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특집 : 김해 장소시】 강포집 외 32편 - 박태일

장소시학 승인 2023.01.16 16:22 | 최종 수정 2023.01.17 12:27 의견 0

김해 장소시

 

강포집 외 32편

박태일
 

1
포풀러 강둑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2시 방향으로 벋어 있는 포플러 강둑
포플러 길로 돌아온다
바람이 잦아 그 길에 놓인 집들은 처마가 낮고 
막 끼니를 준비하는 문가로 
개들이 짖어댄다
멀리 멀리 흘러가는 강물이라 했지만
개들 등줄기 너머로 흐르는 것은 강이 아니다
인광을 뿜으며 포개지는 이승의 갈피
오후반 아이들이 몰려나가는
2시 방향에서 3시 방향으로 
저녁볕 기러기가 강을 덮친다.

2
나무들 뒤에는 집들이 집들 뒤에는
낮은 언덕이 언덕을 따르는 양조장 굴뚝이 
벋어 있다 나무들 뒤에는 하늘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사람들 끼리끼리
화투패를 돌리고 개를 잡고 
일없이 돌 날려 장독을 깨는
이빨 모지라진 아이들의 구름 따먹기.

3
키 큰 전봇대 귀를 대고 윙윙
윙윙 산 너머 소리를 훔치던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분교 앞뜰엔 바람이 돌아와
떫은 탱자꽃잎을 날리는 한낮 
때묻은 분필을 하얗게 갈아마시며
선 채로 시들지 않는 분꽃 몇 송이.

4
그리운 날 그리움 많을 때
홀로 간 사람 그리움 많을 때
들마꽃 독한 내음에 취한 불빛
따라 걷는다
풀잎 나직이 발을 덮어서 
자고 나면 그뿐인 여자 같은가
물밑 고인 약돌엔 구름 그대로 
그대로 살없이 박힌 새가슴 여자.

5
빗소리 귀로 들어 
귀로 나간다
거랑을 타고 오르는 요령 소리
3음절만 손수건에 찍어둔다
잔걸음에 매찬 이삭들 넘어뜨리며 다시 
밟아준다 꼭꼭 손을 들어 
흔들어준다
초가 몇 채 바람막이로 나부끼는 
들녘에 상여 떠난다.

6
눈감아 허락하던 너는 가고 
포플러 들대 흐드러진 쇠별꽃 더미
낫을 든 아이들은 강가로 나와
밀려오는 물살을 가르고 
그 물살에 밀려 다시 방천에 오르면
조용히 팔꿈치를 내보이며 네가 걷던
국도 한끝으로 집들이 서서 
실비를 날리는 은사시 넓은 잎
바람 소리 물소리
물밑 고인 빗소리
네 후생이 환한 맨발로 걸어온다.

7
집에 남아 젓 담는다
꼴뚜기 멸치 새젓
젓동이에 뜨는 기름처럼 말간 얼굴은
뒤뜰의 채송화
쉬는 날은
어디론가 멀리 멀리 가더니
열일곱에 배운 잠버릇도 채송화
포플러 둑길 아무데서나 
등을 깐다.

8
손뼉을 친다 포플러
강둑 위로 날아가는 방패연 보며 
방패연 하얗게 묻힐 때까지 
하느님 나라에 사는 풀무치도 새금발도 아기여치도 
하늘로 날아다니는 하느님처럼 행복해질 때까지
손뼉을 친다 제여금
그림자 어두워 그림자 버리고 
바람 속에 엎드린 채 풀똥 씹는다.

9
빛좋은 콩들은 모두 팔려 
해으름엔 손을 턴다
깐 꽁깍진가 안 깐 꽁깍진가 어디
죽데기뿐인 콩대도 연기가 제법이다
마저 태운다 연기 날아가며 다시 탄다
포플러 강둑을 바라보면
빛 좋은 콩들이 팔려가는 행길이 보인다
딴은 
숙맥
숙맥인 감자꽃.

