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하지 않은 정조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남아시아(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에서 행해지는 ‘처녀성 검사’라는 충격적인 기사를 실었다.
인도 라자스탄 주州 고등법원의 판사는 강간범을 무죄 석방하면서, 고소인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다. “그녀의 처녀막은 찢어져 있었고, 질膣은 손가락 두 개가 쉽게 들어갔다. 의학적 소견은 그녀는 아마 성행위에 익숙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말의 함의는 오로지 순결한 처녀만이 강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¹⁾
정신의 소프트웨어로서의 문화는 인간의 행동을 강력히 규정한다. 문화란 한 집단 또는 한 범주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다른 집단 또는 범주의 성원들과 달라지게 만드는 집합적 정신 프로그램이다. 이 문화는 학습되는 것이지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²⁾
경기지역 모 부대 사단장(56·육군 준장)이 지난 9일 부하 여군 성추행 혐의로 보직 해임됐다. 이 얼마 전에는 해군 장성이 준강간 미수(성폭행 미수) 혐의로 보직 해임된 바 있다. 잇따른 군 고위 간부들의 성범죄는 군내 기강이 해이해진 탓일까?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부족이 그 원인일 것이다. 더 적확히 말하면, 군 장성 성범죄자들은 문화 지체자들이다. 세상의 변화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부하 장병들의 인격까지 소유한 것으로 착각한다. 하니, ‘몸’ 일시 소유쯤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더 따라가 보자. 이른바 “두 손가락 검사”라는 게 있다. 의사가 두 손가락으로 질을 검사해 이 여성이 성적으로 활동적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 검사는 인도에서 2014년이 되어서야 금지되었다. 대법원은 이 검사가 부적절할 뿐 아니라 사생활 침범이라고 판결했다. 2016년에 파키스탄은 강간 재판에서 이 검사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올해에 방글라데시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들 세 나라 모두에서 이 검사는 널리 행해지고 있다.
올해 인도의 한 인권단체가 200건의 집단 강간 사건을 조사해 보고, 80%의 사건에서 이 검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약간의 진전도 있다. 최근 뭄바이 시市 강간 사건에서 판사는 두 손가락 검사의 결과를 무시하고 대신에 바뀐 법률을 인용했다. “이 소녀는 선택의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를 거부할 권리를 포함한다.”
그러나 인도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거의 변한 게 없다. 29개 주州 중 9개 주만 대법원 판결을 지방 법률에 적용할 뿐이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슬럼가街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회자된다. “여자는 불꽃이고, 남자는 양초이다. 양초에 불꽃이 붙으면, 녹는다.” 이 이야기의 함의는 남자는 정욕을 억제할 수 없으므로, 정욕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여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한 의사는 이러한 시각이 아직도 널리 퍼져 있다고 개탄했다.
전문가들은 남아시아에서 강간 사건의 10% 이하만 보고된다고 판단한다. 두 손가락 검사 때문에 피해자들이 앞으로 나서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제소된 강간 사건 1만8668건 중 유죄 판결이 난 건수는 20건에 불과하다.
위 <이코노미스트> 기사에서 보듯, 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여성의 성 억압은 유별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6월 20일에야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이 조처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의 반응이 흥미롭다.
한 성직자는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용함으로써 음란한 행위가 늘어나서 여성들은 순결을 잃을 것이라고 부르댔다. 또 한 성직자는 여성들은 두뇌가 반쪽이라 운전할 능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또 다른 사람은 과학적 근거를 들이댄답시고, 운전은 난소를 손상시킨다고 말했다.³⁾
야만에서 문명으로 인류의 역사발전은 여성 해방 혹은 여권 신장과 그 궤를 같이한다. 역사에서 가부장적이고 여성 억압적인 사회가 아닌 지역이 없었지만, 남아시아나 중동의 성 억압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하다. 특정 문화의 형성에는 독특한 지역적·사회적 요인이 있다. 그리고 그 환경적 요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역사책보다는 오히려 문학작품이 더 유용할 때가 많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중동의 성 억압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1)「Virginity tests in South Asia : Two fingers」, 『The Economist』, 2018년 6월 30일. 2)길트 홉스테데/차재호·나은영 역, 『세계의 문화와 조직』(학지사, 1995), 26쪽. 3)「The Saudi revolution begans」, 『The Economist』, 2018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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