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이 요구합니다. 원전폭주 정책을 멈추십시오!"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을 기치로 지난 9월 출범한 전국 규모의 사회환경단체 더30km포럼(공동대표 김정환 김해창 이흥만 오문범 원정 정상래)이 고리2~4호기 수명 연장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정당대표, 부산시장, 부산시의회 의장,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에게 보내는 ‘부산시민의 공개요구서’를 발표했다.
더30Km포럼은 29일 오전 10시30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고리2~4호기 수명연장 관련 부산시민의 공개요구서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부산시민은 고리2~4호기 수명 연장의 ‘원전폭주 정책’을 멈출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더30Km포럼은 만약 요구에 대한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2024년 총선에서 여야 정치인에 대한 준엄한 심판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이날 더30Km포럼은 윤석열 정부 들어 고리2호기 수명 연장에 이어 노후핵발전소인 고리 3~4호기의 수명 연장을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은 부산을 사실상 영구적 핵폐기장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며 이는 40년 이상 핵으로부터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아온 부울경 시민의 생명권과 재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강조했다.
더30Km포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수원이 고리2호기 수명 연장 결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의 졍제성분석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공람이나 공청회도 지역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하고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며 공론화 없이 사실상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했음을 상기시켰다.
더30Km포럼은 이 같은 ‘원전폭주 정책’은 원전 최강국을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의 ‘안전무시’ ‘지역무시’ ‘민주적 절차 무시’에 편승한 부산시민에 대한 일종의 국가폭력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물론 부산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부산시장이나 부산시의회 의원들은 대통령의 원전폭주 정책에 동조하면서 폐해를 막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는 게 더30Km포럼의 판단이다. 더30km포럼은 이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우리 스스로 지킨다’는 자구책 차원에서 대통령과 여야대표, 부산시장 등에 국가기관의 존재 이유를 묻기로 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더30Km포럼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현재 강행하고 있는 ‘고리2~4호기의 수명 연장’과 ‘원전입지 내 임시건식저장시설 조성’ 등 일방적인 ‘원전폭주 정책’을 멈추어주시길 간절히 요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부산시민의 요구서’를 발송했다.
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박형준 부산시장, 안성민 부산시의회 의장에게도 ‘부산시민의 요구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이밖에 국회의원 전원과 부산시의회의원들에게도 개별적으로 ‘부산시민의 요구서’를 이메일로 보냈다.
다음은 더30km포럼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부산시민의 요구서 전문이다.
1. 대통령께 보내는 부산시민의 요구
수신: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
발신: 더30Km포럼 공동대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바라는 국민으로, 또한 부산시민으로서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지향하는 시민단체 연대체인 더30km포럼은 윤석열 대통령님께 ‘고리2~4호기의 수명연장’과 ‘원전입지 내 임시건식저장시설 조성’ 등 일방적인 ‘원전폭주 정책’을 멈추어주시길 간절히 요구합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산 기장군 고리2호기에 이어 3·4호기에 대해서도 ‘수명연장’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수원은 지난 2월 원안위에 제출한 ‘건설·운영 중인 원전 예비 해체 계획서’에서 “각각 해체되는 고리1·2호기와 달리 고리3·4호기는 한꺼번에 해체하겠다”며 공식화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며칠 뒤 해당 계획서를 의결하였습니다. 그러나 탈원전 폐기를 국정과제로 정한 윤석열 정부가 원전확대 정책을 본격 추진하자 한수원은 돌연 ‘동시해체’ 계획을 ‘동시(고리 2~4호기) 수명연장’으로 완전히 바꿨습니다. 정권이 바뀌자 부산시민들은 졸지에 폐쇄하기로 전 정부가 약속했던 노후원전 고리2~4호기를 각각 10년씩 연장하겠다는 현 정부의 ‘원전폭주 정책’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형식적인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공람과 요식적인 공청회 절차를 거쳐 일사천리로 ‘원전안전’을 ‘무장해제’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수원은 부산 고리원전 내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임시건식저장시설을 지으려는 계획을 확정하고 이사회를 통해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요? 왜 대통령님께서는 이렇게 원전의 빛만 보시고 그림자는 애써 외면하고 계시는 겁니까? 체르노빌 참사와 후쿠시마 참사가 그저 남의 나라의 일이고 과거의 일로만 보이십니까?
