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41)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8장 언양방송국 순찬씨④

이득수 승인 2022.05.25 15:14 | 최종 수정 2022.05.27 16:14 의견 0

18. 언양방송국 순찬씨④

아우 법근씨의 이야기로는 자신은 매일 끼니도 잇기 어려운 형편이라 언양국민학교 3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이발 기술을 배운다고 부산으로 나온 이후 구두닦이, 신문배달, 월부책장수, 심지어 중국집배달원에 노가다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하루만 지나면 이제 스무 살이 되는  섣달그믐날 돈이 없어 고향에 갈 엄두도 못 내고 어느 여인숙에 누워 곰곰 생각하다 어차피 한 번 와서 한 번 가는 인생 이렇게 죽도록 일하고 노상 배를 곯느니 차라리 산천경개 좋은 곳에서 부처님 말씀이나 배우며 인생이 뭔지 깨달아 고승대덕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이튿날 바로 전라도의 어느 절에 들어가 밥 짓고 빨래하는 불목하니를 비롯한 온갖 고초를 겪은 뒤에 비로소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암자에서 팔십이 넘어 열반할 날만 기다리는 조실스님의 수발을 드는데 암자 뒷방에서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자기보다 한 살 많은 고시생을 만나 뒷바라지를 하면서 우연히 접한 육법전서를 장난삼아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희한하게 읽는 족족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고 했다. 그래서 어느 오후에 잠깐 머리를 식히는 고시생에게

“형님, 미필적 고의가 뭡니까? 엔간한 거는 대충 이해가 가는데 그건 도무지...”

묻자 깜짝 놀라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 고시생이 그렇게 어깨너머로 잠깐 보고 그 정도 실력이면 차라리 자네가 시험을 쳐보라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탄복했다고 했다. 

당일로 의형제를 맺은 고시생이 자기가 보던 책을 일부 제공하고 가끔 과목별 진도나 성취도 점검하여 벌써 세 번이나 시험을 봐 드디어 올해 1차 시험에 붙었다는 것이었다.

“임마, 니 또 공갈치제? 우리가 어데 한두 번 속았나?”

재근씨가 또 말허리를 끊는데

“보소, 당신은 좀 가만 있어보소.”

한참이나 눈을 들여다보며 기를 꺾고는

“주여...!”

긴 탄식과 함께 눈빛으로 이야기를 독촉했다.

 

이어지는 이야기로 벌써 집에 나이 서른셋인 자신은 만33세까지 단 두 번의 기회가 남았는데 그러자면 이제 서울의 고시학원에 다니며 한 6개월 출제위원을 지낸 대학교수들의 수업도 듣고 조용한 절간에 방을 얻어 3, 4개월 최종정리를 하면 2차 시험도 붙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일본으로 밀항해 동경제대를 나와 방직공장의 공장장으로 출세한 외삼촌 상진씨의 생각이 퍼뜩 머리에 스치면서 그 때 남창역 앞에서 국밥 한 그릇에 빠져 외삼촌을 놓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며 

‘그래 돈이 원수다, 원수. 그놈의 돈만 있었다면 나도 공부를 해서 학교선생쯤은 되고도 남고 체신고등학교에 간 동생 일찬이도 밥만 굶지 않고 몸만 안 버렸으면 지금 판검사 한 자리는 너끈히 하고도 남지...’

침을 꿀꺽 삼키며 연신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래, 대름요. 고등고시에 걸리기만 하면 바로 판검사가 되능교?”
“아입니더. 시험에 걸려도 한 몇 달은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연수성적과 본인의 희망에 따라 판사나 검사로 보직을 받고 만약 무슨 일이 있어 그만 두게 되면 변호사가 되어 밥 먹는 데는 아무 걱정이 없고.”
“아, 그 말 잘하는 변호사 말이지요.”