10
포플러 강둑에 나가면
버들치 붕어 잠자리는 한 길
손이 좁은 아내는 마른 돌을 골라 
상추씨를 뿌리고 
강둑 아래로 돌을 굴리며 나는 
버들치 ㄱ 붕어 ㄴ 그런 것들 이름을 불러본다
건너 산그늘 밀려와 
강을 따라 도는 저녁에 
회유의 먼 고기떼 다시 풀린다.* 

 

명지 물끝 ․ 1

갈잎이 덮어 놓은 길을 지나옵니다 숨죽은 배추잎 거적대기 바닥에 닿여 도는 가마우지 인화되지 않는 몇 마리를 북쪽으로 날립니다 물에 물살이 부딪쳐 이루는 작은 그늘에 숭어가 썩고 멀리는 일웅등 첫물까지 파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이응벽이 삭고 다시 사람들이 일어서고 하는,** 


명지 물끝 ․ 2

가는 길 방둑 높고 저물어 오는 사람들 바삐 재는데 작은 돌 주워 다시 물을 향해 서면 비소리 소리 건너 무데기 물옥잠 이름표처럼 간편하게 떠 있는 부표 한나절 겹치는 물굽이에 거꾸로 얽혀 있는 갈뿌리를 씹다 모였다 흩어지는 개개비 잦은 물매질.

 

명지 물끝 ․ 3

후이후이 당집머리 피어 마른 삐삐 하얀 손등을 좆아 돌면 물낯 가득 물휘파람 흩어져 널린 가무락지 해파리 삶이 도마에 올리는 작은 물매기 갯가에는 새로운 아이들이 몰려와 물질을 배우고 어머니 남긴 허벅에 잠시잠시 손을 담궈 밑을 요량하면서 수평선에 밀려온 몇 낱 눈발을 혀로 받는다.

 

명지 물끝 ․ 4

바람 불며 가리라 바람 불어 비 그치면 떠나가리라 마주 떠도는 산과 강을 발바닥으로 지우며 소리 죽은 물줄기를 따라가리라 둥두둥 아리랑 아리랑 열두 굽이 참고 넘는 마음 고개 오늘은 멀리 물을 벗어나는 바람소리 낮게 더 낮게 자갈밭에 물 빠지는 소리.

 

명지 물끝 ․ 5

꼬리 문드러진 준치가 희게 솟다 가라앉았다 장어발이 통발 멀리 드문드문 갈잎이 되받아 주는 청둥오리 울음소리 마지막 찌 끝에 몸을 얹고 물가 곤한 물거품처럼 홀로 밀리면 겨울은 늘 낯선 골목 첫골목이었다.


명지 물끝 ․ 6

산 하나 산에 떠밀려 와 물밑으로 내려선다 쇠기러기 꾸륵꾸륵 그 새로 어깨 짚고 따옴표처럼 돋았다 저녁 물마을 낮은 데 낮은 길은 멀리 빗발로 그치고 쥐불 식은 잿빛 두렁 태삼아 태삼아 하얀 당파 씹으시며 어머니 날 부르는.


명지 물끝 ․ 7

날갯짓 푸른 하늘 꿈꾼다 건너 산자락 재실 낮은 골짝 다시 돌아보며 웃을 때 발 끝에 닿았다 달아나는 털게 달랑게 차운 손 호호 갈잎 젖히며 스며도 함께 쉴 곳 어디에도 없지 잊어버리자 가슴 가운데를 지르는 바람 한 끝 물오리 고개 묻은 모래등 멀리 따로 길을 닦고 터를 이루어 사람들 마을로 가는 모든 지름길을 지워버린다 잊지말자.


명지 물끝 ․ 8
- 고 김헌준

물 곳곳 마을 곳곳 눈 내린다 포실포실 보스랑눈 아침에 앞서고 뒤서며 빈 터마다 가라앉는 모래무덤 하나 둘 어허 넘자 어허 넘어 뭍에서 물로 하늘 밖으로 내 목젖 마른 자리 발톱을 세워 훌훌이 날아가는 붉은 물떼새.

*『그리운 주막』, 79-84쪽. 
**『가을 악견산』, 문학과지성사, 1989, 40-47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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