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2. 을식과 축희⑤
2-5. 드디어 시작된 궁전 생활
박기철
승인
2023.12.07 11:34 | 최종 수정 2023.12.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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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2-5. 드디어 시작된 궁전 생활
이 세상에 평판한 일이 어디 있겠어. 그것도 평민이 왕궁에 들어가서 사는데 눈초리들이 매서웠어. 당시에 왕궁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다고 소문났었지. 다른 나라에서 다들 따라한다고 했었지. 그런 엄청난 궁에 들어가 살려니 처음엔 좀 주눅이 들더군. 또 내 조상이 어부여서 내 성은 물고기란 뜻이 있었어. 고고한 귀족들한텐 절대 있을 수 없는 뜻의 성이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날보고 물고기 같은 년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조롱한다고 들었어. 기분은 나빴지만 나는 전혀 꿀리지 않았어. 왕이 나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야. 왕은 인류역사상 가장 막강한 왕으로 알려진 왕의 증손자였는데 증조 할아버지 만큼은 못되도 권력이 막강했어. 인성도 괜찮고 지식도 갖춘 미남이었지. 왕으로서 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었지만 왕권은 아직도 강한 편이었지. 그런 강력한 왕이 나를 그다지도 애지중지 사랑한다는데 사람들이 날 어떻게 하겠어. 나는 그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에 고분고분하게 당할 여자가 아니었어. 왕의 든든한 지원을 업고 나의 위세를 서서히 키우기 시작했지.
축희 얘기 들으니 나랑 사정이 비슷한 게 아주 많네. 나도 왕궁 문지기에서 시작해 왕궁으로 들어가 축희처럼 딱 그랬거든.
드디어 나는 왕과 내연관계에 있는 여인에서 정식 애첩으로 인정받았어. 왕궁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정부가 된 거지. 나중에 나는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어. 평민이 귀족이 된 거지.
개천에서 용났네. 축하할 일에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왕의 정실 부인인 중전이 있고 그 이외에 여러 후궁들이 있었는데 너희나라에선 왕비가 있고 공식적인 애첩 정부가 있는 거네. 왕의 여자들에 대해 문화가 좀 다르네.
내가 왕의 사랑을 얻은 비결은 단지 내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어. 난 왕과 말이 통했어. 그림도 잘 그렸고 요즘 피아노 같은 것도 잘 쳤고 꽃도 잘 다듬었어. 이 모든 게 나의 타고난 재능 때문이기도 했지만 왕궁 밖 어린 시절에 아저씨 덕분에 내가 다방면으로 받은 교육의 힘이 컸어. 난 당시 복잡한 국제정치에 관해서도 나름 내 식견을 밝힐 수 있었지. 내가 말할 때마다 왕은 귀를 기울이며 경청했어. 물론 이런 날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야. 아무리 내가 후작이 되었다고 해도 물고기란 별명은 사라지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런 거에는 무심했지. 내가 좀 둔감한 편이거든. 요즘 애들은 자기한테 안좋은 소리를 들으면 너무 예민해져 우울증에 걸리며 정도가 심해지면 자살까지도 한다던데 나는 둔감했어. 그냥 너희는 떠들어라 했지. 그렇게 어떤 비난에도 예민하지 않고 둔감하면 그게 오히려 둔감력이 되어 내 마음 상태를 안정되게 지킬 수 있었지. 한마디로 마인드 콘트롤이 되는 것이지. 물론 왕이 나한테 주는 사랑의 힘이 가장 나를 지키는 힘이기도 했지만…
어쩜 너는 나랑 성격까지 똑같네. 나도 둔감력이 센 편이야. 웬만한 건 그냥 그렇게 그러려니 건너 뛰는 편이지. 남들의 시선에 의해 절대 나를 우울한 상태로 빠뜨리지 않지. 그러다가도 예민해질 필요가 있으면 나는 거침없이 예민하게 행동했자. 축희도 그랬을 것 같은데…
내가 너만큼 했겠냐만, 나도 을식이처럼 좀 그런 편이었지. 우리 같은 과끼리 만나서 재밌네. 나는 또 성격이 굉장히 사교적이었어. 오지랖도 넓었지. 특히 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어. 나는 왕궁에서 여주인이라도 되는 양 많은 연회를 베풀었지. 이 때 당대에 난나긴다하는 문화계 예술계 유명 인사들을 왕궁 안으로 초대했어. 왕의 든든한 빽으로 후원도 많이 했어. 당연히 그들한테 인기가 좋았지. 이 정도 되면 왕의 정실 부인인 왕비가 날 밉다고 볼 만도 했는데 난 왕비와도 사이가 그런대로 좋았어. 처음에 그녀가 듣기 좋은 말은 해주며 다가갔는데 날 싫어하지는 않더군. 일단 그녀가 순한 여자라고 그러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는 친화력도 좋았어. 정말로 화려한 궁전에서 화려한 시절이었지. 그런데 세상사라는 게 좋은 것만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
아! 오늘은 여기까지 좋은 얘기만 하자. 그만 자자. 내일 네 얘기 또 들으면 좋겠는데, 여기가 우리 맘대로 되는 곳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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