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과의 공존 ‘갈매기의 꿈’ 보여준 제24회 광안리 ‘갈매기 환송제’

김 해창 승인 2019.03.04 20:06 | 최종 수정 2019.03.05 14:06 의견 0
3일 오후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갈매기 환송제. 사진=배정선

“부산갈매기들아, 잘 가라~ 내년에 건강하게 다시보자~”

3월 3일 오후 2시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 중간지점인 게스후 레스토랑 앞 무대와 백사장 일대에서 ‘수영구와 함께 하는 제24회 갈매기 환송제’가 열렸다.

바닷바람으로 다소 쌀쌀한 날씨 속에 열린 이날 행사는 24년째 이어져 온 것이다. 이 행사를 주최한 시민단체 갈매기친구들(회장 배정선)은 1991년부터 철새인 갈매기들이 광안리 해변에 머무는 매년 11월 중순부터 3월 초순까지 약 4개월 동안 매일 아침 해뜨기 직전에 민락씨랜드 충무집을 비롯한 광안리 주변횟집에서 버려지는 생선내장, 껍질 등을 수거해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갈매기들과 친구가 됐다.

배주연ㆍ전찬영 가수의 사회로 환송제가 시작됐다. 이들은 “2019년 1월 새해를 맞는 기분으로 제24회 갈매기 환송제를 시작하겠습니다”라며 박수와 함께 시작을 알렸다.

배정선 갈매기친구들 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오늘 갈매기 환송제는 갈매기를 환송하는 축제이면서 또한 부산의 어른이셨던 고 오건환 교수님의 갈매기 사랑을 되새기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 교수님은 새들이 점점 줄고 환경이 나빠지는 현실에서 1990년대 초반에 부산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광장이 될 이 광안리해변에서 겨울철새인 갈매기의 모이를 주면서 갈매기와 사람이 친구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 행사를 후원해주신 수영구청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2부 노래자랑도 있으니 이곳에 오신 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시고 함께 즐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 오건환 부산대 교수는 부산의 바다와 특히 갈매기를 사랑해 ‘갈매기 친구들’이란 모임을 만들어 매년 겨울철 갈매기들에게 먹이주기 행사와 함께 갈매기 환송제를 주최해왔는데 2006년 향년 65세로 별세했다. 그 뒤 배정선 씨가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매년 이 같은 행사를 빠짐없이 개최해왔다.

배정선(왼쪽) 갈매기친구들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김해창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갈매기환송제가 광안리의 귀한 행사로 지금까지 열려온 데 대해 우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수영구청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이 행사를 지원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날씨는 미세먼지로 나들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게 어느덧 일상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세먼지는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어요. 바다나 강과 같은 습지가 잘 보전돼야 하는데 난개발이 심해지니 결국 미세먼지가 더 많이 발생하고 도심에 대기가 정체하게 돼 우리들의 일상생활 환경이 악화되는 것이지요. 저는 어릴 적부터 광안리에서 줄곧 자랐는데 그 아름답던 광안리해변이 매립되고 고층건물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철새인 갈매기도 서식환경이 악화돼 해마다 개체수가 줍니다. 부산은 광안리뿐만 아니라 낙동강하구라는 천연기념물 제179호의 세계적인 보물이 있음에도 이러한 습지를 제대로 보호하고 살리지 못합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낙동강하구 인근에 부산시가 예전에 세워놓은 10개나 되는 다리 건설계획을 7기 오거돈 민선시정에서도 그대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광안리 갈매기와 낙동강하구 고니들이 우리 부산시민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갈매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부산의 난개발을 막아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시를 낭송하는 이숙례 시낭송가.

이어서 시낭송이 있었다. 이숙례 시낭송가(동서대 사회교육원 지도교수)는 성백원 시인의 ‘함께 가자!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시를 낭송했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것은 다시 태어날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겨울 찬바람을 견디는 것은 돌아 올 봄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일이 없다면 저 하늘 해도 이 산 나무들도 아무렇게나 옷고름을/ 풀어 헤치고 술 취한 사람처럼 밤거리를 헤맬 것이다/ 내일이 있다는 것은 내일이 올 것을 믿는 것은/ 화로는 식어도 불씨가 남는다는 것을 꽃은 떨어져 시들어가도/ 씨앗이 남는다는 것을 사랑은 떠나도 새로운 시작이 기다린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중략)/ 가자! 내일의 꿈을 향하여/ 가자! 내일의 희망으로 가자!/ 식어가는 손을 맞잡고 우리 함께 가자!/ 붉게 타는 저 해처럼 뜨겁게 가자!/ 어둠에서 빛으로 가자!’

