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창간호-특집 : 고성 장소시】 무이산 문수암 - 박태일에게 외 1편, 황동규
장소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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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0 20:28 | 최종 수정 2023.01.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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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장소시
무이산 문수암 외 1편
- 박태일에게
황 동 규
저 만 쌍의 눈을 뜨고 깜박이는 남해 바다
이처럼 한눈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입구의 어두운 동백들 때문일까.
청담靑潭이 살다 관뒀다는 기호記號, 사리탑에서 내려다 보면
언젠가 시력 끊겨도 몇 년은 게속 보일
저 환한 자란만灣, 떠도는 저 배들 저 부푼 구룸들 저 잔물결들
자세히 보면 자란섬 뒤로
나비섬 누운 섬, 떠다니는 섬들도 있다.
청담 스님이 슬쩍 자리를 비워준다 해도
감을래야 감을 수 없는 이곳에 눈을 파묻지는 않으리.
뒤에 문득 기척 있어
동백이 떨어진다.
동백 뒤에 청담이 나오면 청담을……
바다로 해가 뛰어들고
섬들의 겨드랑이가 온통 빛에 젖는다.*
밤꽃 피는 고성固城
하지夏至 며칠 전
누런 보리들이 들 한가운데 밀집대형으로 버티고
서 있고
파릇한 모 자라는 무논들이 보리를 포위하고 있다.
그 너머론
바다인지 호수인지 물비늘 반짝이는 넓다란 물,
밤꽃 냄새가 사방에
투명 안개처럼 끼어 있다.
하늘의 다락 같은 문수암에 올라보면 아래 물들이
살아 있다.
물속에 머물고 있는 섬들에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이름을 붙여주다가
조그만 외톨이 섬 하나
그가 무어라 하나 귀 기울이면 가까이서
부리 헐렁한 딱따구리가 따다닥 답한다.
밤꽃 냄새가 투명 안개처럼 흐른다. 이 초여름 천지에 누렇게 익은 보리밭이 되든지
밤꽃 냄새가 되든지
따다닥 소리가 되든지
몸이 헐렁해진 나도 무언가 몸으로 되고 싶어
고성 명품 하모 횟집 앞에서 서성대다 문득 고개를
든다.
따끈한 해가 떠 있고
나지막한 산 하나 동그란 구름 한 장 띄우고 있는
푸른 파스텔 톤으로 한없이 한없이 비어 있는
하늘……
생각 같은 것 다 치아라!
하모 하모.**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03, 10쪽.
**『사는 기쁨』, 문학과지성사, 2013, 118-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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