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47)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장 첫사랑 그 황홀한 슬픔②

이득수 승인 2022.06.01 20:16 | 최종 수정 2022.06.04 10:15 의견 0

1. 첫사랑 그 황홀한 슬픔②

같은 마을에서 좀체 밤마을을 나오거나 닭서리에 끼지 않는 아이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신장집에 양아들로 들어와 머슴 비슷하게 일을 하는 수태라는 아이였는데 열 살 너머 마을에 들어온 것도 그렇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 글도 모르고 숫기마저 없어 아예 손쳐내놨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열찬이였다.

그 낯선 박스를 통하여 사춘기에 접어든 마을아이들도 부지런히 웃각단, 아랫각단을 왕래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보다도 더 왕성한 빨딱심을 자랑했다. 그러나 앞세메에서 수동댁 담을 돌아 감나무가 드문드문한 다동댁 논과 돌무더기를 거쳐 이 선생집과 출강댁, 전 구장집으로 이어지는 대밭을 향해 휘파람을 불고 돌을 던지며 놀던 아이들은 왠지 그 전처럼 신명이 나지 않았다.

고속도로박스가 뚫리자마자 이상하게 앞새메의 물이 조금씩 줄어들어 달밤에 들여다보면 작은 피래미가 가득하던 빨래터에 물고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뭔가 그 전 같지 않고 어쩐지 재미상도 없어진 것 같은 마을이었지만 웃각단의 수용이와 영곤이, 영근이, 종천이, 아랫각단의 영호, 영관이 종석이, 석찬이에 닭 잘 잡는 광준이, 또 외딴집인 진장의 진태, 봉당골의 석주까지 떼를 지어 부지런히 박스를 들랑거리며 휘파람을 휙휙 불어댔다. 방학이 되면 석찬이의 사촌인 부산의 용찬이도 자주 끼어들었다. 이미 부산이나 울산으로 주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도 너덧이나 되어 여름방학은 오랜만에 친구들이 만나 그들이 각각 새로 맞닥뜨린 객지에서 들은 온갖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름방학 중의 가장 큰 공사, 동네일은 무엇보다도 8.15 광복절기념 삼남면 축구대회였다. 말이 광복절기념축구대회지 사실은 마을의 명예가 걸린 14개 부락의 전쟁이었다. 먼 옛날부터 대체로 한 두 성(姓)씨 또는 단일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시골마을은 평소에 뒷산의 나무를 하거나 도랑물을 끌어 논에 물을 대면서 자주 다투기 마련이었다. 그들로서는 목숨처럼 귀한 논물이나 땔나무가 굳이 어느 마을의 소유라고 할 수 없는 크고 넓은 뒷산이고 또 그 한가운데로 흘러오는 냇물이었기 때문에 내남없이 공동으로 쓰기 마련이지만 가까운 마을이 먼 마을을, 큰 마을이 작은 마을을 괄시하며 세를 과시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해방 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선거구가 넓고 유권자가 많은 도의원선거는 문제가 아니지만 빤한 바닥에 유권자도 적은 면장과 면의원선거는 그야말로 마을과 마을 간, 문중 간의 전쟁이 되었고 아직도 그 때의 당락으로 누구네 집안이, 집성촌이 또 어느 마을이 이웃의 어느 문중이나 마을보다 우월하다, 또는 억울하다는 평판이 나돌았고 선거에 진 측에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앙금이 남아있는 처지였다. 그야말로 단번에 그 묵은 감정을 풀어볼 찬스가 온 것이었다.

 

부산 동래고등학교에 진학한 영호와 해마다 할머니 곽남댁이 사는 큰 집 선농댁으로 여름방학을 지내고 가는 용찬이를 중심으로 곧 축구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물론 마을에 20대의 청년이나 군에서 제대한 향토예비군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축구공을 발에 대보지도 않았고 이미 아랫도리가 무거워 도저히 선수로 뛸 수가 없으니 주로 고등학생들로 팀을 짜야 하는 것이었다.

