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5. 무식과 진숙④

박기철 승인 2024.01.25 07: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5-4. 허연 놈들을 물리친 진숙

내가 금마 어딨는지 알아 봐서 데려와 볼게. 그런데 내 자랑 들으니 나도 자랑하고 싶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나는 완전히 상반된 두 얼굴을 가졌어. 지금 세상 사람들 누구는 두 얼굴 중 한쪽만 보고 또 다른 누구는 다른 한 쪽을 보고 있지. 나 진숙이란 여자는 그렇게 두 얼굴의 여인이야. 일단 좋은 쪽 얼굴부터 말해 볼까나…

아니, 나는 너의 나쁜 면 얼굴부터 듣고 싶은데. 그래야 나중에 좋은 면 얼굴을 들어야 너를 좋게 기억하게 되잖아.

아, 맞네. 그런데 나의 좋은 얼굴을 먼저 들려 주는 게 좋겠어. 그래야 반전이 있잖아. 무식이 넌 어느 부족 촌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난 왕국의 왕녀로 태어났어. 왕녀를 공주라고들 부르지. 왕의 신하인 세 명의 공이 주관하여 왕녀를 시집 보낸다고 해서… 그런데 우리나라엔 공주 제도가 없었으니 그냥 왕녀라고 할게. 왕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오빠가 왕이 되었지. 그런데 오빠가 갑자기 죽자 나는 조카를 죽이고 여왕이 되었어. 여기서 내가 오빠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내가 말하진 않을게. 네가 판단해봐. 오빠는 내가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를 불임으로 만든 쪼다야. 아무튼 나의 권력욕심이나 권력의지가 너보다 더 했을 걸. 근데 내가 여왕으로 있을 때 얼굴 허연 백인놈들은 두 부류라고 들었어. 한 부류 놈들은 배 타고 대서양 왼쪽으로 건넜고 다른 부류의 한 놈들은 역시 배 타고 대서양 아래쪽으로 내려 왔지. 내가 만난 놈들은 후자였어. 그 놈들은 내가 다스리는 왕국으로 쳐들어 왔어. 이때 신하 놈 하나가 날 배반해서 나는 다른 왕국으로 쫒겨났지. 하지만 난 그 쫒겨난 왕국에서 왕위를 빼앗아 여왕이 되었어. 벌써부터 나 대단하지 않아. 나도 누구 못지않은 권력천재로 불릴 만 해. 이때부터 나는 내 나라를 다시 찾을 행동을 벌였어. 그 허연 놈들과 전투를 벌인 거지. 그런데 뭔가 날아가 맞추는 길다란 막대기를 가진 놈들과 맞대응해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았지. 그래 봐야 100전100패 할 게 뻔한 걸 알았거든. 난 영리하면서도 영특했고 영악했어. 그 놈들과 어떻게 싸울 수 있는지 기본원리를 알았던 거지. 저 아래 얼굴 노란 애들 중에 나처럼 싸워서 중국대륙을 통일한 마오쩌뚱이란 애가 있고, 또 최강대국 미국을 몰아낸 호치민이란 애도 있던데 다 나한테 배운 거같아. 그렇게 싸우는 걸 게릴라전이라고 하던데… 작은(illa) 전쟁(Guerra)이라는 뜻의 게릴라(Guerilla)는 대서양을 건넌 얼굴 허연 놈들이 만든 말인데 나는 대서양 아래로 내려온 허연 놈들과 게릴라전을 펼쳤어. 나 말고 나 이후로 게릴라전 최고의 장군을 딱 한 명 선정한다면 난 지압장군을 꼽지. 걔는 정말로 내가 하는 게릴라전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어. 걔 정식 이름은 한자로 무원갑(武元甲)인데 정말로 이름답게 싸웠어. 싸우는 무(武)에서 으뜸 원(元)이고 일등 갑(甲)이었어. 걔가 싸우는 방식을 3불(不) 전략이라고 하던데 첫째. 적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고 둘째,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고 셋째,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지. 대개 힘센 놈들은 당당하게 맞붙어서 싸우는 전면전 방식을 원하지. 또 상대방이 잘 보이는 평평한 곳에서 싸우길 원하지. 또 캄캄한 밤보다 훤한 낮에 싸우길 원하지. 그런데 그렇게 싸우면 힘약한 자들은 절대로 이길 수 없어. 그래서 지압 장군은 3불의 게릴라전으로 프랑스도 물리쳐 독립을 이루었고, 미국을 물리치며 통일했고, 쳐들어온 중국을 막아냈지. 정말로 전쟁사 최고의 명장이었어. 그런데 걔는 내가 했던 방식을 따라 한 건지 몰라. 100살 넘게 장수한 걔가 생전에 날 알았는지 몰랐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혹시나 여기서 보게 된다면 묻고 싶어. “니 게릴라전으로 싸우던 날 따라한 거지?” 아마도 그랬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커. 걔가 어릴 적부터 손자병법도 읽고 전쟁론, 전쟁사 등을 공부했다고 들었어. 그러니 허연 놈들을 물리친 나라는 존재를 모를 리 없지.

가만! 얼굴 허연 백인놈들을 네가 물리쳤다고? 그게 가능해? 총으로 무장한 드센 놈들이었을 텐데. 그 때 너네는 기껏해야 칼이나 도끼, 독침같은 걸로 싸웠을 텐데.

무식이 잘 아네. 무식하지 않네. 내가 대단한 건 바로 그거야. ‘총균쇠’라는 책이 있던데 거기서는 총든 놈들이 이긴다는 거거든. 대서양 건넌 허연 놈들은 총으로 무장하며 겨우 수백 명 병력으로 수백만 명 인구의 대제국을 무너뜨렸지. 물론 천연두에 면역을 가진 허연 놈들이 면역력 없는 원주민을 감염시켜 몰살한 것도 있지만 총의 역할이 컸겠지. 그런데 나는 원시적 허접한 무기만으로 게릴라전을 벌여 허연 놈들을 물리쳐 몰아냈어.

와! 대단하다. 대다나다 대나네. 진숙이 브라보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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