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 - 러더포드의 원자핵 발견
물체는 열을 받아 타면서 빛을 냅니다. 상식으로 여겨졌던 이 현상은 19세기 말 원자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물체는 원자의 집합입니다. 따라서 물체가 빛을 내는 상식적인 현상으로부터 ‘원자가 내는 빛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질문은 곧 원자 구조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고, 수많은 천재 물리학자들에 의해 양자역학의 완성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원자가 방출하는 빛은 묘한 규칙성을 띠었습니다. 이를테면 수소원자가 내는 가시영역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보니 파장이 410나노미터(nm), 434nm, 480nm, 656nm였습니다. 색깔로 치면 보라색, 청색, 물색, 빨간색에 해당합니다. 태양의 스펙트럼은 모든 색깔이 망라된 연속스펙트럼인 것에 비해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은 이처럼 일정한 파장(혹은 진동수)를 가진 몇 개의 단색광으로 이루어진 (불연속적인) 선스펙트럼이었습니다.
이것은 1885년 스위스 여학교 수학교사였던 발머가 발견해 ‘발머계열’이라 명명되었습니다. 1906년 라이만이 자외선 영역의 스펙트럼 ‘라이만계열’을, 2년 후 파센이 적외선 영역의 스펙트럼인 ‘파센계열’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과학자들은 원자가 이처럼 특정한 스펙트럼의 빛을 방출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왜 이런 스펙트럼이 나오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원자가 방출하는 빛은 태양이 방출하는 빛처럼 다양한 파장의 단색광이 골고루 섞여 있지 않고 왜 단지 몇 개의 특정한 파장의 단색광을 방출하는지를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원자가 내는 빛의 선스펙트럼은 원자 구조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그럴 듯한 원자모형을 제시한 사람은 전자를 발견한 톰슨(J. J. Thomson)입니다. 톰슨은 양(+)전하를 가진 물질 안에 전자가 건포도처럼 박혀 있는, 수박모양의 원자모형을 제시했습니다.
원자모형을 나름대로 제시한 톰슨은 이제 ‘원자가 방출하는 빛은 무엇인가?’에 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톰슨은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가 운동을 하면서 빛을 방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원자의 스펙트럼은 전자가 내는 빛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당시 완성된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에 의하면 움직이는 전자가 빛을 낸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톰슨의 설명은 원자들의 기묘한 선스펙트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이즈음 마리 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가 새로운 방사성 원소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과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마리 퀴리는 박사논문 지도교수인 앙리 버크렐의 우라늄 방사선 발견에 자극받아 원자의 자연 붕괴 현상을 발견해 원자핵물리학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퀴리 부부는 그 공적으로 1903년 베크렐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원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의 실체와 과정이 무엇인지는 의문에 싸여 있었습니다. 퀴리는 1898년 ‘방사선은 원자의 특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의 강도는 방사능 물질의 원자 수에만 의존하고, 물질의 온도나 전자기장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2년 후 퀴리 부부는 “방사능 물질의 붕괴로 인해 방사선이 방출된다.”면서 “그 과정은 순전히 자발적이며, 그 자발성은 놀라운 수수께끼.”라고 적었습니다.
이어 영국의 물리학자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는 방사성 원소의 붕괴가 확률법칙을 따른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각 원자는 임의의 시각에 붕괴할 일정한 확률을 가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또 다시 당혹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전물리학에 따르면 어떤 현상에는 반드시 분명한 원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세기 전 열역학에서 기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통계와 확률적인 방법이 제시됐으나 물리학자들은 수용하기를 꺼렸습니다. 이번에 또다시 마뜩찮은 확률이 등장했습니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방사성 원소의 붕괴 현상을 지배하는 요상한 확률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의 구조를 파악해야만 했습니다.
원자 연구에 본격 나선 러더포드는 방사성 물질인 알파, 베타, 감마 입자를 발견했으며, 알파 입자의 본체가 헬륨원자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원소가 불변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원자붕괴설’을 수립했습니다. 그는 알파선을 쏘아 질소의 원자핵을 인공적으로 파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19세기 말 라듐 등 방사성 물질의 발견으로부터 촉발된 물질관의 변혁을 가속화시키며 원자핵 물리학의 발전을 견인했습니다. 그는 190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특히 러더포드는 1911년 알파 입자를 금박(thin gold foil)에 충돌시키는 실험을 통해 원자핵을 발견해 유명한 ‘러더포드 원자모형(일명 태양계 모형)’을 도출했습니다. 이것은 원자의 구조를 밝히는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습니다.
러더포드는 방사성 물질인 라듐에서 방출되는 강한 투과력의 알파 입자를 금박(금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에 쏘았습니다. 알파 입자의 산란 형태를 통해 원자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에 알려진 톰슨의 원자모형(수박모형)은 양전하가 얇게 퍼져 있고 그 속에 전자가 골고루 박혀 있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강한 알파 입자(헬륨원자핵)를 여기에 쏠 경우 알파 입자는 쉽게 금박을 뚫고 지나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알파 입자는 금박을 통과했으나 일부는 금박에서 튀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 비율은 2만 개당 한 개꼴이었습니다. 러더포드는 이 실험에 대해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한 장의 티슈에 15인치 포탄을 쏘았는데 그 포탄이 되돌아온 것처럼 믿기 힘든 일이었다.”
알파 입자의 되튐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원자의 중앙에 작지만 무거우며, 전기적으로 양전하를 띤 물질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러더퍼드는 이것을 ‘원자핵 nucleus’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이 한층 확실해졌습니다.
원자의 지름은 10nm인데 반해 원자핵은 그것의 10만 분의 1정도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원자가 잠실체육관이라면 원자핵은 체육관 중앙에 매달려 있는 작은 구슬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구슬에 원자 질량의 대부분이 집중돼 있고, 전자는 체육관 공간을 떠다니는 작은 티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만약 전자가 가만히 있을 경우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전하를 띤 전자는 ‘쿨롱의 힘’에 의해 서로 끌어당겨 들러붙게 되고 그렇게 되면 원자는 원자핵처럼 작게 수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자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며, 원자핵 주위를 운동해야 한다는 가정이 제시되었습니다. 회전운동은 쿨롱의 힘을 상쇄할 만한 원심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원자는 중앙의 원자핵과 그 핵을 중심으로 빙빙 도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마치 태양계의 행성(전자)들이 태양(원자핵)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러더포드의 원자모형을 '태양계 원자모형'으로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는 1904년에 톰슨이 제시한 수박모형(plum pudding model)에 비해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러더포드의 원자모형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러더포드 모형에 의하면 전자가 원자핵 둘레를 돌 때 전자의 진로가 빛의 형태로 전달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맥스웰 전자기이론에 의하면 전자가 회전운동 같은 가속운동을 하면 빛을 방출합니다. 그런데 전자가 빛을 방출하면 에너지가 점점 줄게 되고 마침내 원자핵에 끌려들어가 더는 회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원자가 원자핵의 크기로 수축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원자는 대부분 안정상태를 유지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원자가 방출하는 스펙트럼입니다. 러더포드 모형에 의하면 원자가 방출하는 빛은 연속스펙트럼이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불연속적인 선스펙트럼입니다. 이는 전자의 상태에 의해 결정되는 원자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원자의 모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다는 말일까요?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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