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3호-신인상 수상 소감】 김보성 - 봄눈은 지게 위에만 내린다
장소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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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15:13 | 최종 수정 2023.10.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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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봄눈은 지게 위에만 내린다
김 보 성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실수하여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까 노심초사, 남 앞에 서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버지의 엄함 때문이었는지, 있는 듯 없는 듯 내 앞날은 어떻게 될지 항상 궁금했고 생각이 많았다. 낯가림이 심해 친구도 많이 사귀지 못했다. 혼인하니 맏며느리. 말 많고 탈 많은 씨족 마을 넓은 집안에서 사소한 일이라도 지나치는 법 없이 행동해야 했다. 어머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자그마하게 사업을 하셨다. 재혼하신 새 어머님은 집안 대소사에 별 관심 없으셨다.
아버님 자금조달부터 아이 키우기 사업에 공부까지, 몇 십 년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사십 년 가까웠고, 거울 속에는 어떤 할머니가 서 있었다. 직원 많이 쓰는 업을 접고 노후를 즐기며 생활비가 나오면 고맙고, 그렇게 생각한 게 착각이었을까. 육 년째, 입에서 입으로 퍼져 고객은 늘고 나이 드니 일은 더욱 겁이 났다. 꾀가 날 때쯤 찾아온 그녀, 십 년 도반으로 화윤선차회에서 같이 차명을 받은 뒤, 몇 년 동안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찾아왔다, 시를 쓰고 있다고 했다. 반가워서 따라나섰다. 무슨 용기였는지. 그렇게 가게 된 경남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시를 써 본 적도, 별 관심도 없었다. 문외한이었다. 꿔다 논 보릿자루가 맞는 표현이었다. 엉뚱하게 한마디씩 한 게 고작. 이게 시가 되나요? 웃으셨다. 2018년 봄학기부터 지금까지, 한번 덖어 보세요. 아니 널어서 말리라니까. 어허 둥글게 살살 비비는 게 그리 어렵나. 태우기를 여러 차례. 쓴맛인가 하면 달고 짠맛인가 하면 감칠맛. 허공을 감도는 묘한 무엇. 문득, 이게 뭐지,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숨 쉴 수 있는 탈출구라 생각했다. 동동걸음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일터, 그러다 끌어당겨서 폐 깊숙이 맑은 공기를 채우니 동차송 약탕시가 목을 간지럽혔다.
잣나무 비 떨어지는 소리는
물 끓는 소리
조용해지기를 기다린 뒤
한 사발 우려 마시는
춘설차 그 어떤 맛보다 뛰어나다네
“사람은 뭐를 하든 진득해야 된다이.” “살다 보면 내 말 할끼다.” 등짐으로 이골이 난 아버지 항상 하셨던 말씀이다. 천수답 비 기다려 먹이고 입혔지만 잔소리쯤으로 여겼다. 그 듣기 싫었던 잔소리를 지금은 자식들한테 내가 하고 있다, 자식은 손자한테 또 그리할 터. 굳이 일 만 시간의 법칙을 안 들먹여도, 나이 드니 내가 꼭 아버지다.
김보성 해적이
1960년(1세) 경남 창원군 동면 단계리 676번지, 아버지 김순조, 어머니 김분득 사이에서 태어나다. 호적을 2년 늦게 올려 남동생과는 한 살 터울.
1967년(8세) 신방초등학교 입학. 왕복 이십 리 길 걸어 다니다. 2부제 수업, 경상남도대회에서 준우승할 정도로 합창부 활동을 열심히 하다.
1973년(13세) 남녀공학 창덕중학교 입학.
1976년(16세) 마산여자상업학교 합격했으나 둘을 고등학교 보내기 어려워 남동생에게 양보해 입학을 포기하다
1977년(17세) 마산여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하다.
1980년(20세) 경남대학교 가정학과에 합격했으나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등록을 포기하다. 마산수출자유지역 소와전자 자재과에서 일하면서 동생 학비를 보태다.
1986년(27세) 김부종과 혼인하다. 맏며느리로 집안 대소사 참여.
1987년(28세) 아들 김현우 태어나다.
1991년(32세) 딸 김연정 태어나다. 외식업을 시작하다.
1995년(36세) 내외 열심히 벌어 42평 아파트로 이사하다. 기뻐 잠 못 이룬 밤.
2000년(41세) 창원전문대학교에 입학하다. 식품조리학 전공. 사업을 번창시킬 목표로 공부 시작하다.
2002년(43세) 창원전문대학교 졸업하다.
2008년(49세) 사단법인 화윤선차회 차명(윤정), 차사 자격증 얻다. 창원 람사르총회에서 공수선차 시연하다.
2014년(54세) 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3학년에 편입학하다.
2015년(55세) 사단법인 중국차, 다예사 자격증을 얻다.
2016년(56세) 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하다. 식품영양학사.
2018년(58세)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등록하다.
2023년(63세) 『장소시학』 제3호에 『곰보 배추』 외 17편으로 신인상 당선, 문학사회 활동을 시작하다. 현재 김해 장유에서 ‘팥고방’(단팥죽, 팥빙수 전문점)을 육 년째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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