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들이 갑질로 물의를 빚는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신분이 노출될 경우 회사 측의 보복을 우려해 '벤데타 가면'을 쓰고 있다. 출처 : 유튜브(연합뉴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으랴!(王侯將相寧有種乎·왕후장상영유종호)

만적萬積은 최충헌의 사노私奴로 기개가 있었다. 그는 땔나무를 하면서 처음에 다섯 명의 동지를 찾아냈다. 이들은 자주 만나 거사를 모의했다. 분위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만적은 종들을 불러 모아놓고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국가에서 무신武臣들이 권세를 잡은 뒤로 높은 벼슬이 천민과 노예에서 많이 나왔소.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소.¹⁾ 때가오면 우리도 차지할 수 있소. 우리들이 어째서 근육과 뼛골을 괴롭히며 채찍 밑에서 신음해야 하오?(『고려사』열전 최충헌)

이 자리에 모인 종들이 일제히 환호하면서 호응하였다. 만적 등은 미리 준비한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오려서 정丁이란 글자를 써넣었다. ‘정’은 ‘씩씩한 젊은이’라는 뜻이다. 이 종이를 나눠주고 표지로 삼게 하였다. 이들은 정자 표지를 달고 날짜를 정해 흥국사에서 출발하여 격구장에 모이기로 약속했다. 격구장에 집결한 뒤 대오를 정비하여 한꺼번에 북을 울리면서 거사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지도부는 이렇게 선동했다.

환관들은 궁궐에서 호응하고 관아 소속 종들은 각기 내부에서 벼슬아치를 처단할 것이다. 우리들이 성중에서 봉기하여 먼저 최충헌을 죽이고 종들이 각기 상전을 죽이고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려 이 땅에서 천인을 없애버리면 우리도 공경公卿과 장상將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약속한 날에 흥국사에 모인 사람은 몇 백 명에 지나지 않았다. 만적 등 지도부는 이렇게 적은 수로는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보제사에서 모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일을 치밀하게 꾸미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으니 결코 누설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순정順貞이라는 종이 겁이 나 모의 사실을 낱낱이 상전에게 고해 바쳤다. 이 상전이 최충헌에게 이 일을 알렸다. 최충헌은 신속하게 만적 등 100여 명의 종을 잡아들여 앞뒤 가릴 것 없이 예성강 강물에 수장시켜버렸다. 1198년 5월에 벌어진 일이다. 순정은 밀고한 대가로 백금 80냥을 받고 양인 신분이 되었다.²⁾

핀란드 정부가 세계 최초로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국내외 언론이 보도했다. 지난해 1월 시작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정부가 장기 실업자(25~58살)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조건 없이 매달 560유로(72만여 원)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이 보도와 관련해, 이 제도의 설계·시행을 담당하는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의 올리 캉가스 국장(정부 및 지역사회 담장 이사)은 “가짜 뉴스”라고 말했다.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게 캉가스 국장의 설명이다.

비영리연구기관인 랩2050의 이원재 대표는 “최근 국내 언론은 기본소득이 실패했다는 걸 넘어 ‘복지가 실패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핀란드의 실험은 맥락이 다르다. 직장을 구할 때까지 실업자에게 무기한 지급해온 실업부조 제도가 실업률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이를 대체해보려는 것이다. 한국은 핀란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회보장이 약한 나라인 만큼, 기본소득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기초연금이나 청년수당, 아동수당 등 ‘조건을 달지 않는’ 수당 형태의 복지제도 확대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³⁾