웃각단의 수용이, 아랫각단의 영호, 영관이, 석찬이, 용찬이, 광준이, 종석이, 진장의 진태 이렇게 공을 좀 찰만한 8명을 뽑고 나니 선수만 3명, 후보선수까지 적어도 7, 8명이 모자랐다. 아랫각단의 성오, 웃각단의 영근이나 영곤이같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아이들은 어디론가 객지로 나갔고 울산에서 공고를 다니다 무슨 쇼크로 숫기도 없이 혼자 중얼중얼하며 외로 도는 종천이도 열외가 되고 구시골에도 주호, 대승이, 기태, 준권이, 철호, 용천이등 여섯이나 또래가 있었지만 그들은 진장에서 소를 먹이다 미뜽걸이라는 넓은 무덤가에서 버든마을과 구시골마을의 짚공차기대회에 워낙 많이 져서 축구 자체의 흥미는 물론 본 마을인 버든아이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이리 저리 궁리하던 용찬이가

“아, 참 열찬이가 있었구나? 열찬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어릴 때 골목이나 미뜽걸에서 짚공을 찬 것은 물론 고등학교까지 다니니 제대로 된 축구공도 만져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열찬이라? 그거 참. 선수는 선순데 있으나마나한 선수 아이가”

영호가 애매한 표정을 짓는데

“다말래기를 못해서 공격도 안 되고, 아랫도리가 어두버서 수비도 안 된다. 구멍이다 구멍!”

국민학교 6년간 줄곧 한반이었던 석찬이가 말하는데

“아이 나도 어린 기 아랫도리는 와 어둡노?”

부산 사는 용찬이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저 몇 번 스쳐 얼굴이나 알 정도지 한 번도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였다.

“원래 그 집 형제가 운동에 소질이 없지. 또 어리서 지게를 너무 져서 아랫도리가 굳어서 그렇기도 하고.”

석찬이의 말에

“그 보다 요즘은 주야장창 소설책만 읽는 모양이더라. 한밤중에 잠이 깨어 오줌 누러 나오면 그 때까지 방에 불이 안 꺼지더라.”

옆집 영관이의 말에

“그보다 요새는 소설을 쓴다고 열심이란다. 버든에서 지대로 된 소설가가 하나 나올지 모리겠다.”

농업고등학교 동급생인 종석이도 나섰다. 소설을 쓴다는 말에 오래 전 「복숭아밭의 사랑」이란 묘한 소설을 썼던 을식이형을 떠올리며 다들 입가에 웃음기가 맴도는데

“그 뿐도 아이다. 울산문화방송의 「한밤의 음악편지」에 자주 엽서를 보내는 모양이더라. 나도 한 번 들었는데 뭐 등억인가 화천에 좋아하는 가시나가 있는 모양이더라. 굼벵이 구부는 재주 있다고 꼴에 제일 먼저 가시나에 눈은 떠서 말이야.”

또 한 친구의 말에 모두들 깔깔 웃다가 그래도 광복절날 중남국민학교로 데리고 가서 하다 못해 후보선수라도 넣자는 결론이 났다.

 

마침내 운명의 8·15 광복절 날이 왔다. 이장 황성권 씨의 인솔로 열다섯 명의 선수들이 십리 길을 걸어 대회장인 중남국민학교로 향했다. 10시에 간단한 기념식을 하고 추첨을 하여 대진표를 뽑았는데 평리팀은 하필이면 11시 첫 경기에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상대가 평소 진장만디를 넘어 장을 보러 다니며 서로 안면이 있을 뿐 아니라 구시골 용천이가 장에 가는 처녀들을 희롱하고 한여름 밤의 참외서리, 수박서리는 물론 한겨울의 닭서리를 서로가 범인으로 지목하며 은근히 감정이 좋지 않은 쌍수정부락팀이였다.

