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자신이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에 관해 인터뷰하는 빌 게이츠. 출처: 유튜브(Time)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니콜 애쇼프/황성원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어 보고,
閉門閱會心書(폐문열회심서)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으며,
開門迎會心客(개문영회심객)
문 밖을 나서 마음 맞는 곳을 찾아가니,
出門尋會心境(출문심회심경)
이것이 곧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此乃人間三樂(차내인간삼락)¹⁾
(㊤편에 이어) 게이츠 재단은 “박애 자본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박애주의의 선봉에 서 있다. 록펠러, 카네기, 포드 등 전통적인 재단들과는 달리 박애 자본가들은 옛날식의 자선활동을 신뢰하지 않는다. 박애 자본가들은 자신들을 갑부로 만들어 준 자본주의의 힘을 이용하여 전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을 건설한 뒤 게이츠 부부는 1990년대에 아프리카 곳곳을 여행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처한 운명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또한 미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의 동급생들과 비교해 뒤처진다는 점에 크게 마음이 쓰였다.
게이츠 부부가 보기에 문제의 답은 자본주의 시장의 비효율성에 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부富가 증가할수록 돈을 벌 수 있는 금전적 인센티브가 많아진다. 반대로 부가 줄어들면 돈을 벌 수 있는 금전적 인센티브가 제로까지 떨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보다 필요한 게 더 많지만,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센티브는 전무하다. 필요는 지불능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이츠 부부는 가난한 아이들이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어 가거나 학업 성적이 부진한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이 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문제를 규명한 게이츠 부부는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백신 개발과 교육에 대해 게이츠재단의 프로젝트들은 창조적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 준다.
저소득국가에서 말라리아, 로타바이러스, 폐렴 같은 질병들은 아직도 치명적이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에 집중된 제약 산업계는 이런 질병의 백신을 개발하지 않았고, 지금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들은 말라리아 치료보다는 대머리 치료에 더 관심이 많다. 왜냐고? 말라리아나 설사, 폐렴 백신 같은 상품은 ‘부유한 나라를 시장으로’ 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이츠 재단을 이용하여 가난한 나라에 백신 시장을 만드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제약회사들이 백신을 만들도록 자극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 이 백신을 받을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로 구성된 시장을 보장해 주고,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면, 적당한 연구 자금 지원으로 이들을 유도하여 실제로 백신을 만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획의 작동 방식은 이렇다. 먼저 게이츠 재단이 백신 개발 연구에 자금을 지원한다. 그 다음으로 저소득국가에서 시장을 형성한다. 이를 위해 재단의 자금을 지렛대 삼아 정부에 빈민들을 위한 백신을 구매하라는 압력을 행사하여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게이츠 부부는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붕괴했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래서 공교육 제도에 시장 메커니즘을 적용하여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기본적인 생각은, 공교육 제도에 시장 논리를 적용함으로써 교육 기업가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경쟁을 통해 모든 학교가 더 나은 실적을 올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을 대하는 방식과 똑같이 학교를 대함으로써 ‘모든 공립학교들이 학력 향상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실적에 따라 사람을 고용하고 해고하며, 성공적인 방식으로 학교를 설계할 자유를 가진 시스템을 만든다. 성공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공교육을 개혁하는 데 걸림돌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교사들이다. 연공서열, 석·박사를 우대하는 급여제도, 정년 보장과 같은 반자유시장적 메커니즘이 진정한 교육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애물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게이츠 재단은 정년보장제도와 연공서열 권리에 반대하는 로비 단체에 돈을 지원해 왔다. 이와 함께 교사 능력 측정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수억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게이츠 부부는 분명 사태를 파악하는 안목이 있다. 이들의 백신 계획은 전 세계 의로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게이츠 부부의 미국 교육 프로젝트는 연방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한다. 하지만 게이츠 모델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이 불평등을 일으키고 강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치 아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을 자본주의 시장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게이츠 재단의 모델이 엄청나게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게이츠 부부의 시장은 이윤을 동기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시장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우리가 사용하고 만드는 물건은 이윤을 위해 시장에 내놓고 매매하는 상품으로 정의된다. 무언가가 상품이 되는 순간, 해당 상품의 가치는 그것이 이윤을 발생시키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난다. 그리고 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사람마다의 지불능력에 좌우된다. 좋은 예가 백신 문제이다.