인수위 때부터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정책 추진 모습은 국민이 보기에 대통령님이 역설해 오신 ‘공정과 상식’과는 멀어 보였습니다. 언론은 윤석열 정부를 ‘극우보수’ ‘검찰’ ‘수도권’ ‘영남’ ‘남성’ ‘학벌’ ‘재벌’ ‘개인친분’이 중시되고 ‘여성’ ‘청년’ ‘지역’ ‘노동자’가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원전폭주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노후원전 수명연장’ 발상은 바로 ‘친재벌’ ‘수도권 중심’ ‘지역 무시’ ‘시민 무시’ ‘안전 경시’가 드러난 정책이라면 우리들만의 지나친 생각일까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5월 17일 “고리2호기 수명연장은 부울경 주민을 볼모로 한 도박으로 윤 정부가 대책과 국민 동의 없이 연장 추진하고 있다. 폐쇄가 연장보다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며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조선비즈, 2022년 5월 17일).
고리2~4호기의 수명연장은 부산시민 입장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40년 이상 가동된 노후원전의 영구정지에 한숨을 돌린 부산시민에게 느닷없는 ‘수명연장’조치는 조용히 살고자 하는 국민기본권인 ‘정온권(靜穩權)’을 크게 해치는 불안요소 그 자체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공론화와 같은 민주적 절차를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은 마치 정치가 5공 이전으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대통령님, 수명연장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열 가지도 넘습니다. 저희들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이라도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고리2호기 수명연장이 경제적 실익이 있다고 보십니까? 한수원이 원안위에 제출한 고리2호기 수명연장 경제성분석은 ‘10년간 가동에 1600억 원 흑자’(설비보완비용 3000억 원)라고 하지요. 안전점검기간을 빼면 8년 정도밖에 가동할 수 없고, 가동률이나 판매단가 등에 변수가 발생하면 바로 적자입니다. 공기업 한수원의 크지 않은 이익창출을 위해 800만 부울경 주민을 불안 속에 살게 한다는 건 대통령님이 늘상 강조하시는 ‘상식’과도 배치됩니다.
둘째, 고리2호기는 사실 설계수명연한인 40년 쓴 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는 탈원전에너지전환이 대세이고, 어쨌든 원전산업은 사양산업이지요. 원전단가는 계속 상승하는 반면 태양광·풍력발전 단가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WNISR(세계원잔산업동향보고서) 2022」에 따르면 전 세계 가동원전 411기의 평균수명은 31년이고, 폐로원전 204기의 평균수명이 27.7년인데 40년 이용했으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원전설계 당시 안전성을 바탕으로 한 기능 유지의 최대기간인 설계수명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발생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셋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명연장을 하면 부울경은 결국 ‘영구 핵폐기장’이 된다는 시민들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지난해 3분기에 83.8%입니다. 조만간 원전 외 지역에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짓지 않는다면 부울경은 사실상 ‘영구 핵폐기장’이 될 공산이 높지요. 전국 1166명의 원고가 지난 3월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상대로 ‘사용후핵연료 부지 내 저장계획’ 무효소송을 제기하였지요. 매년 750만t씩 발생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을 갖고 계신가요? 원전 반경 30km안에 200여만 명이 사는 부산에서 일방적인 수명연장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등에도 적신호로 도시이미지 하락을 낳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넷째, 고리2호기 수명연장은 부실한 안전성 검토에다 부울경 주민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일방적 방침에 공론화라는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나 안전규제의 강화, 공청회 절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요식행위에 거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령 경제성과 안전성 모두 확보되더라도 시민들의 의견수렴과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수명연장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수원이 고리2호기 수명연장의 경제성분석보고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안전성평가보고서에서 법적 의무사항인 주민의견 수렴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설계수명 5년 전 ~ 2년 전에 실시하던 원전 안전성 검사 기간을, 설계수명 10년 전 ~ 5년 전으로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은 원전 안전성을 도외시한 정책으로 부울경 주민들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지금과 같이 이렇게 지역희생을 기반으로 한 원전정책을 계속 추진해도 되는 것인가요? 정말 원전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꼭 필요하다면 이제부터 전 국민 홍보와 설득을 통해 장기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대통령님,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자신한다면 기존 원전입지 지역에 수명연장하거나 추가건설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 절차를 거쳐 전력수요가 가장 많은 수도권에 장기적 전략을 갖고 EU기준에 맞는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것이 대통령님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에 맞는 정책 아니겠습니까?
