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특집 : 김해 장소시】 가락기 1-안골포 왜성 외 32편, 박태일

장소시학 승인 2023.01.13 12:47 | 최종 수정 2023.01.14 09:50 의견 0

김해 장소시

 

가락기 1
- 안골포 왜성  외 32편

박 태 일

 

바다가 밀려 왔다.
사람들이 만든 길
바다가 밀리는 곳에서부터 술래가 되고 싶은
아낙들은 하나둘 갯가로 나왔다.
바다가 밀려와서
계집 하나 회임하기를
눈 푸르고 키 큰 계집.
안골포 아낙들은 서둘러 불을 껐고
일없이 잔을 비우며 마을 사내들은 
어린 딸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가락기 2
- 양동리 고분

한여름 모기들이 물러간 동리 길로
하나둘 돌아왔다.
바다로 나간 사람
소를 몰고 떠났던 사람
삼십 리 고갯길이 어두워지면서 
집들은 바다 쪽 봉창을 닫았다.
양동리 저녁은 쉽게 내려서 
사람들 길은 어둡고
숨죽이며 차는 우물, 공동 우물가로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 때
산중턱에서 수런거리는 사내들이 보였다.
목이 긴 사내 볼이 좁은
짚신 사내 귀가 달아난
먼 전장에서 돌아온 사내들이 
양동리 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립고 그리운 이름은 바다였다,
잠 없는 아이들이 숨어보는.

 

가락기 3
- 봉황대

새가 날았다.
저문 산길을 따라가면
사금파리 하나로 모습 숨긴 봉황대
봉황새 날아가버린 언덕에서 
한때 털거웃 부숭하던 기마족 아이들이 
제기차기로 하루를 보내고
동리 우물마다
소금물이 솟았다.
손으로 입을 막아 사람들은 
가을을 견뎠다.
새가 날았다, 깃털 고운
한 마리 두 마리
가락국의 자모子母들
노을 내린 하늘에 
우수수 바람으로 
몰려나갔다.

 

가락기 4
- 조만포

어둠을 가르고 누운 바다
곳곳의 불빛이 꺼졌다.
조만포 외곽으로
전의戰意가 들끓는 밤, 
사내들은 일찍일찍
아내의 배 위로 기어 올라갔고
갈꽃이 잠덧하는 한 곁으로 
게들은 하얀 버끔을 물고 쓰러졌다.
태야강 먼 물결 소리
바람이 잘 드는 골짜기까지 
힘이 부쳤다.

 

가락기 5
- 유가리 조개무덤

잠든 아이들은 
깨지 않는다.
유가리 언덕에 희게 묻힌 아이들
눈물 흘렸던 일 다
바다로 씻겨가고
반짝이며 발길에 차였다.
코를 막고 입을 막고 둘러서서
웃었다, 눈과 눈으로 마주보면서
바닷가 마을 하나가 소금기로 말라가는 것을
유가리 언덕에서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깨지 않는다.
한번 잠든 아이들은 일어서지 않고
석화된 조갑지들만
부스스 귀를 세웠다.

 

가락기 6
- 용원리 부인당

따뜻하게 숨죽이고 있었다.
3월 지나 용원리 
부인당 가면
서로 떨어져 증발하는 물기슭,
산을 등짐 지고 가라앉은 아버지 
물오르는 감잎 속에서 쿵쿵
심장을 가누는 약한 딸들이 보였다.
포개졌다 어우러졌다
환하게 뚫린 구천 푸른 바닥, 
시시각각 바람이 물을 갈랐다.
오냐 오냐 서에서 동으로 
하늘나라로.

 

가락기 7
- 만어사 돌무지 

바다에서 건너오는 구름에는 
비가 묻어 있었다.
만어산 앞자락에 비를 내리는 구름
신녀信女 만덕의 손등이 다 젖었다.
시든 익모초를 금방금방 토하면서 
매일 저녁 등을 켜는 그녀의 일을
조바심하며 엿보았다.
비에 젖은 손은 희고
더욱 비가 내리면 하얗게 죽으리라.
죽어서도 등을 밝히리라.
만어사 여름 한철 비는 
신녀 만덕의 발등을 덮고 
저녁끼의 돌무지로 
홀로인 강을 몰고 간다.

 

가락기 8
- 가덕도

섬들이 흩어져 비를 피했다.
방풍림의 낮은 키 너머
남도식 발성으로 뒤집혔다 되짚어가는 파도
사내들은 배를 띄워 먼 바닥으로 떠나고 
사내가 빈 마을, 갯가 마을에는
바다가 쳐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허기가 지면 푸른 허기
뭍으로 나가는 산길에는
슬픈 여자의 치마끈이 마구 밟혔다.

 

*「가락기 1」 - 「가락기 8」, 『그리운 주막』, 문학과지성사, 1984, 57-64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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