어느 새 깊숙이 빠져든 순찬씨가

“만약 정 판검사가 적성에 안 맞으면 시골군수를 해도 되고 경찰서장을 해도 되고, 일단 고등고시만 걸리면 나중에 국회의원이나 장관 한 자리는 따논 당상이지요.”

마지막 한 마디에 그만 정신이 혼미해진 순찬씨가

“주여, 주여!”

눈앞에 판검사가 되어 법복을 입은 시동생이 또 번쩍번쩍한 계급장을 단 시동생이, 국회의원, 군수에 장관이 된 시동생이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서상균

긴 이야기의 결론은 이제 마지막 남은 한 10개월의 공부에 적잖은 돈이 드는데 그걸 형님이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6형제나 되는데 하필이면 내가 왜 도와줘야 되는가, 니 보다시피 언양서는 먹고살 형편이 안 되어 이 낯선 사돈 곳으로 와서 벌써 아아가 너이나 되는 자신의 코밑이 더 다급하다고, 언제 우리 형제가 누구하나 부모재산을 받거나 서로 돕고 살았냐고 뒤로 물러앉는데

“형님 말씀도 맞지만 형수님, 제발 제 이야기 한 번만 들어보소. 딱 한 번 들어나 보소.”

눈물이 그렁그렁한 법근씨가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안 그래도 형제 중에 누구라도 힘이 될까 생각해보기는 했는데 구시골의 용맹 없는 큰 형님이나 목발쟁이 세째 형님은 아예 제 밥벌이도 못 하고 막내 라이터기름장사 말근이 동생은 전 재산 라이터돌 한 상자와 자전거 한 대를 몽땅 팔아도 단돈 몇 만 원도 안 된다고 했다. 나머지 둘 중에 부산에서 식당을 하여 그 중 형편이 나은 둘째형님을 찾아 초량중앙시장골목까지 갔지만 10년도 더 지나 만난 형님은 눈만 끔뻑끔뻑하고 허옇게 김이 솟는 국밥을 퍼 담느라 정신이 없는 형수를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대름 보다시피 국밥 한 그륵에 얼마나 한다고 이거 팔아서 우리 식구 다섯 밥 묵고 아아들 공부시키자면 무슨 돈이 남아있겠능교?”

새초름하게 한 마디 던지고는 다시는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슨 돈이 있노? 니말대로 니가 당장 판검사가 된다캐도 이 시골구석에 염소 한 마리 살 돈도 구하기가 어려운데 그 어려운 공부에 얼마나 목돈이 들 낀데. 마 이 형은 없는 셈 쳐라. 그 큰돈이 아니라 막걸리 한 되 마실 돈 아니 묵고 죽을 돈도 없다.”

재근씨가 입술을 씰룩거렸다. 순간

“보소, 당신!”

순찬씨가 눈을 반짝거리며

“이기 어데 보통 일잉교? 판검사라카문 가문의 영광 아잉교? 그라고 만약 대름이 판검사가 되면 우리 상철이, 용철이는 어데 가만 두겠능교? 서울로 데꼬가서 공부를 시키면 그보다 더 한 사람이 될란지?”
“마 택도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라. 못 올라갈 나무는 아에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도 안 들었나?”
“아이구, 이 양반이!”

버럭 성을 낸 순찬씨가

“주여, 이 어리석은 아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애급으로 팔려가 왕의 시종장이 된 야곱이 자기를 팔아먹은 열두 명의 형제를 용서하듯이 이 못 난 아들이 모처럼 찾아온 아우를 돕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먹을 꼭 쥐고 울먹거리며

“그래, 그렇다면 우리 집 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내가 똥 묻은 주라도 팔아야지요.”

결심한 듯 시동생을 바라보자

“아이구, 형수님!”

법근씨가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이 사람이 해까닥 했나? 이토록 우리가 도와준다 치고 돈이 어데 있노? 돈이.”
“돈이 와 없능교? 뜻이 있으면 돈이 있지? 사람이 돈이고 몸뚱이도 돈이고 마음도 다 돈이지.”
“허허, 참.”