여섯째, 국내 원전이 EU가 분류한 녹색산업 기준에 미치는 수준의 안전성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EU의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조항에 따르면 신규원전이 녹색산업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2045년 전에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고,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자금과 부지 등을 확보해야 하며, 기존 원전도 2025년부터 더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핵연료(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을 조건으로 2040년까지 승인을 받아야 ‘친환경 투자’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나라 원전이 이에 해당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원전이 탄소중립시대의 대안인 것처럼 정부나 언론이 이야기하지만 원전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세계 각국이 다 아는 바 아닌가요? 원전은 대규모 시설 공사로 전체 탄소배출이 재생에너지보다 늘어나고, 온배수 문제로 인해 해양 이산화탄소의 공기배출이 증가하며, 사회적으로 에너지 낭비, 과소비 촉진 구조로 인해 탄소중립사회로 가는데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습니다. 현재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은 약 10%에 불과한데 우리나라의 원전비중 약 25%는 지금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 아닙니까?
일곱째, 고리에 원전사고 발생시, 부울경 주민의 동시대피계획이 마련돼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리원전을 비롯해 우리나라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해운대가 고리원전 반경 20km 이내에 있습니다. 부산의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중 긴급보호조치구역인 원전 반경 30km이내에 사는 200만 이상의 시민들이 사고발생 시 신속히 대피할 수 있는 도로 상황이 갖춰져 있습니까? 동시대피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미국 쇼어햄원전의 경우 불과 수십만 인구의 동시대피계획을 세우지 못해 지역 주민의 반대로 1989년 6조 원을 들여 준공한 원전을 단돈 1달러에 롱아일랜드 주정부에 넘기고 포기, 폐로작업에 들어간 사례도 있는데 이런 사실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여덟째, 고리2호기 수명연장으로는 고리1호기의 안전한 폐로도 원전해체산업도 불가능한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있으신가요? 고리1·2호기가 동시폐로가 돼야 폐로작업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고, 어렵게 유치한 부울경 원전해체센터도 이 같은 현 정부의 방침 아래에선 진전이 없게 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경직성 전원인 원전이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이라고 학계에선 알고 있습니다. 원전업계가 전 세계 1000조 원 시장이라고 하던 원전폐로산업을 중도포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정책일까요?
아홉째, 대규모 원전수출이 지금도 가능하다고 믿고 계신가요? 이명박 정부는 UAE 원전수출이 새로운 먹거리산업이라며 ‘2030년까지 원전 80기 수출’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이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원전수출 실적은 전무하며 목표도 10기로 낮췄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고 현실입니다. 예전의 ‘원전강국’ 일본도 아베 정부 때 원전수출에 적극 나서 우리가 포기한 영국 무어사이드원전과 터키 원전 건설을 수주했지만 결국 조 단위의 손해만 보고 포기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원전수출이 가능한 나라는 중국이나 러시아 정도 아닌가요? 과연 우리나라 원전이 아직도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고 믿고 계신가요? 혹 SMR(소형모듈원전)에 기대를 하고 계신가요? SMR의 경우 대통령님 후보시절 선거캠프에서 원자력에너지정책분과장을 맡았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주한규 교수조차 “안정성이 충분히 검토된 뒤인 오는 2040년 무렵에나 국내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 아닌가요?(경향신문, 2022년 3월 17일).
열번째,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이제는 수습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올해로 체르노빌 원전사고 발생 36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11년이 지났지만 원전 반경 20km내에는 주민 거주가 불가능하지요. 후쿠시마원전의 경우 사고 원자로의 폐로작업에 진척이 없고, 오염수의 해양방출 문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심각한 국제문제로 비화하고 있지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안전을 무시하는’ 친원전 정책의 추진은 안전문제 소홀, 사고발생 시 은폐구조, 원전비리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미국의 원전학자인 베크 박사의 ‘베크의 법칙’에 따르면 원전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 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전은 단순 기계적 고장, 사고만이 아니라 전시 군사적 공격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 부울경은 최대 피해지역이 될 우려가 높은 현실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대규모 원전밀집지역인 부울경이 최대피해지역이 될 수 있다는 시민들의 우려가 기우일까요?
