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3. 병구과 인정④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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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9 13:44 | 최종 수정 2023.12.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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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3-4. 인정이 고백하는 과거
너 나 보기에 어때. 얌전하고 조신해 보이지. 네 말도 잘 듣는 착한 여자같지. 호호호… 사실 난 완전히 변태되었어. 변태라는 말이 비정상적 성적 도착자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여자들 앞에서 갑자기 바바리 벗어 알몸을 보이는 바바리맨은 변태의 대표지. 들을 때 떠오르는 청각적 이미지가 안 좋은 말이지. 젊잔케 보이던 남자가 갑자기 또라이처럼 이상하게 변하니까 그것도 변태이긴 해. 그런데 원래 변태(變態)는 바뀐(變) 모양態)이란 뜻이야. 징그럽던 모양의 번데기가 아름다운 모습의 나비로 바뀌는 걸 나타내는 말이지. 좋은 말이야. 내가 그렇게 변태했지. 속 마음이 바뀌니 겉 모습도 바뀌더군. 얼의 꼴인 얼굴이 바뀐 거지. 나의 이전 마음과 모습은 그야말로 엄청났어. 들어보면 놀랄 걸.
아니 자상하게까지 보이는 인정이가 도대체 어땠길래? 상상이 안 되데… 너의 과거를 말해줘.
난 집안이 짱짱했어.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최고의 집안이었지. 난 시시한 왕족도 아니고 엄청난 황족이었어. 그냥 황족이 아니었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증조 할아버지가 당시 존엄한 자로 불리던 황제, 오빠도 황제, 남편도 황제, 아들도 황제였어. 이쯤 되면 내가 어떤 여자였는지 알겠지. 세상에 나 같은 여자가 있을까? 근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 황족도 얼마든지 조신하게 살 수 있는데, 난 그냥 얌전한 황족이 아니었어. 내가 보이게도 엄청 설치고 다녔지. 일단 내 피지컬이 대단했지. 미치광이 황제가 된 오빠도 어릴 적에 날 여자로 탐냈었지. 사실 그게 나한텐 엄청난 트라우마였어. 하지만 난 거기에서 과감하게 벗어났어. 내 살 길을 찾은 거야. 그런데 나랑 결혼한 남자들은 둘이나 연달아 요절했어. 내가 누구처럼 남자의 정기를 빨아들여 젊음을 유지하는 양생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왜 그랬나 몰라. 아무튼 나는 두 번 연속으로 과부가 되어도 의기소침해지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더 단련시키며 내 살 길을 찾았지. 그런데 내 살 길을 찾는 정도가 오바하니까 권력을 탐하게 되더군. 그렇게 나는 권력을 탐닉하는 암늑대가 되어가고 있었어. 황궁 안 젊은 남자들은 내가 유혹하면 금방 끌려왔어. 그렇다고 내가 성욕으로만 그런 건 아니야. 다 목적이 있었지. 나는 그 놈들을 내 권력의 도구로 이용해 먹었어. 온갖 수단방법을 다 써서 나는 결국 황제가 된 삼촌의 아내가 되었어. 난 자연스럽게 황후가 된 게 절대 아니야. 나의 권력욕의 빗은 결과야. 나는 내 남편인 황제가 늙고 별 쓸모 없어지자 그를 독살했어.
정말로 엄청나구만. 아니 요렇게 얌전하게 보이는 여자가 어찌 그럴 수 있었지. 정말 변태가 맞구만.
권력의 맛이라는 게 맛본 사람들만이 알아.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지만 고기맛에 비할 바 없는 권력맛이야. 권력이란 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잖아. 권력이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세상 살 맛나지. 나는 최초로 황제가 되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어. 그런데 그게 나 때는 쉽지 않았어. 나 이후에 저 멀리 어디선가는 여자도 황제가 되기는 했다지만 우리 때는 어림도 없었어. 미구 여시처럼 노회하고 교활한 대신들이 하도 말들이 많아서… 그런데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게 바로 그거야. 나 이후에 황실이 더 막장으로 되는 꼴을 보니까 나는 그 때 황제가 되어야 했어. 힘들었겠지만 내가 권력의지를 투철하게 가지고 추친하면 안 될 것도 아니었어. 몇몇 힘있는 대신들을 유혹해 내 말을 잘 듣게 조종한 후 하려면 되는 거였어. 그런데 당시에 바보같이 그런 대망을 꾸진 못했지. 황제의 아내로, 황제의 엄마로 권력을 누리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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