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나이트』와 〈만전춘〉(후편)

조송원 승인 2018.07.17 14:28 | 최종 수정 2018.11.04 11:52 의견 0

길을 가면서 샤리샤르 왕은 동생에게 말했다.

“저 요상한 여자가 우리보다 몇 배나 힘센 마신을 다루는 솜씨를 보아라. 마신은 우리가 겪는 불행보다 훨씬 더 큰 불행을 당하고 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두 형제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고, 길을 재촉하여 다시 왕궁으로 돌아왔다.

샤리야르 왕은 왕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정조를 함부로 저버린 왕비를 체포하여 때려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직접 칼을 빼어들고 후궁으로 들어가서 시녀들은 물론이고 함께 놀아난 사내노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동생 샤자만 왕도 그의 나라로 돌아갔다.

샤리야르 왕은 이 세상에서 절개가 굳은 여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불신감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처녀를 하룻밤만 데리고 잔 뒤 왕의 명예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여 다음날 아침이면 모두 죽여 버린다는 무서운 맹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왕은 그 맹세를 지켜 그날부터 처녀와 하룻밤을 잔 뒤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죽여 버렸다. 왕의 끔찍한 맹세는 변함없이 3년이나 지켜졌다.

발레 세헤라자데☞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갔다. 왕을 저주하고 왕과 나라가 망하기를 알라께 빌 지경이었다. 여자들은 아우성을 치고 어머니들은 눈물을 흘렸으며, 딸 가진 부모들은 딸을 데리고 도망쳐 버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성 안에는 왕에게 바칠 만한 나이 찬 처녀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왕은 대신에게 또 처녀를 하나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온 나라를 뒤져도 처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은 이젠 죽었구나, 하며 슬픔과 근심에 떨었다. 마침 대신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큰 딸 샤라자드, 작은 딸은 두냐자드였다. 큰 딸은 박식하고 총명하며 교양 있고 쾌활하고 상냥했다. 또한 역사, 철학, 예술 등 모든 방면에 학식이 풍부하고 기예에 두루 통달했다. 특히 옛 나라들과 과거의 통치자에 관한 많은 역사서를 수집하고 있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다.

큰 딸이 수심어린 아버지에게 연유를 묻자, 대신은 큰 딸에게 근심거리를 상세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샤라자드는 이렇게 말했다. “오, 아버님, 알라께 맹세하건대, 그런 끔찍한 일이 언제까지 계속 될까요? 저는 방금 임금님과 여자들을 모두 파멸에서 구해내는 방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 대신 제가 임금님과 결혼을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딸이 왕과 결혼한다는 얘기에 아버지는 펄쩍 뛰었으나 샤라자드는 뜻을 꺾지 않았다. 대신은 한 상인의 당나귀가 겪은 끔찍한 봉변을 딸이 똑같이 겪을까봐 걱정되어, 황소와 당나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난 다음, 아버지는 샤라자드에게 “꾀가 모자라면 당나귀처럼 몸을 망치게 되는 법이니 괜한 모험을 하여 몸을 망치지 마라”고 충고했다. 그래도 샤라자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침내 대신은 딸의 결심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은 왕 앞에 나아가 오늘밤 자신의 큰 딸을 왕에게 데리고 오겠다고 아뢰었다. 샤리야르 왕은 크게 놀랐다. 대신의 딸만은 특별히 제외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이면 그대의 손으로 딸을 죽이라고 할 텐데, 그래도 좋은가?” “임금님께 시집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오히려 제 딸입니다. 온갖 말로 타일렀지만 딸애는 듣지 않고 오늘밤 임금님께 오겠다고 고집합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당장 오늘밤 딸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한편 샤라자드는 왕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샤라자드는 특별히 동생 두나쟈드에게 신신당부했다. “내가 임금님께 부탁해서 너를 부를 테니 꼭 궁전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임금님과 내가 잠자리에 든 다음 기다렸다가 한밤중이 되거든 나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란 말이야. 만일 신의 뜻에 맞는다면 이야기 덕택으로 우리 두 자매는 살아날 수 있고, 피에 굶주린 임금님의 나쁜 버릇도 고칠 수 있을 거야.”

