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16)】 날것 - 임성구

조승래 승인 2023.12.06 16:37 | 최종 수정 2023.12.08 12:45 의견 0

날것

                                  임 성 구

 

 

세종대왕이 달궈 놓은 용광로 같은 나랏말이
혹한을 맞은 듯이 얼어붙을 때가 있다

대화 중 절반인 욕설
국어사전을 뭉갠다

미국말도 일본말도 중국말도 아닌 신조어
학교에서 배웠을까 학원에서 배웠을까

다가가 바른 말 쓰자면
늙은 놈이 좆 깐단다

화끈거리는 이 뒤통수, 늙으면 죽어야지
나랏말 이미 주름져 참 좆같이 시들하다

창의적, 저 미로 같은 말이
목에 칼을 들이댄다

- 『시와 소금』, 2021 여름호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드신 세종대왕이 달궈 놓은 용광로 같은 나랏말이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품격이 떨어져서 혹한을 맞은 듯이 얼어붙을 때가 있다이유인즉 대화의 절반인 욕설을 사용하는 미국말도 일본말도 중국말도 아닌 신조어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과연 학교에서 배웠을까 학원에서 배웠을까

참을 수 없어서 다가가 바른말 쓰자라고 했더니 젊은이들이 늙은 놈이 좆 깐단다고 응수하니 점잖은 시인은 화끈거리는 이 뒤통수를 느끼며 더 논박하지도 못하고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푸념을 한다. “이라는 표현을 들은 충격으로 죽어야 한다는 자괴감까지 들게 했다고 하니 해학적 처리에 웃음이 난다.

필자가 어느 날 서로 상당히 예의를 지키는 지인에게 시집을 보냈더니 주옥珠玉’ 같은 시집 잘 받았다는 전화가 왔었다. 장난 끼가 동하여 주옥을 빨리 발음하면서 족같은 시집이라니요?’ 했더니 지인은 당황하여 그게 아니고 주.. 같은시집이라 정정하기에 농담이고 감사하다는 말로 서로 웃은 적이 있다.

'좆같다'는 사물이 몹시 마음에 안 들거나 보기에 싫은 것을 나타내는 비속한 표현이며 좆같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표준어로 실려 있다. 다만 비속하게 쓰이는 낱말이라는 설명이 있기 때문에 공적인 자리에서 쓸 수 없다고 한다. 흔히 '뭐 같다.'라고 돌려 표현하는데, 주어는 없다의 예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문제가 되었을 때 "''는 사실 다른 것을 의미한 것이다." 라고 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옥 같다고!

5연으로 이루어진 오탁번 시인의 〈폭설(暴雪)〉을 보면 을 상황적 점층법으로 표현하여 재미를 준다.

폭설을 바라본 이장이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사람을 모아 눈 청소한 다음 날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하여 눈 청소 또 한 그다음 날 더 많이 내린 눈을 보고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오탁번 〈폭설〉, 부분 인용)

시인은 저속한 말들이 난무하는 세태가 안타까워서 나랏말 이미 주름져 참 좆같이 시들하다고 표면상은 창의적이지만 저 미로 같은 말이 턱밑에 칼을 들이대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젊은이들에게 좀 만한 이 날것들아’, 말이 무례하게 들리어 지옥 같은느낌이었음을 이제는 자세히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악의 없는 욕 좀 하면서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자. 새해 앞둔 연말인데,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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