50여 호의 마을이 여기 저기 흩어진 평리와 달리 들도 넓고 마을도 큰 쌍수정은 벌써 한 50명도 넘음직한 선수와 응원단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코흘리개 아이들도 몇 십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가 중남국민학교에 다니는 재학생들이었다. 같은 삼남면이면서 삼남면사무소와는 반대방향으로 자리 잡은 데다 언양국민학교에 다니는 평리마을은 평소에도 면단위행사에 남의 자식취급을 받는 형편에 심판마저 주로 면 직원, 지서 순경이다 보니 이래저래 불리한 형편이었다.

아쉬운 대로 팀을 짜고 나니 응원석엔 마흔이 넘은 이장과 열찬이와 구시골의 용천이, 버든의 수태등 네 명이 남았다. 너무나 왜소한 기천이, 수태를 빼면 유일한 후보 선수가 억지로 붙들려온 열찬이인 셈이었다.

 

이윽고 심판의 휘슬이 울리면서 경기가 시작되자 말자 어찌된 셈인지 전연 맥을 못 추고 이리저리 밀리던 평리팀이 채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첫 골을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손발을 맞춰 연습도 못한 데다 유니폼 맞출 형편이 안 되어 상의만 그냥 흰 러닝을 사서 등에 숯검정으로 등번호를 새길 정도였으니까.

이장이 장탄식을 터뜨리고 수태와 열찬이도 애가 타서 죽을 판인데

“야, 열찬이사형 봐라. 저게 쌍수정응원단에 그 때 노란원피스가 왔네. 그새 가시나 억수로 예뻐졌네.”

용천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과연 그 때의 노란원피스아가씨가 같은 또래 몇 명과 함께 뭐라고 소리 지르거나 깔깔거리며 응원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가씨들은 이제 스무 살도 넘은 것 같았고 주변에는 나이든 총각들과 어른들도 많았다.

“친구, 아니 용천이사형아, 마 잔주꼬 응원이나 해라. 그 전처럼 또 뭐라고 히야까시하다가는 쌍수정청년들한테 시껍묵는 수가 있다.”

열찬이가 주의를 줘도

“아이구, 가시나들 죽여주게 예쁘네. 내사마 아랫도리가 근질거려서 축구고 나발이고 눈에도 안 들온다.”

들은 척도 안 했다.

ⓒ서상균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부산에서 온 용찬이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스코어는 이미 1:4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장이 사온 사이다 몇 병과 열찬이가 떠온 냉수 한 주전자를 돌려가며 마신 선수들이 다시 후반전에 들어갔다. 여전히 흘낏흘낏 쌍수정아가씨들만 쳐다보던 용천이가 어느 순간 운동장의 축구공이 자기 쪽으로 날아오자 재빨리 잡으려고 달려가는데 데굴데굴 구르던 공이 운동장바깥의 배수구에 빠져 꽉 끼어버렸다.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용천이가 어디서 작대기 하나를 주어와 이리저리 들쑤셔 공을 빼내어 운동장에 던져주고

“어이, 공부만 하는 골샌님 사형은 아나? 이 세상이 저 울타리구멍처럼 뻥 뚫린 구멍하고 이 짝대기처럼 기다란 꼬재이로 이루어진 것을 말이야. 말하자면 세상만사가 똥그란 구멍하고 찔쭉한 꼬재이란 말이지. 그래서 그 궁가리를 꼬재이를 찌르면 기분이 좋고 아아가 나오고 말이야. 그런 어려운 이치를 맨날 책만 보는 니가 알 수가 있나?”

의기양양하게 작대기를 흔들어보이고는

“아이구, 저 쌍수정가시나들이 나를 죽이는구나? 노오란 원피스 입은 말없는 저 처녀가...”

