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 갑철과 자영②
1-2. 꺾여진 야망
박기철
승인
2023.11.17 14:59 | 최종 수정 2023.11.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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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物權色
1-2. 꺾여진 야망
그 일 이후로 나는 한달 종안 정신없이 지냈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진하느라 바빴어. 지금 하는 얘긴데 우리 집안이 대단했어. 삼촌이 왕이었지. 사람들한테 신망이 좋았어. 삼촌은 돌아가셨어도 조카였던 나는 나름대로 정치적 영향력이 컸어. 야망도 컸지. 내 꿈은 농사가 잘되는 비옥한 섬을 지배하여 우리 식민지로 삼는 거였어. 거기서 나는 왕처럼 살고 싶었던 거야. 나 살던 동네가 아주 척박했었거든.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는 기름이나 과일 농사나 될 뿐 목구멍에 풀칠하는 곡식 농사가 불가능한 거친 땅이었어. 먹을 양식이 절박했던 자들은 내 조언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 날 싫어하는 놈들이 많았어도… 내가 그 동안 엄청나게 설치고 다녔거든. 드디어 나는 서른 살 젊은 나이에 제독이 되어 폼나게 출병하려고 했지. 농사지을 땅을 정복하러 떠난다니 신났지.
갑철이 정말 잘 나갔을 때네.
내 인생의 황금기였어. 열정도 패기도 있었지. 전함이 출발하기 바로 전날에 나는 같이 떠날 부하들과 같이 저녁밥을 먹고 있던 참이었어. 그런데 우리 시의회에서 보낸 전령이 문서를 가지고 급작스레 왔더군. 전령이 보낸 문서를 보니까 이랬어. “더 이상 전진하지 말라. 오늘 당장 회군하라!” 아니 이게 뭔 개소리야. 떠나기도 전에 무슨 회군이란 말이야!
아이고! 황당했겠다. 도대체 떠난 지 하루도 안 되어 돌아오라는 이유가 뭐였어?
신전을 모독했다는 죄였어. 도대체! 구체적인 신전 모독의 내용은 쓰여있지 않았어. 하지만 내 머릿속엔 전광석화처럼 한달 전 사건이 떠올랐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들어간 신전에서 남성 신의 거시기를 똑 부러뜨린 사건! 내가 부러뜨린 짓도 아니고 같이 간 여자애가 술 취해 꽉 움켜쥐다가 실수해서 부러뜨린 사건 말이지.
어머나! 그때 친구가 집에서 가져온 접착제로 잘 붙였다고 했잖아?
그랬었지. 잘 붙었어. 그런데 그때 염려는 되더라구. 저게 떨어지면 어떡하지? 정말로 나중에 접착제로 붙인 게 약해져서 똑 떨어졌나봐. 내가 출병하기 며칠 전에 아! 난리가 났겠지. 그때 신전에서 우릴 보던 여자가 있었다고 했잖아. 아마도 신전에서 일하던 그 여자가 우리 일행에서 가장 얼굴이 잘 알려진 날 알아보고 내가 한 짓이라고 고발했나봐. 그때 날 보던 그 여자 표정이 좀 이상했어. 나한테 말을 걸고 싶었던 눈치였거든. 뭘 물어보려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따지려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갑철이 잘난 얼굴을 알아본 게 화근이었네. 아무튼 어떻게 했어? 회군 명령을 퉁치고 가던 길을 갔어? 아니면 회군 명령을 받들어 돌아갔어? 내가 예상하기론 갑철이 성격상 그냥 고고씽했을 것 같은데…
늦은 밤이었으니 당장 어찌 할 순 없고 밤새 고민을 많이 했지. 갈거냐? 말거냐? 내 인생이 달린 문제였어. 내가 돌아가서 내가 그런 짓을 벌인 게 아니라고 항변을 할 순 있겠지. 그런데 그런게 먹힐까 생각했지? 물론 왕이었던 삼촌이 살아계시다면 나를 어찌 구제해 줄 순 있겠지만 이미 돌아가셨는데… 평소 나를 시기 질투하며 모함할 게 뻔한 그 질긴 세력들한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 나의 든든한 빽이었던 삼촌도 없는 마당에 내가 만일 돌아 가면 나는 죗값을 톡톡히 받을 게 뻔했어.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서 신성모독은 아주 중대한 범죄거든. 사형받을 수도 있었어. 결국 나의 선택은 뭐였을까?
아니, 고거 하나 부러뜨린다고 사형이라고? 말도 안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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