이 시낭송에 관중석에선 ‘앵시’라는 말이 잇달아 나왔다. ‘앵콜’에 빗대 시 한 편을 더 낭송해달라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 시낭송가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낭송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김해창 교수가 하모니카 연주에 나섰다.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와 백난아의 ‘찔레꽃’을 연주했다. 행사 전체의 음악을 맡은 최반식 가수(쿠카밴드 대표)는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아코디언으로 배경음악을 넣어 하모니카 아코디언의 선율이 조화를 이루었다.

김수향 시낭송가가 무대에 올라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낭송했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은 /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 좋다. /가슴이 아프면 / 아픈 채로, / 바람이 불면 /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 아득한 미소. / 어디엔가 있을 / 나의 한 쪽을 위해 /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 태어나면서 이미 /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 이제는 그를 / 만나고 싶다.(하략)’

이날 고 오건환 교수가 깊은 친분을 갖고 지역환경운동을 이끌어온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갈매기친구들 초대회장인 고 오건환 교수를 회고했다.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가 갈매기 친구들 초대회장인 고 오건환 교수를 회고 하고 있다. 사진=김해창

“갈매가 좋아 갈매기를 닮아버렸던 사람, 저 바다에 출렁이는 물결흐름을 더 넓고 멀리 보려는 갈매기 날개짓을 닮아보려 했던 사람, 갈매기가 꾸리고 있던 자연의 한마당이 너무너무 순수하고 자유로워 그것을 닮으려 평생 동안 ‘두둥실 두리둥실~’을 외쳐 불렀던 사람, 인간이 인간만을 위한 생존의 삶 울타리를 풀어헤쳐 자연과의, 또 수많은 생명들과의 소통을 열어주려 손을 내어준 사람! 이곳 광안리바닷가에서 실컷 살다가 떠나는 갈매기들을 위해 가끔씩 조용조용 읊어주던 그의 시가, 노래가, 기도가 생각납니다. 세상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생각납니다. 그리워집니다. 오늘 ‘갈매기의 꿈’을 이야기한 작가 리처드 바크를 통해 그보다 더 진정한 갈매기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고,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들려오는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로 시작되는 ‘사공의 노래’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얻습니다. 오건환 선생, 당신께서는 이 세상에 이리저리 얽혀 온갖 시끄러움이 있을 때마다 갈매기의 자유를 사랑하였고, 갈매기를 닮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 해마다 때마다 이곳 광안리는 모래알하나 물결한틀마다에서 갈매기의 꿈이 음률로, 노래로, 느낌으로 다가오고 그것의 시공에서 우리는 오롯이 갈매기 박사 오건환을 만납니다. 갈매기가 고맙고 오건환 선생이 귀하게 생각되고 이를 쉼 없이 전해주고 만드는 배정선 선생과 갈매기친구분들이 고마워집니다.”

코끝이 찡해오는 찰나 무대에서 바라본 광안리 앞바다엔 갈매기 수백마리가 해변으로 몰려들었다. 통통배가 들어오면서 갈매기들에게 모이주기를 한 것이다. 배정선 회장과 함께 새벽 갈매기 모이주기를 함께 해온 박승희 씨가 갖은 생선내장을 힘껏 바다로 내던졌다.

갈매기 환송제에 모인 갈매기들. 사진=배정선

사회자는 “갈매기가 노래를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우리 시민들과 어려울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목소리 크게 ‘갈매기야 잘 가라’ ‘내년에 다시 오너라’라고 소리쳐 외쳐 봅시다.” “갈매기야 잘 가라~” “내년에 다시 오너라~” 광안리 백사장에서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에 갈매기는 응답을 하듯 “끼이륵, 끼이륵~” 합창을 한다.

2부에서는 노래자랑으로 이어졌다. 참가 시민들의 멋들어진 노래가 계속됐다. 최수영 씨가 ‘삼각관계’ ‘소풍같은 인생’을, 하정규 씨가 ‘이별의 부산정거장’ ‘울어라 기타줄’을, 김동우 씨가 ‘이력서’ ‘꽃피고 새울면’을 구성지게 불러 박수를 받았다.