휘파람을 휙 불며 뭐라고 쌍수정아가씨들에게 손짓을 해보이고는

“그래 우리 남자들은 모두 이 꼬재이를 좋아야하는 기라. 오죽하면 남자여자가 짜까짜까하는 것을 꼬재이한다고 하겠노? 뭐 인생이 별 거 있나 그저 꼬재이나 드문드문 자주하고 사는 거지. 아이구, 저 쌍수정가시나가...”

입가에 침이 고이며 허리를 배배 꼬는데

“어이, 별난 사형아, 지발하고 그만 좀 해라.”

열찬이가 씩 웃으면서 다시 운동장에 눈길을 돌리는데 갑자기

“어어, 사형아 내 먼저 간데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용천이가 교문 밖으로 내빼고 있었다. 쌍수정처녀들이 진장만디에서 얄궂은 노래를 부르며 달라붙던 예의 그 새까맣고 조그만 머슴아가 생각났는지 용천이 쪽을 보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자 옆에 있던 마을청년들이

“어이, 거 존 만한 새끼 니 내 쫌 보자!”

득달같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결국 1:7의 참혹한 스코어로 평리팀은 박살이 났다. 물론 열찬이가 후보선수로 뛸 기회도 없었다. 쉰도 넘는 응원단이 꽹과리를 치며 난리법석을 뜨는 쌍수정마을과 반대로 병든 수캐처럼 기가 죽고 맥이 빠진 평리팀은 운동장 한 구석의 포장에서 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한낮의 땡볕이 내리쬐는 십리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패잔병의 행렬이 학교 뒷문을 돌아 마산마을을 지나 드넓은 중남뜰과 벌짱마을을 지나 작괘천이 흐르는 푸렁바우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진장의 공동묘지에 도착하자 황 구장이

“전부 욕 봤데이. 내년에는 미리 연습도 좀 하고 동네어른들한테 사정해서 유니폼도 맞차 입고 우승은 못 해도 한 께임정도는 이겨보도록 하재이.”

하고는 구시골 큰집에 볼일이 있다고 각골로 길을 잡았다.

저들만 남은 아이들은 진장만디 참나무그늘에 앉아 숨을 돌리며

“아이구, 분하제? 해필이면 져도 쌍수정팀한테 질 끼 뭐꼬?”

“7번 단 공격수, 두 꼴 넌 글마가 올 봄에 돌쌈할 때 우리한테 잡혀서 코피 터진 놈 아이더나?”

“맞다. 그 어바리같은 놈이 공은 우째 그래 잘 차는지 모리겠다.”

한참을 떠들다 아무래도 분해서 못 참는다고 기어이 오늘 저녁에 쌍수정을 습격해서 수박과 참외도 서리하고 닭도 몇 마리 잡아오기로 했다. 새빗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오면서

“저녁 여덟 시 반이다. 아무도 빠지지 말고 종석이집에 모이라! 알겠제?”

영호가 일일이 쳐다보았지만 열찬이는 모른 척했다.

 

저녁 열한시. 종석이집의 사랑채 군불아궁이에는 쌍수정에서 서리한 암탉 두 마리가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었고 방바닥엔 서리해온 수박과 참외가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광준이가 닭장에 손을 넣을 때 가슴이 울렁거려 간이 떨어질 줄 알았다.”

“나는 참외밭 주인이 후라시를 비출 때 급하게 울타리를 넘는다고 발꿈치가 찔려서 피가 한강처럼 흘렀다.”

서로 무용담을 자랑했다

“글마 있제? 꼴키퍼 하던 주장, 덩치 존 놈 말이다. 나는 그집 마당에 돌을 다섯 개나 던졌다. 장독이나 하나 깨지면 속이 시원할 낀데 전부 헛방인 모양이더라.”

“지난번처럼 가시나나 처녀가 지나가면 뒤에서 궁디나 한 번 만칠라켔는데 얼른거리지도 않더라.”

이윽고 잘 익은 백숙 두 마리를 건져오자 여덟 명의 아이들이 부지런히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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