기본소득에 관한 이 가짜뉴스는 누가 생산, 유통시켰을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친 ‘갑’들이다. 갑들 중 특히 갑질하는 무리들은 핵무기보다 기본소득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이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갑들은 갑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는 냄새와 먼지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조 회장이나 그의 일가가 비행기를 탈 땐 특수 청소 지시가 내려온다. 평소 5분에 끝내는 1등석 청소는 이 날 1시간 정도로 길어진다. 이미 청소를 한 항공기여도 조양호 일가가 타게 되면 ‘스페셜크리닝팀’이 출발 전날 동원된다. 대통령 전용기에도 하지 않는 특혜다. 수년 간 기내 청소를 해온 B씨는 “시트커버 다 벗기고, 좌석 사이에 있는 먼지도 싹싹 청소해 ‘번쩍번쩍’하게 만든다. 조 씨 일가는 좌석 틈 먼지까지 실제로 검사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 일가가 쓰는 기내용품도 수준이 다르다. 전용 식기가 있다. 금장이 박힌 금속 재질 수저가 준비됐을 때도 있고 ‘본차이나’ 도자기가 기내에 실린 적도 있다. 이 도자기에 봉지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황제 의전은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고 노동력을 낭비한다든 비판도 있다. B씨는 “나와서 도열하는 게 부장의 일인가? 수행비서 한 명만 따라다니면 될 일인데, 대통령도 못하는 걸 재벌은 누리는 것”이라며 “청소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는 조 씨 일가가 탑승하는 날 몇 배는 증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⁴⁾

조양호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사적으로 사용할 물품을 국외에서 국내로 반입하는 과정에 대한항공 비서실을 동원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공개됐다. 대한항공에서 아무런 직책이 없는 이 이사장이 비서실을 ‘심부름센처’처럼 활용한 것이다. 대한항공 비서실이 한 지점장에게 보낸 전자우편 내용을 보면, “사모님께서 아래와 같이 지시하셨습니다”라며 “(특정 상품)제일 좋은 것 2개를 구매해서 보낼 것, 제품 카탈로그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의 한 직원은 “해외 지역 임원들은 비서실에서 오는 사모님 지시 사항에 따라 행동해야 했고, 지역 본부장과 관리팀장은 사모님 여행 비용, 아이템 등과 관련해 깊숙이 알고 있다”고 밝혔다.⁵⁾

1998년 미국으로 유학 갔던 한 대학생이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졸업 인정 학점도 채우지 못했던 그는 인천 시에 있는 종합대학인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아버지가 인하대 재단법인(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이었다. 교육부가 조사에 나섰다. ‘부정편입학’이 밝혀져 관련자 문책이 지시됐다. 하지만 그 학생은 무사히 인하대를 졸업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정석인하학원의 이사이다. 정석인하학원 산하에는 인하대·한국항공대·인하공업전문대와 인하대 부속 중·고등학교, 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등이 있다. 인하대 부정 편입학의 당사자가 인하대 운영을 맡은 책임자가 된 것이다. 그 학생은 바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다.⁵⁾

이명희는 경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폭언·폭행 등을 당한 일부 피해자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물벼락 갑질’의 조현민은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강서경찰서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국토부는 한진그룹의 계열사인 진에어에 대한 항공면허 취소 검토에 들어갔다.

재벌 일가의 갑질에 대해 이 정도의 조치로 갑질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이명희나 ‘땅콩회항’의 조현아나 ‘물벼락 갑질’의 조현민이나 부정편입학자 조현태나 황제 의전의 조양호 등의 저급한 갑질은 그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다. 뿌리는 더 깊다. 설령 이 개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영구 제명되더라도 제2, 제3의 ‘갑’들은 이름만 달리해 새로운 갑질을 부릴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을들의 연대’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것만으로는 갑질의 악성 종근種根을 뿌리 뽑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양호 일가 퇴진’을 외치며 촛불 집회를 열었다. 촛불 집회는 이제 예사로운 일이지만, 여느 집회와는 달리 이 집회는 두 가지가 특이하다. 가면을 썼다는 사실과 노동조합과는 무관한 집회라는 사실이다. 회사 측이 채증·색출을 우려해 ‘벤데타 가면’을 쓴 것이다. ‘회사 측’이라 하지만, 경영자가 아니라 바로 직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바로 옆의 동료인 노조원이라고 의심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한항공은 노무관리를 어떻게 해왔을까? 대한항공에는 회사에 ‘입 바른 소리’를 하다가 찍힌 ‘본보기’들이 있다. 20여 년 전 직원들 권익 향상을 위해 ‘강성노조’ 활동을 하다가 20년 넘게 ‘대리’에 머물러 있는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10년 차 직원 A씨는 “대한항공에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며 “나도 모르게 나에 대한 정보가 회사엔 기록돼 있고 부정적인 코멘트가 달리면 그 승무원 진급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또 모순적이게도 “그렇지만 일반노조 간부는 진급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 외 직원들도 노동조합에겐 불명예인 ‘어용노조’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파면·해고된 직원들이 회사와 3~7년 동안 법정 싸움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D씨는 “회사는 나중에 져도 돈을 주면 된다. 그동안 사람 한 명의 인생은 망가져버리는 것”이라며 “당시 객실지부에 애정이 깊었던 한 승무원은 이후 벌어지는 상황에 힘들어하다 사표를 쓰고 나갔고 얼마 있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은 새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노조 탄압에 항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를 ‘노조 탈퇴자’로 분류해 실적 보고를 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누구나 빈손을 태어나 빈손으로 간다. 이 말은 누구나 다 안다. 한데 왜 누구는 주체 못 할 정도의 부를 소유하고, 누구는 정말 목구멍이 포도청인가. 자본주의 제도를 요상하게 오용했기 때문이다.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더러운 신화 때문이다. 최충헌의 정권에 무슨 정당성이 있는가. 만적이 옳다. 과연 지금 가진 자들 중에 청부淸富임을 떳떳이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정경 유착 등의 범죄 행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업 초기 국민의 혈세를 지원 받아 성장한 재벌들, 지금 가진 부들이 자기 몫인가! 부동산 투기를 하여 불린 돈, 이게 정당한가. 정부가 국토를 개발하여 기간 시설을 놓으면, 주변 땅값이 올라간다. 그게 그 소유주의 몫이라는 게 정말 말이 되는가.

