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5-권두칼럼】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 충담사의 「안민가(安民歌)」를 읽고
정영자 문학평론가 / 통도사 영축문학회 회장
시민시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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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3 12:33 | 최종 수정 2023.05.03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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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눈부신 5월이다. 4월의 온갖 꽃이 함께 피고 지더니 어느덧 아파트 벚꽃 터널은 녹음방초로 흔들리고 있다. 새삼 가고 오는 계절의 무한한 초대가 눈물겹다. 두어 달을 검사와 진료로 서울과 부산에 오가면서 생각의 줄을 놓기도 하고 기둥을 만들기도 했다. 그 사이 나의 봄은 진초록 공간에서 피다가 열렸다.
컴퓨터 ‘워크방’을 열어 차근차근 원고들을 정리하여 올해에도 5~6권의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쌓인 것이 진정한 삶의 하루하루였고, 내 삶의 역사였다.
절해고도의 남해 끝자락에 유배를 온 서포 김만중이 살았던 섬 중의 섬을 고향으로 한 부모님들이었지만, 일찍이 남녀평등을 실천하여 딸아이를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부모님의 혜안에 다시금 감사드린다. 그리고 세월의 지난한 어려움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아이들이 열심히 맡은 일을 하는 하루하루도 감사하다. 계산적인 인간관계가 만연한 가운데에서도 인연의 줄을 이어오는 미쁜 사람들이 또한 고맙다. 여기에 무얼 또 바라겠는가.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걱정스러운 일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끔 뉴스에 비치는 정치 현장을 보면, 무슨 국회의원 수준이 저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조롱과 걱정이 섞인 비판을 할 때가 많다. 면서기나 동사무소 근무도 해본 적이 없는 패기와 기교만 넘치는 사람들이 내뱉는 정치 분석을 듣다 보면, 속 빈 강정 같은 허무함만 느끼며 “에이!”하고 뉴스를 꺼버린다. 백성들의 선택이 잘못되어 생고생하는 것이기에 누굴 원망할까 자포자기하다가도 국제 정세와 한반도의 운명을 생각하면 무관심하게 방관할 수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면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를 다시 펴고 시대를 헤쳐갈 혜안을 구한다.
왕과 신하들의 갈등으로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지고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지자, 신라 경덕왕이 충담사에게 부탁하여 「안민가(安民歌)」를 짓게 하였다. 이에 충담사는 '임금, 신하, 백성'의 관계를 '아버지, 어머니, 어린아이'라는 가족 관계에 비유해 친근감과 설득력이 있는 덕담적 시구의 향가를 지었다. 개인적 서정보다는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고자 한 현실 효용적인 노래로, 유교와 불교의 애타사상(愛他思想)·민본사상(民本思想)·정법사상(正法思想)·정명론(正名論) 등의 사상이 이 노래의 바탕을 이룬다. 핵심 내용은 왕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비유하면서, 각기 자기 본분을 다하면 나라와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 안에서 책임감 있게 사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근본이고 우리가 맞은 사회적 혼란을 바로잡는 해결책임을 충담사의 「안민가(安民歌)」가 오늘의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래서 시대를 넘어 오래 남는 모양이다.
정영자
문학평론가
통도사 영축문학회 회장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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