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에 의해 가톨릭 신학, 이른바 스콜라철학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스콜라철학의 우주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오롯이 이식받은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는 구석구석까지 물질(에테르)을 가득 채운 구(球)로서 진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운동은 움직이게 하는 힘과 움직여지는 물체 사이에 접촉을 필요로 하기(근접작용) 때문입니다.
또 스콜라철학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神)의 존재에 관한 첫째 증명은 ‘천구의 운동은 제1 추동자(原動者), 즉 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의 일부 대학에서는 이러한 스콜라철학의 우주관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이자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 1295~1349)입니다.
천구의 운동 자체가 신의 존재 증명을 보장하지 않는다 ... 최초 운동은 영원히 계속되므로
오컴은 신의 존재에 관한 성 아퀴나스의 첫째 증명의 타당성을 부정했습니다. 오컴은 모든 천구가 돌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곧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가 내세운 근거는 간단합니다. 신이 최초에 부여한 추동력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최초의 운동을 신이 준 것은 틀림없지만 현재의 천구 운동이 곧 신의 존재를 뜻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신이 최초에 부여한 추동력이 시간이 지나도 약화되지 않는다면, 각 천구를 돌려주는 천사는 필요 없게 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 등장합니다. 오컴은 “조금이면 족할 것을 가지고 많이 사용하는 것은 낭비다. It is vain to do with more what can be done with fewer.”라고 했습니다.
오컴의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까지 많은 것을 가정하면 안 된다) “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보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용어는 오컴의 사후 500년가량 후인 19세기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흔히 ‘경제성의 원리(principle of economy)’라고도 불립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입니다. 이 명제는 현대의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 지침이 됩니다.
오컴의 면도날 : 적은 수의 가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더 많은 가정이 필요한가?
장 뷔리당(Jean Buridan), 필로포누스(John Philoponus)도 오컴과 같은 주장을 펼쳤습니다. 천사가 천구를 회전시킨다는 것을 부정하고, 태초에 천체에 주어진 추동력이 천구 회전을 계속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최초 추동력이 약화되지 않는 이유로 ‘하늘에는 공기저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제법 과학적인 근거를 댔습니다.
뷔리당은 오컴처럼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성서에는 천구를 운동시켜 주는 책임을 맡은 지적 존재가 있다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구태여 그런 지적 존재가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이 각각의 천구에 추동력을 주었고, 그 힘이 각 천구를 계속 움직여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컴은 또 물체에 운동을 주기 위해서 반드시 물리적으로 접촉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 진공을 통해서도 힘을 전달할 수 있다며 스콜라철학 우주관의 ‘진공 불가’ 내용을 반박했습니다. 그는 자석의 작용을 예로 들었습니다. 자석의 경우,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철편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즉 힘은 오늘날 알려진 중력처럼 원격작용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를 확장하면, 힘을 전달하기 위해 우주 공간은 굳이 물질로 가득 차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진공에서도 운동을 일으키는 힘이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관의 ‘진공 불가’ 주장에 강펀치를 날린 것이죠.
힘은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전달된다 ... 진공의 존재도 가능하다
오컴은 또 이슬람을 거쳐 중세 유럽에 전해진 필로포누스의 ‘추동력 가설’을 부활시켰습니다. 필로포누스의 제안에 따르면 힘이 물체에 추동력(impetus)을 주면 물체의 운동이 일어나는데, 종국에는 마찰력에 의해 그 물체는 정지합니다. 오컴은 필로포누스와 더불어 화살은 진공 속을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이론에 반합니다.
추동력 논자들은 중세의 대학에서는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은 널리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주류 이론은 디오니시우스와 아퀴나스가 발전시켜 기독교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이었습니다. 이 우주론에서는 (유한한) 우주 중심에 비천하고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있으며, 그 둘레를 점차 완전성과 고귀함이 높아가는 아홉 개의 천구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들 천구는 천사에 의해 움직입니다.
반면 추동력 논자들은 지구는 무한한 우주 속에 위치하여 날마다 자전한다고 생각했고, 천구의 운동을 일으키는 지적 존재(천사)와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제거해버렸습니다.
기독교 우주관에 가려졌던 추동력 가설은 15세기 들면서 빛을 보게 됩니다.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이 이를 공식적으로 가르친 것입니다. 파도바대학은 1404년 반교권적, 반교황적 국가였던 베네치아의 수중에 들어가 비주류 철학(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파도바대학은 상당히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분위기였는데, 특히 과학 방법론에 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파도바의 학자들도 갈릴레이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는 실험을 포함한 과학 방법론을 거의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개혁적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파도바대학에 취임한 것은 1592년이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