게이츠 부부는 가난한 나라의 문제는, 돈이 없어서 백신 같은 물건에 대한 수요를 전혀 창출하지 못하다 보니 상품 생산 순환에서 배제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게이츠 재단은 기업에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어 제약회사들에 수요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서비스는 장기적으로 재단이 수요를 지원할 필요 없이 사람들이 스스로 백신을 구매할 능력을 갖추리라는 희망에서 상품으로 전환된다. 문제는 상품화의 결여로 규정되고, 해법은 자본주의적인 의료서비스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서비스가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야 할까?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의료서비스가 상품일 때 사람들은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만성적인 질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고통 받는다. 미국에는 예방 가능한 사망 사건이 매년 4만 5000건씩 발생하고 있다.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빈민들의 문제를 시장의 실패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우리는 의료서비스가 지불능력과 관계없이 권리로 보장되는 보건의료시스템을 구축할 가능성을 차단하게 된다.
보편적인 의료보장을 해주는 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건강하다는 증거가 압도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가 상품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이츠의 입장은 전 세계적인 건강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문제적이다.
빌 게이츠는 시장 논리가 공교육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늘리면 공교육이 크게 개선되리라고 주장한다. 공립학교들이 다른 학교들과 경쟁하면서 시험 점수 향상을 통해 그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겨우 폐쇄하거나 사립 차터스쿨(공적자금을 받지만 교사, 학부모, 지역단체 등이 설립하여 운영하는 학교)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교육의 목적이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를 시장논리에 따라 조직할 수는 없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생들은 인적자본이 아니다.
두 번째 문제는 더 심각하다. 많은 비정부기구들을 포함하여 게이츠 재단은 뼛속까지 비민주적이다. 막대한 재력으로 권력을 휘두르지만,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게이츠 재단은 2006년에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이하 ‘녹색혁명’)이란 프로젝트를 록펠러 재단과 함께 시작했다. 게이츠재단은 아프리카 국가의 빈민 대다수는 농민이기 때문에, 농민들의 생산성과 소출을 향상시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여 빈곤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게이츠 재단의 다른 프로젝트들이 그렇듯, 녹색혁명의 목표는 투자자들에게 아프리카 농업에서도 수익을 남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녹색혁명은 소출 향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프리카 농민들의 비공식적인 종자 공유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소출이 적은 공유 종자들은 일대잡종 종자²⁾로 교체한다. 일대잡종 종자는 소출은 많지만, 해마다 새로 씨앗을 구입해야 한다. 그러므로 종자 시장이 형성된다. 그리고 새로운 종자에는 살충제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살충제 시장도 생겨난다.
과학자들과 식량주권 활동가들은 녹색혁명 프로젝트가 발표되자 격분했다. 세계은행이 아프리카에서 녹색혁명 프로그램을 이행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불평등과 토지 수탈, 생태적 피해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기 때문이다. 게이츠 재단의 녹색혁명도 세계은행과 같이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
전통적인, 곧 낙후된 아프리카 농업 관행이 아프리카 빈곤과 영양실조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경험적인 연구 결과와 어긋난다. 그러나 녹색혁명은, 아프리카 농부들은 현대적이고 똑똑한 서구 농민들의 관행을 따라 생산성을 높여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지속적인 비판을 받고 있지만, 게이츠 재단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정책 목표를 밀고 갈 돈이 있기 때문이다. 게이츠 재단은 농민과 지역공동체 집단에게 ‘기존 농민들의 종자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 지원하고 강화하면 좋겠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기존 시스템을 폐기하고, 이윤 동기가 생산과 분배를 주도하는 새로운 민간 시스템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할 뿐이다.
민주적 메커니즘의 부재는, 농민들에게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방도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시스템은 곧 식량안보이고, 사회적 행복이기도 하다는 것을 전제로’ 녹색혁명은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유전자 조작 종자를 구매하여 사용하라고 제안한다. 이곳 농민들은 수천 년간 종자를 재사용하거나 공유해 왔고, 대부분은 너무 가난해서 가격이 얼마건 간에 종자를 살 능력이 없다. 농생태학자들은 단작單作에는 심각한 생태적 위험과 생장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경작 모델이 큰 위기를 맞게 되리라며 우려한다.
하지만 녹색혁명은 이 모든 문제들을 무시한다. 식량 주권에 대한 국가와 그 국민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전문가이고, 아프리카 농민들은 가난과 억압에 너무 시달려서 해법과 전략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간주한다.
“사려 깊고 헌신적인 작은 시민 집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세상은 오직 이런 식으로만 바뀌어 왔다.” 멀린다 게이츠가 가장 좋아한다는 이 말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소수의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이들만이 세상을 바꿨던 것은 아니다. 거대한 변화는 민주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사회 변화를 위한 급진적인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게이츠 재단은 부를 재분배하지 않지만, 공적인 부富는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운동들은 부를 재분배할 것이다.
※1)신흠(申欽. 1566~1628), 『상촌야언象村野言』 2)서로 다른 종種이나 계통 간의 교배를 통해 형성된 품종으로서, 자가채종自家採種을 하면 그 형질이 유전되지 않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 씨앗을 구입해 써야 하는 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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