배정선 회장은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갈매기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광안리에 오는 철새 갈매기는 텃새 갈매기가 아니라 야생성을 간직한 재갈매기나 괭이갈매기입니다. 철새인 갈매기는 매년 가을에 광안리 앞바다로 찾아와 4개월 정도 머물다 이듬해 3월이 되면 독도, 베링해, 캄차카반도, 중앙아시아 등으로 날아갑니다. 앞으로 우리 인간이 갈매기와 친구가 되고, 갈매기와 함께 멋진 부산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거의 매년 갈매기환송제에 참여해온 필자로서는 이번 갈매기환송제는 규모가 매우 축소된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는 갈매기환송제엔 사진전을 비롯해서 무용 퍼포먼스, 갈매기 관련 특강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구청장이 참석해 인사를 하거나 구청장 불참 시엔 담당 과장이 나와 대신 인사라도 했으나 이날은 그런 광경은 볼 수 없었다. 내년에는 수영구청에서 얼마 되지 않은 예산(올해 지원예산 150만 원)마저 아예 없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더라며 행사를 주최한 배정선 회장은 내년 행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퍽이나 고민스럽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정말일까? 수영구청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예산 때문에? 갑자기 어의가 없다.

광안리의 갈매기환송제는 지역축제로 국내는 물론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문화행사이다. 부산일보 최학림 논설위원은 ‘밀물 썰물’ 란(2011.7.6)에서 ‘꽈아오 투어’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보냈다.

‘고 오건환 부산대 교수가 해마다 3월에 열었던 '갈매기 환송제'는 부산 바다를 지키기 위한 행사였다. 지금은 사진가 배정선 씨가 갈매기 친구들의 회장을 맡아 그 행사를 이어간다. 부산말로 고인은 '갈매기 아재'였는데 조카 같은 갈매기들에게 별명을 붙였다. 붉은부리갈매기는 '귀염둥이', 검은머리갈매기는 '고독한 존재', 큰재갈매기는 '황태자', 재갈매기는 '어린왕자', 괭이갈매기는 '폭주족'이라 별칭했다. 작고하기 한 해 전 광안리해변에서 만난 그는 "사직야구장에는 '텃새 부산갈매기'가 있지만 여기 바닷가의 갈매기와 갈매기를 사랑하는 우리들도 부산갈매기다"라고 했다.

그때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 '갈매기 울음소리를 어떻게 표기하는가'이다. 그런데 '꽈~아오'란다. 표기하기 전에는 아득한 소리였을 뿐인데 붙여놓고 보니 그럴듯하다. 소리에 이름을 붙이니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부산관광컨벤션뷰로가 개발한 '꽈아오 투어'가 그것이다. 부산의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아미산전망대, 태종대 등을 연계한 투어인데 180개 팀이 겨룬 철도여행 신상품 전국 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부산문화재단에서는 지난해 '부산, 동쪽에 길을 묻다'에 이어 올해도 '부산, 도심에서 길을 찾다'란 관광프로그램을 내놨다. 이것들은 단순한 코스가 아니다. 부산의 재발견, 문맥화에 값하는 것이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222만 명이었는데 그중 중국인이 전년보다 무려 44%나 급증했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목표는 초유의 250만 명이다. 그들에게 부산의 새로운 무늬를 더 많이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발견해야 한다. 르네상스가 별건가. 모든 것은 이미 이뤄졌다. 오건환 교수의 말처럼 태종대 촛대바위가 이스터섬의 거석 '모아이'보다 못할 게 뭐 있나. 이렇게 새 이름을 매겨 나갈 때 부산갈매기가 '꽈~아오' 하며 날아오를 것이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는 새로 바뀐 강성태 수영구청장이 좀 더 갈매기환송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안리의 갈매기환송제는 정말 대단한 문화행사입니다. ‘작지만 크고, 좁지만 깊은 광안리 갈매기환송제’는 세계화할 수 있는 콘텐츠예요. 해마다 3월이 되면 자연과 인간과의 공존, 큰 약속이 이뤄지는 것이죠. 갈매기의 꿈을 세계에 알린 작가가 리처드 바크라면 그러한 갈매기와 인간의 공존 현장을 만들어낸 세계 유일한 곳이 바로 광안리해변입니다. 이러한 것을 오건환 교수가 만들어낸 것이죠. 그런데 최근에 들어보니 수영구청이 기껏 이 축제에 지원한 돈이 백 몇 십만 원인데 그것도 무슨 이유에선지 내년에는 예산을 주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모양이에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구청장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구청장이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 묻고 싶어요. 시민들이 건 30년 가까이 광안리를 사랑해서 순수자원봉사로 광안리 갈매기 모이를 주고, 환송제라는 축제를 만들어 놓았으면 이걸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게 마땅하지, 이건 아니다 싶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납니다. 수영구청장을 만나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식이라면 축제할 땐 '수영구청과 함께 하는'이란 말도 없애야 할 것입니다. 광안리 갈매기 환송제는 수영구청 차원을 넘어 부산시가 ‘부산갈매기축제’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만나는 문화현장으로서의 갈매기환송제를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수영구청의 단견이 안타깝습니다. 수영구청의 분발을 바랍니다.”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자,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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