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3. 병구과 인정⑤

박기철 승인 2023.12.26 10:44 | 최종 수정 2024.01.02 12:54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3-5. 병구와 인정의 후회

인정이가 여자 황제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왜 그 때 황후에 만족하고 황제가 되려고 마음먹지 않았을까? 인정이가 후회한다고 했지만 나도 사실 똑같은 심정이야. 나도 그때 우유부단하던 왕을 처단하고 내가 왕이 되었어야 했어. 나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어. 나를 정적으로 여기는 주전론자들도 많았지만 일단 오랑캐와 싸우지 말자는 나의 뜻에 따르는 대감들도 많았고 백성들에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도 있고 조직도 있었어. 왕도 나를 무시못하며 겁내기도 했어. 그만큼 나는 정치적으로 세력이 컸어. 그런데 나는 그냥 재상이라는 관직에 안주했어. 만일 내가 쿠테타를 벌여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만들었다면 내 신세가 이토록 비참해지진 않았을 꺼야.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 꿇은 우리 부부 동상에 침을 뱉고 회초리를 때리고 그래. 이게 뭐야. 그때 뒤집었어야 하는데사람이란 게 꼭 나중에 후회하지. 저기 먼 어떤 나라에선 어떤 장군이 북벌을 하러 나간다며 진군했다가 나중에 북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알며 회군하여 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했다지. 역사가들은 그걸 쿠테타 반란이 아니라 신권력 창시라고 해. 그는 500년 왕조를 당당하게 일으킨 태조가 되었다지. 나도 그랬어야 했어. 북벌한다고 출병하다 적당한 곳에서 회군하여 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해야 했어. 그렇게 해서 민생을 살피며 나라를 안정시키고 군사력도 강화하여 그때 북벌했다면 나는 성군으로 칭송받고 있을 거야. 그러지 못하고 재상 자리에 안주한 내 잘못이 커. 난 바보야. 지금 나를 조롱하며 모욕하는 세상사람들을 보면 가슴 속으로 무지막지한 후회감이 몰려들어.

Exactly! 바로 그거야. 나도 내 잘못이 커. 나도 황제이던 남편이 죽은 후 내가 황제가 되어 정국을 안정시키고 백성들 삶을 살피며, 군사력도 강화하였다면 나는 인류 최초의 영리한 여자 황제라고 칭송받고 있을 거야. 그런데 나는 지금 인류 최고의 악녀이자 요부라고 온갖 욕을 다 먹고 있어. 그렇다고 병구 너처럼 침과 회초리 세례는 받지 않고 있으니 네 신세보다는 나은 건가? 도건 개건 도낀개긴이라고 너나 나나 대동소이 도토리키재기 오십보백보 거기서거기 한심한 신세다.

그렇네. 내가 좀 더 비참한 신세지만 사정은 비슷하네. 너는 최고의 악녀이자 요부, 나는 최악의 간신이자 배신자가 되었어. 그러나 이렇게 여기서 너랑나랑 후회와 반성도 하고 세상 한탄을 하며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튼 황제인 네 남편을 죽이고 너는 어떻게 살았어? 든든한 황제 남편 권력이 떨어져 나갔으니 잘 안 나갔을 거 같은데

나의 앞날을 그렇게 예측한다면? 넌 아직도 나라는 여자의 실체를 하나도 모르는 것이야. 난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인간이었어. 가히 상상초월이야. 내가 날 평가해도 그래. 내가 최고의 악녀이자 요부로 찍힌 건 그 다음부터 전개되는 내 역동적인 삶 때문이야. 더 얘기할 순 있는데 가슴이 벅차다. 좀 마음을 추스려 안정시켜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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