엎드린 법근씨가 올려다보니 순찬씨는 입에서 침이 튀는 것도 모르고

“농사꾼 돈이 쌀 아니면 소고, 소도 없으면 논밭이지요.”

이제 완전히 자기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 같았다.

“논밭을 판다꼬? 우리가 팔 논은 어딨고, 이 한겨울에 팔리기는 팔리나?”
“와요? 그중 손쉬운 못 우에 논 너마지기를 팔지요?”

이북면에서도 상답에 속하는 명동 못 위의 논을 들고 나왔다. 언양땅 팔아서 대토하면서 근근이 땅 같은 땅 하나 건진 것이었다.

“그 논 팔아뿌면 우리 여섯 식구는 곱다시 굶어죽으란 말이가?”
“산 입에 거무줄을 와 쳐요? 묵는 거사 내가 책임지지요. 정구지나 딸기, 호박도 팔고...”
“그 까짓 채소가 몇 푼이나 되나? 또 어데 만날 여름만 있나?”
“가을이나 초겨울에는 호박죽도 끼리 팔지요.”
“그럼 저실에는 굶고?”
“정 안 되면 단감 밭에 전정하러 가기나 공장에라도 댕기지요.”
“아이구, 말은 잘 하네. 마 니가 변호사 해라.”

재근씨가 손을 들었다. 하기야 결혼 이후 1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그 똑똑하기도 하고 억세기도 한 아내를 이겨본 일이 없는 것이었다.

“보소. 그라면 그래 아이소. 낼 아침에 끈텅집 사형한테 말해서 논을 내 놓기나 그도 아니면 농협에 잽히기나.”

순찬씨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이구, 형수님!”

나이 어린 형수의 품에 법근씨가 푹 쓰러졌다.

“몰라. 내 형제한테 주는 돈이지만 나는 모린다이. 후제 무신 일이 있어도 니가 채검지고 내 원망은 하지 마라이!”

재근씨가 입을 씰룩거리며 일어섰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 만에 급하게 너마지기를 판돈 15만 원을 쥐고 봉근씨가 떠난 오후였다.

“누님!”

웬 군인하나가 마당에 들어서며

“니가 상철이고 니가 용철이제? 많이도 컸네.”

목소리만 들어도 간이 쿵 떨어지는 큰 동생 일찬씨였다. 

“아이구, 니가 웬일이고? 군에 간다는 소리만 듣고 면회 한 번 몬 갔는데. 내가 올키 누나 짓도 못 하는데 세상에, 세상에 할렐루야!”
“아임더. 누님.”
“그래 고생은 많이 안 했나? 몸은 성하고.”
“예. 창원 39사단에 행정병으로 있어 몸도 편하고 밥도 많이 묵고 고생은 안 합니다.”
“그래. 할렐루야! 모두가 하느님아버지 은혜로다. 주여!”

금방 울먹이며 손을 잡으며

“보자. 너거 자영은 어데 갔더라?”

담 너머로 눈길을 돌리는데 웬 군인 하나가 또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얄궂어라. 오늘 군인들이 와 이래 많노? 아, 그렇구나. 토요일이라 말캐 외박을 나오는구나.”

하고는

“아이구, 눙고 했더니 또길이 사형이네. 사형 이리 와 보소.”

키가 커서 어깨가 구부정한 군인을 불러 세우는데 공교롭게도 둘이다 39사단 마크를 단 상등병이었다.

“사형 여게는 언양 바닥에서 젤로 공부를 잘 하는 내 동생 일찬이고, 일찬아, 여게는 우리 손우동서 남동생인데 이 마실에서 공부를 젤 잘하는 또길이, 아니 맹우길이총각이다.”

친절하게 인사를 시키는데

“오빠!”

끈텅집의 처녀가 뛰어내려오다 일찬씨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빨개지며 얼른 오빠 뒤로 숨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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