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폐사지 - 감나무, 박이훈
박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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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7 11:17 | 최종 수정 2022.10.1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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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
- 감나무
박이훈
1997년, 처음
황량한 겨울 빈터에 일곱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나는 해마다 인연을 찾아가듯 안부가 궁금했다
어느 해 한 그루가 고사하고
그루터기 잡초가 무성했다
잡초는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했다
고요가 쩡쩡 울리는 폐사지
오래 된 감나무에도
봄이면 연두가 익어 초록의 군단을 이루며
감꽃이 피었다 지고
꼭지마다 풋감이 여물어 갔다
나는 가슴속에 작은 탑을 쌓듯
시간의 돌들을 쌓았다
가끔 툭! 툭!
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해 또 한그루가 밑동까지 잘려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간도 에둘려 가는 여기
나는 송두리째 사라진 나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무로 와서 나무로 서 있는 순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무력함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 박이훈
▷2010년 시집 『수신두절』 로 작품활동
▷시집 『고요의 색으로』 외 2권
▷부산시인협회, 부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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