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보수세력 영구 집권 음모

문화계 블랙리스트, 보수세력 영구 집권 음모

조송현 승인 2016.12.29 00:00 | 최종 수정 2017.02.04 00:00 의견 0

“표를 찍어주지 않는 문화계 인사들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나요?”

2015년 3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국제신문사 논설위원들과의 오찬간담회 중 했던 말이다. 취임 이후 문화행정에 대한 필자의 비판적인 질문에 서 시장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물론 좌중 전체에게 발표하듯 발언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서 시장은 필자에게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서 시장의 이 말은 문화행정 난맥상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직감케 해주는 것이었다.

서병수 시장 취임 이후 문화행정은 ‘진보 쳐내기, 보수 살리기’로 특징 지워진다. 첫 번째가 부산문화재단 이사장에 보수 인사인 최상윤 동아대 명예교수를 임명한 것. 부산예총 회장 출신인 최 명예교수는 앞서 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에 탈락했던 인물. 응모했다 탈락한 인사를 더 높은 자리인 이사장에 임명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상식 밖이었다. 문화행정의 역주행이라는 비판여론을 자초할 만했다.

두 번째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출품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취소 압력. 서 시장은 BIFF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에 대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서 시장은 BIFF 조직위원장으로 영화제  수장이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이 BIFF의 국제적 명성을 해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서 시장 이전 18년간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BIFF가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하자 결국 ‘BIFF 손보기’, ‘이용관 집행위원장 찍어내기’로 이어졌다.

상식적이지 않은 위의 두 가지 사건은 ‘진보 쳐내기, 보수 살리기’ 시각으로 해석하면 금방 이해된다. 그리고 서병수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사무총장에 발탁된 대표적인 친박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많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표를 주지 않는 진보좌파 문화예술인은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모든 의문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와도 같다.

부산문화계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최상윤 명예교수를 부산문재단 이사장에 임명한 이유는 뭘까? 부산문화예술계는 보수 성향의 부산예술인총연맹(부산예총)과 진보 성향의 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 등 양대 단체가 있다. 그런데 예술인 숫자는 예총 대 민예총이 8 대 2 쯤 된다. 답은 간단하다. 표가 많은 보수 성향의 예총 소속 예술인을 결집시키기 위해 보수 진영 인사이자 예총 회장 출신인 최 명예교수를 낙점한 것이다. 부산문화계 발전을 이끌 능력과 자질은 애초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다이빙벨 사태’도 마찬가지다. 다이빙벨이 영화제 상영작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보수성향의 예총 측 인사들이 상영 취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 서 시장은 직접 ‘상영 취소’ 언급을 하고, 나중에 상영 강행에 대한 보복성 조치를 BIFF에 취했다. BIFF를 부산문화의 상징이자 자랑으로 여기기보다는 ‘진보좌파 영화인의 온상’ 쯤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병수 시장의 ‘표’ 발언과 그의 문화정책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맥을 같이 한다. 표를 주지 않는,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쳐내거나 지원을 끊어 고사시키겠다는 계획의 증표라는 점에서 그렇다.

SBS 보도에 따르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등 야당 정치인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린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인과 경향신문, 한겨레 등의 언론사가 포함돼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배후에서 주도하고,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정관주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전 문체부 차관)이 2014년 중반부터 이듬해까지 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빙벨' 상연 건으로 갈등을 빚은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과 서병수 부산시장(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연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건과 관련해 박 대통령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계속 쳐내면 나중에는 한 줌도 안 되는 같은 편 가지고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지 않은가?

표는 주지 않고 정권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을 찍어내고 그 자리에 표를 주고 정부에 우호적인 보수계 문화예술인을 채우자는 계획의 핵심이 블랙리스트이다. 그리고 블랙리스트의 작성 목적은 바로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같은 유력 대선주자의 지지층을 허물어 보수정권을 영구화겠다는 것이다.

결국 결국 청와대 기획, 문체부 주연의 블랙리스트 작성 작업이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친박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블랙리스트의 궁극적인 목적’을 현장에서 실행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서 시장의 ‘표’ 발언이 그 근거다. 바로 보수세력 영구집권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는 말이다.

비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뿐이겠는가? 보수세력 영구 집권을 위한 블랙리스트 작성은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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