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사회, 기로에 선 우리
법원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며, ‘정당하지 않은’ 자유와 권리는 오히려 제한합니다. 결국 판사의 역할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재판을 통해 무엇이 ‘정당한’ 자유와 권리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28p.)
세상이 떠들썩하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사회는 큰 변화와 그보다 더 큰 사건과 사고를 겪었다. 그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건 피해자 등 당사자만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피해자가 감당했을 고통과 인내를 잊지 않아야 할 이유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그 법적 책임에 대하여 경찰권과 검찰권이 행사되고 사법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이른바 제4부라 불리는 언론에 비추어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화제는 또 다른 과제를 남기고는 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회는 법정에 선다. 법정도 사회를 이루며, 법정도 법정에 설 수 있다.
허승 판사의 「사회, 법정에 서다」는 책 제목에서부터 주관적인 시대적 현실감보다 뚜렷한 현실인식이 돋보인다. 법규범과 법현실의 사이에서 온당한 해결을 법 해석과 법 적용의 줄다리기로 모색한 이 책은 다양한 사회과학적 논리를 곁들여 법이론을 해설한다.
달리 여겨질 수도 있는 판결을 풀어서 서술하고 정리하여 조응하게 도와준다. 가령 ① 민사(손해배상·입증책임 및 의료·상속 등 포함), ② 형사(명예훼손·정당방위·업무방해·성폭력범죄·무죄추정원칙), ③ 노동(해고·파업), ④ 경제(기업합병·영업비밀·경업금지·공정경쟁), ⑤ 지식재산(저작권·특허권), ⑥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 및 ⑦ 논의 전반을 관통하는 잣대로서 법익교량에 관한 재론 등으로 재분류가 가능한 법적 논제를 시사성 있는 이슈와 생생하고 간결하게 재구성된 팩트로 되짚을 수 있도록 집필되었다.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법과 재판의 규범과 현실은 유형화된 다섯 가지의 쟁점들로 추려진다. ‘제1부 법과 재판’은 재판에서 다투어지는 사실관계의 법률적 판단에 관한 준거와 규준을 되묻는다. 이어서 ‘제2부 법과 자유’에서는 자유와 책임 또는 권리와 의무를 논의하고, ‘제3부 법과 정의’에서는 법이 수호하는 정의의 가치를 이해관계의 갈등과 분쟁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제4부 법과 권리’에서는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의 범위와 한계를 검토한다. ‘제5부 법과 경제’에서는 경제생활의 개인적·집단적 또는 사회적·국가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학술서가 아니면서도 교과서로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전문적인 쟁점을 재밌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판례를 재구성한 사례는 법적 소양(legal mind) 자체를 요구하는 설명이 아니라 그 헤아림으로 법적 지식과 교양을 기를 수 있게 한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의 가닥은 판사인 저자가 판결에 중점을 두어 재판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그 경로를 따르며 사안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인 까닭에 그러하다. 그 속에 소송 당사자의 대립 구도가 절대적일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상충으로 드러나며, 이익형량의 어려움을 느낄 독자 스스로가 판정할 수 있게끔 판단을 유보한다. 소크라테스식 문답 교수법(Socratic Method)을 적용한 형식이지만, 알차게 느껴진다.
편제에 있어 단락을 나누는 책의 구성에 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본다. 아울러 대구(對句)를 이루는 ‘법과 ○○ 사이’는 각각의 단원을 표상하는 화두가 되고 문제의 제기이자 해답으로 이끄는 열쇠가 된다. 물론 그 실마리는 법이 정립된 그 사회와 우리의 삶에 있다. 사회가 법정에 서게 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법도 사회규범의 하나이기에. 그래서 우리 삶의 갈림길에서 법을 생각하고 가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당성이나 올바름이라 일컫는 정의의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 사례로 천착한 이 책은 법적 고찰이라는 관점에서 전문서적에 걸맞은 체계와 지식을 담으면서도 그 지향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상식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할 수 있게 한다는 시선으로 볼 때 교양서적으로도 알맞은 저술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그런데 재판, 자유, 정의, 권리, 경제 등은 병렬관계에 놓인 관념은 분명 아닐 것인 바, 묶을 수 있는 소주제들을 관통하고 포괄하는 용어를 취사선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자유, 정의, 권리 등의 상호관계 역시 과문한 탓에 의문이 든다. 특히 제1부의 ‘법이 보호해야 하는 것은’이라는 주제는 ‘법과 정의’라는 제목에 가장 적합한 물음으로 사료된다. 독서평론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새로 쓴 이 책을 읽으며 남은 아쉬움이 있다면, 독자의 대상을 학생이라는 호칭을 쓴 부분이 편집과정에서 정제되지 못했다는 점 정도뿐이다.
#금주의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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