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 스티브 잡스 그리고 애플
앨런 튜링, 스티브 잡스 그리고 애플
조송현
승인
2017.01.12 00:00 | 최종 수정 2019.01.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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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플사의 아이폰, 노트북에 찍혀 있는 애플사 로고는 유난히 눈에 띈다. 왜 하필 한 입 베어먹은 사과일까? 이런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으리라.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사과 과수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사과를 가장 완벽한 과일로 생각했다고 한다. 제품이 사과처럼 아름답고 완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회사 이름을 애플로 선택했다는 게 잡스 주변 인사들의 얘기다.
이 얘기를 100% 신뢰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애플 로고는 처음엔 '사과나무 아래 있는 뉴턴'을 형상화한 것이었으며, 1978년 오늘날처럼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모양으로 바뀌었다. 만약 잡스가 사과처럼 완벽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회사 이름을 애플이라고 정했다면, 로고도 처음부터 사과 모양으로 만들었지 않았을까? 혹자는 잡스가 일하다가 사과를 한 입 베어먹고 컴퓨터에 올려놓았던 기억을 떠올려 '한 입 베어먹은 사과'를 로고로 정했다고 한다. 이 역시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발상이 전혀 천재 잡스답지 않기 때문이다.
잡스는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학 천재 앨런 튜링(1912~1954)을 존경했다. 튜링은 독이 든 사과를 한 입 베어먹고 자살했는데, 애플사의 로고는 바로 그 튜링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오마주(존경의 표시)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천재 잡스의 결정이라면 배경 스토리가 이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튜링은 대학원 시절 ‘계산 가능한 수와 결정문제의 응용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해 수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오늘날 컴퓨터의 기본 구상을 ‘튜링 기계’라는 이름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튜링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부암호학교 암호해독반에 스카우트되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튜링 기계’를 이용해 독일군 암호인 에니그마를 풀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전쟁 승리의 영웅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성문란 혐의로 기소돼 화학적 거세 선고를 받은 것.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천재는 마침내 자신이 좋아한 동화 백설공주의 독이 든 사과를 베어물고 말았다.
튜링은 기소되기 전 인공지능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논문을 통해 인공지능 판별법 이른바 ‘튜링 테스트’를 제시했다. 튜링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 컴퓨터도 의식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처럼 포괄적인 논리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험 방법은 언급하지 않았다.
튜링 사후 영국 레딩대학의 컴퓨터과학자들은 사람과 인공지능(컴퓨터)을 대상으로 컴퓨터 채팅을 통해 비교·판별하는 ‘튜링 테스트’ 방법을 개발했다. 지난해 6월 레딩대학의 연구팀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인공지능 로봇 ‘유진 구스트만’을 소개했으나 테스트 과정에 상당한 꼼수가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전 세계에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알파고를 비롯한 인공지능(AI) 연구는 바로 65년 전 튜링의 생각을 구현하는 작업이다.
2015년 2월 ‘이미테이션 게임’이 개봉돼 튜링의 드마마틱한 삶이 일반인들에게도 소개되었다. 영국 맨체스터 색빌공원(Sackvill Park)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튜링의 동상이 있다, 오른손에 한 입 베어먹은 사과를 쥐고 있는. 그 동상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이자 편견의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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