 더 이상의 원전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 있는 원전도 조기 폐로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아홉째, 세계는 탈핵으로 가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만이 아니라 이웃 대만도 탈핵에 들어가고 있다. 탈핵이 대세이고 원전산업은 사양산업임을 알 수 있다. 원전산업동향보고서(WNISR)에 따르면 원전은 1995년 세계 전력의 17.6%를 차지했으나 2015년 말엔 10.7%로 떨어졌다. 현재 전 세계에 31개국에서 402기가 가동하고 있는데 이는 2002년의 438기보다 36기가 줄었다.
현재 원전의 연간 발전시설 용량 348GW는 2000년 수준과 같다. 즉 15년 전에 비해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전 세계서 폐로된 원전의 평균수명은 29년이다. 신고리5·6호기의 설계수명은 60년이다. 우라늄 가채연한이 60년 정도이다. 전 세계 투자는 2015년 현재 원전보다 태양광, 풍력에 각각 8배, 15배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 불과 3년 뒤에는 태양광(130원/kWh)보다 태양광(80원), 풍력(70원)으로 훨씬 싸지는 ‘제너레이션 패리티’가 도래한다. 과거에 매몰될 것인가? 미래를 새롭게 열어갈 것인가? 우리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사회를 선택해야 한다.
열 번째, 신고리5․6호기 백지화는 바로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지금까지 에너지는 오로지 국가정책으로, 지자체나 주민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돼왔다. 특히 소위 ‘핵마피아’라고 하는 정치권․관료․업계․학계․언론계 등에 의해 원전드라이브정책이 묻지마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제 ‘에너지 분권시대’이다. 분권형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수도권의 경우 에너지 생산은 매우 낮은데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쓴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밀양송전탑 사태’와 같은 지역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폭력’을 당연시 해왔다. 그러나 이제 가능한 한 지역특성에 맞게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우선 소비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원전이 안전하다면 수도권에 원전을 지어라. ‘다수호기 위험도 없고, 지진 위험도 적고, 한강과 서해안의 냉각수를 갖고 있고, 수도권 주변 4km 이내에 인구가 적은 곳’이라는 기준을 보면 신고리5․6호기 건설 조건보다 나쁠 게 하나도 없다.
수도권의 전력 사용을 위해 지역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폭력’이 계속돼선 안 된다. ‘핵마피아’의 이익보호를 위한 정책, 과거에 매몰된 에너지정책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주권자이자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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