원전을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안전성, 경제성, 대체가능성, 주민수용성’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전의 안전성은 체르노빌, 후쿠시마사고 등에서 보았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으며, 경제성도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면 원전은 다른 전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요. 원전에 집착하면 할수록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늦어져 ‘RE100’을 추진하고 있는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해 국가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국가경쟁력을 강조하시는 대통령님께서 왜 이렇게 ‘위험하고 낡은’ 원전에 집착하시는 까닭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님이 원전에 힘을 실어줄수록 원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은폐구조를 갖게 될 우려가 높아집니다. 원전 관련 학계의 연구비 부풀리기와 부정수급문제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원전학계가 원전비리사고 발생 때 원전안전을 위한 사전 경고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대통령께서는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의 원전업체 방문에 동행한 정부 관료들에게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주문하였습니다(한겨레, 2022년 6월 23일). 정말 믿기지 않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대통령이시라면 “앞으로 친원전정책을 펴나가겠다. 대신에 국민들이 염려하지 않으시도록 안전만은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야 옳았지 않았을까요?
부산 시민들은 대통령님께 묻습니다. 아니 요구합니다. “그렇게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자신하신다면 고리2~4호기 수명연장을 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 주민을 설득해 수도권에 새로운 원전을 지으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실이나 정부 청사, 국회 인근에다 지을 용의는 없으신가요?” 정말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지만 뼈가 있는 말 아닌가요?
결국 원전입지 문제는 에너지정의의 문제이고, 지방분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부산시민의 입장에선 내가 오래 살아가야 할 부산지역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기 위해서, 지역주권 차원에서 고리2~4호기는 더 이상 수명연장을 해선 안 됩니다. 고리원전 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임시건식저장시설과 같은 임시방편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충분한 정보공개 및 찬반논의를 거쳐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원전반경 30km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야 합니다. 지금 부산 시민들은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이 부산시민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데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역 원로들이 박 시장에게 “대통령실 참모가 아니라 부산시민을 위한 시장이라면 고리2~4호기 수명연장에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부울경 지역 여야 국회의원, 시·도의원들도 마찬가지다”라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부산시장이 나서 고리2~4호기 수명연장을 막아 달라, 또한 고리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막아 달라,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사용후핵연료를 분산 저장하는 등 고통을 분담할 것을 제안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통령님께서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민주적이고, 법에 따라 행해져야 할 원전정책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조급하게 시행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대통령님, 원전업계나 원전학계 인사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원전입지 주민의 고충, 탈원전 전문가들의 고언도 한번은 경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원전폭주 정책’이 계속된다면 우리 부산시민들은 2024년 총선 때 여야 정치인할 것 없이 지역주권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결기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산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5년 한수원의 고리1호기 재연장에 반발해 부산지역의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약 120개 시민단체가 뭉쳐서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을 결성, 투쟁한 결과 마침내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을 이끌어낸 ‘시민 승리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엔 여당이던 서병수 부산시장조차 ‘고리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여당 정치인들도 국회 내에 위원회활동이나 산자부에 대한 권고 등을 통해 부산지역의 여론을 적극 전했습니다. 결국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의원들이 ‘고리1호기 폐쇄’ 노력에 대한 시민들의 심판을 적극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금 부산시민의 상당수는 고리2~4호기 수명연장은 고리1호기 때와 마찬가지로 ‘부산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는 폭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40년 이상 원전사고 리스크에 시달려온 원전입지 주민들에게 불안과 고통을 계속 안겨서는 안 됩니다. 원전경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시 돼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런 정치를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의 고뇌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외경을 가진 지도자, 원전입지 국민들의 불안과 고통에 공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간절히 기대하는 바입니다.
2022년 11월 29일
더30km포럼 공동대표
김정환 (부산YWCA 사무총장)
김해창 (경성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인본사회연구소 소장)
이흥만 (부산탈핵시민연대 공동대표)
오문범 (부산YMCA 사무총장)
원 정 (부산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스님)
정상래 (부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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