백보 양보하자. 재벌을 비롯한 가진 자들, 그들이 있게 한 이 자본주의 체제를 정말 고마워할 기본 양심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체제의 안정을 위해 그만한 의무는 해야 하지 않을까. 적선을 하란 말은 아니다. 법정 세금이나 제대로 내란 말이다.

백두대간보다 높고 긴 논의를 간단히 줄이자. 재벌이든 노숙인이든 이 땅에 권리와 의무를 똑같이 가진 소중한 존재들이다. 큰 차 안 타고 행세 하지 않으려 하면 노숙인도 재벌과 꼭 같이 대접 받아야 할 인권의 주인공이다. 하여 자기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소득을 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 말만 나오면, 재원을 핑계 댄다. 그러나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걸 방증할 뿐이다. 쉬운 예로, 다 알다시피 이재용이 16억 상속세를 냈는데, 이런 사람한테 제대로 세금 받고, 개발이익은 공공으로 돌리고, 비근한 예로 임대소득만 제대로 받아도 이 재원은 마련할 수 있다. 필자의 건목 친 계산으로는 ‘모든 국민 누구나 현금으로 월 100만원’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갑질 근절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같은 을끼리 싸울 필요가 없다. 기본 생활 임금을 가진다면, 갑질에 누구나 대항할 수 있다. 아마 갑질 하는 사람은 아주 혼이 날 것이다. 하여 갑질은 이 사회의 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노조도 소중하다. 을들의 연대도 중요하다. 그러나 간단히 해결할 길이 있는데 에둘러 갈 필요가 있는가. 자 단도직입單刀直入하자. 굳이 길을 두고 뫼로 갈 필요가 어디 있는가.

기본소득, 자본주의의 만악萬惡을 치유할 유일한 만병통치약이다. 지금부터 진지하게 ‘사상의 시장’에서 구체적 로드맵을 논의하자.

※1)『사기세가』의 「진섭세가」에 나오는 말인데, 노비가 이 구절을 알았다는 게 좀 의심스럽다, 정사正史에 실려 있긴 하지만. 2)이이화, 『한국사 이야기6』(한길사, 2005), 182~184쪽. 3)최하얀, 「핀란드 기본소득 설계자 “실험 실패? 가짜뉴스다”」,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4일. 4)손가영, 「조양호 일가 비행기 타는 날, 벌어지는 일들」, 『미디어오늘』, 2018년 4월 25일. 5)박수진, 「이명희, 국외 개인쇼핑에 대한항공 비서실까지 동원했다」, 『한겨레신문』, 2018년 4월 26일. 5)변진경, 「그 집안의 ‘갑질 논란’ 남의 일 아닌 인하대」, 『시사IN』, 2018년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