이윽고 밤이 되자 샤라자드는 왕의 침실에 들었다. 샤라자드와 잠자리에 든 왕이 온갖 희롱 끝에 처녀를 뺏으려고 하는 순간, 샤라자드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동생이 보고 싶으니 동생을 불러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왕의 허락으로 두냐자드가 궁전으로 들어왔다. 두냐자드가 왕의 침상 발치에 앉자, 안심한 샤라자드는 마침내 왕의 몸을 받아들였다. 서로의 세심한 애무로 두 사람은 열락에 이르렀다.

이윽고 세 사람은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자 샤라자드가 두냐자드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나 두냐자드가 벌떡 일어났다. “언니, 잠이 안 와서 죽겠어요. 제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인자하신 임금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얼마든지 해주지.” 마침 왕도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참이라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좋고말고. 어서 해 보거라.”

샤라자드는 가슴을 설레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 인자하시고 친절하신 임금님이사여!” 이렇게 하여 천일야화의 첫날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¹⁾

시경의 관저 유튜브
《시경》의 '관저' 해설 영상. [유튜브(Orient University)]

〈만전춘滿殿春〉

님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

님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정 나눈 오늘밤 더디게 새소서, 더디게 새소서.

뒤척뒤척 외로운 침상에 어찌 잠이 오리오.

서창을 열어젖히니/ 복숭아꽃 피어나도다.

복숭아꽃은 근심 없이 봄바람에 웃는구나, 봄바람에 웃는구나.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 그리더니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 그리더니

우기시던 이 누구였습니까, 누구였습니까.

오리야 오리야/ 연약한 비오리야

여울일랑 어디 두고/ 못에 자러 오느냐

못이 얼면 여울도 좋거니, 여울도 좋거니.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 각시 안고 누워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약 든 가슴을 맞추옵시다 맞추옵시다.

아! 님이여, 평생토록 헤어질 줄 모르고 지냅시다.

현대에서도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명예살인(名譽殺人·honor killing)인 횡행한다. 명예살인이란, 이슬람권에서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 또는 간통한 여성들을 상대로 자행되어 온 관습으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편 등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해당 여성을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살해한 가족은 붙잡혀도 가벼운 처벌만 받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다(두산백과).

『논어』에 “공자께서 말하기를, 나는 덕德을 사랑하기를 미녀를 사랑하듯 하는 사람을 아직 본 일이 없다(子曰 吾未見好德 如好色者也)”²⁾는 말이 나온다. 미녀를 사랑함을 결코 죄악시한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품부한 천성임을 전제한다. 다만 수양을 통해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돌려(역색易色) 덕을 사랑하고 현인을 존숭하도록 가르쳤다.

성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도 이슬람권과 우리는 큰 차이가 있다. 이슬람권에는 ‘음핵절제수술(clitoridectomy)’을 지난날, 때로는 현대에도 유년기 여성들에게 강요한다. 성의 쾌락을 아예 발본한다는 야만적인 관습이다.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풍기 문란을 염려하여 ‘남녀칠세부동석불공식男女七歲不同席不共食’³⁾, 곧 일곱 살이 되면 사내아이와 계집아이가 자리를 같이하지 않게 하며, 음식도 함께 먹지 않게 했을 뿐이다.

인간의 성(性·sexuality)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일 뿐이다. 지나침과 부족함이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이는 세상사 만사 또한 그렇다. 지나치고 부족해서 좋은 게 있는가! 그렇지만 인간은 참 희한한 동물이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서 자연이나 천성을 죄악시하여 어떤 만행들이 종교나 도덕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것은 동물에서, 유인원에서 최고로 진화한 현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불편한 진실’이다.

‘태어남’을 개인이 어찌하리오. 의지와 무관하게 중동이나 남아시아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 되었는데, 성 문화만 염두에 둬도 참 복 받은 출생이라, 가슴 여민다.

※1)참조. 리처드 F. 버턴 영역/김하경 옮김, 『아라비안나이트』(시대의창, 2011), 25~40쪽. 2)『논어』, 제9 「자한편」. 3)『소학小學』, 제1편 「입교立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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