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54 - 이 시대의 반동분자라고?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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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11:53 | 최종 수정 2023.08.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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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반동분자라고?
위 사진의 안내판에서 제가 평범한 여행자라면 어디로 갈까요? 마땅히 유서깊은 온천지대인 수안보로 가서 몸을 풀겠지요. 이 길 안내판의 주목적도 수안보로 가는 사람을 위하여 오른쪽으로 잘못 가지말라고 일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른쪽으로 갑니다. 수안보 쪽이 푹 쉬러 가는 휴식의 길이라면, 이화령 쪽은 힘들게 걸어 올라가는 고난의 길이겠지요. 남들은 모두 왼쪽으로 차타고 가는데, 저는 홀로 오른쪽으로 걸어 갑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이런 일들이 있지요. 저는 그냥 걷는 길을 그렇게 갔지만, 어떤 이들은 인생 자체를 그렇게 산 사람들이 있지요. 남들은 거의 다 이쪽으로 갔는데, 그들은 저쪽으로 갔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공자가 있지요. 대개 우리는 공자의 유교사상이라고 하면, 체면치례, 허례의식 등 고리타분한 전통을 떠올리지요. 그러나 이는 너무너무 무지무지 아주아주 공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지요. 조선시대는 2500여년 전 공자의 말보다 유가 사상을 재해석한 1000년 전 주자의 글을 받아들였습니다. 또 주자의 사상을 형이상학적으로 더욱 극단화시켜 사변적 성리학으로 승화시켰으며,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은 우물안 개구리 꼰대들의 이념이 되며 오로지 자신들 정치권력의 추악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교하면 형식적 겉치례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공자님 살아생전 말씀을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를 읽으면 공자라는 인물이 형식적인 겉치례와 전혀 거리가 먼 유머있는 매력남임을 느낄 수 있지요. 그는 전쟁이 난무하던 춘추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주로 갔던 제도의 길, 전략의 길을 가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길, 순리의 길을 갔던 사람이지요.
만일 저도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왼쪽으로 갔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수안보에 들려 온천이 어쩌고 저쩌고, 수안보에 가면 어느 유적지나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이 좋고, 어느 음식점에서 무슨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고 하는 평범한 여행기를 쓰게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오른쪽으로 갔기에 이다지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생각기를 쓰는 게 아닐까요? 좌우지간을 따지는 요즘, 저의 유별남 때문에 저는 이 시대의 반동분자로 몰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덕분에 공자처럼 인간의 길을 가는 우리 시대의 순리주의자이고 싶습니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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