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19)】 나이 - 이상규
인저리타임
승인
2023.12.28 04:33
의견
0
나이
이상규
벼슬자리 같았으면
내 자리까지 오지 않았을 테고
산해진미라면
지들끼리 나눠 먹었을 테고
돈 되는 일이라면
날랜 놈이 먼저 채 갔을 텐데
정월 초하룻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덥썩 팔짱 끼는 동갑내기 친구,
고맙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알뜰히 챙겨줘서.
- 『가락문학』, 2023년 29호
사람의 생존 기간을 말하는 나이는 일 년에 한 살씩 추가된다. 기간이 훨씬 짧은 하루살이도 나이가 있다. 생生과 졸卒 사이의 단위.
이상규 시인은 참으로 겸손하고 유머스럽게 나이라는 시를 지으셨다. 이 ‘나이’라는 것이 벼슬자리가 아니라서 내 자리까지 왔고 맛나고 귀한 산해진미山海珍味라면 자기들끼리 다 먹어 없앴을 것이며 돈 가치가 있으면 벌써 낚아갔을 것인데 내 곁에 꼭 붙어 있다. 더 고마운 것은 정월 초하룻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반겨주는 ‘동갑내기 친구’, 내 나이는 한 해도 거른 적 없이 나를 챙겨준다고 ‘고맙다!’ 한다. 속이지도 않고 빼앗아 가지도 않고 소외시키지도 않으니 고맙다는 말.
며칠 후 새해가 되면 집집마다 나이가 배달된다. 기다리지 않아도 알아서 정확하게 온다. 이렇게 찾아온 나이를 홀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데리고 천천히 나들이도 가고 친구에게 인사도 시키고 누구 집 나이가 더 건강한지 살펴보며 좀 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나이가 더 값이 나가도록 후하게 쳐주자.
◇ 조승래 시인 : ▷경남 함안 출생,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서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외 ▷계간문예 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수상 ▷단국대 겸임교수 역임(경영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집 서울,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