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58)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7장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12)

이득수 승인 2024.06.10 07:00 의견 0

“그래. 산다고 욕보제?”

하는 순간 용자가 말을 받아

“아입니더. 삼촌이 같은 부산에 산다는 생각만 해도 얼매나 힘이 되는데. 삼촌 죄송합니다.”

하는 사이에 서울손님들을 보낸 강서방이 돌아오자 용자신랑이 슬며시 일어섰다. 두 동서간이 나이는 비슷한데 하나는 명문대를 나와 양복쟁이로만 살아온 서울내기에다 또 하나는 일평생 흙손하나를 의지해 공사판에서만 살아온 사람이라 서로 편안하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17.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12)

버든 마을이 흩어져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그런지 동네사람들 문상은 막내 종찬씨의 상(喪) 보다도 적었다. 조금 있다 백찬씨 내외가 명촌의 금찬씨, 장촌의 덕찬씨를 인솔해 오고 진장의 형수가 6촌인 허서방네 복님이누나를 동행하고 온 것으로 집안사람, 고향사람들의 문상이 끝인 모양이었다. 서울의 귀찬씨와 영주의 김해댁은 몸이 괴로워서 못 온다는 연락이 왔다.

아직 혼자 사는 찬우나 부산의 용자 쪽에서는 문상 올 사람이 없는데다 맏아들 용우씨도 잘 다니던 대기업에서 괜히 노조활동을 하다 잘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바람에 평생 고생을 하는 것은 두고라도 여느 회사원들처럼 노조에서 모든 일을 다 봐주고 사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줄을 잇는 것이 아니라 서너 팀 문상객이 다녀가고는 민망할 정도로 손님이 없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다행히 서울 쪽의 문상객이 7,8명씩 두어 번 더 오는 바람에 그나마 상청의 분위기도 유지가 되고 열찬씨 어림으로 장례비용은 어느 정도 충당될 것 같기도 했다.

마침내 밤이 깊어 연만한 상찬씨를 아들 홍근씨가 금찬씨, 덕찬씨 까지 보태 모시고 자러 가고 열찬씨와 백찬씨도 일어설 판인데

“삼촌 피로하시지요?”

강 서방이 다시 맞은편에 앉는지라

“그래 오랜 만에 자네하고 술이나 한 잔 더 할까?”

하며 술을 따르자 열찬씨는 나중에 백찬씨의 집에서 자고 내일 발인을 보기로 하고 아이를 보아야 되는 영순씨는 혼자 부산으로 내려갔다.

“삼촌, 우째 현우처남은 안 보이네요.”

“그래. 자네 유정란 생각이 나는가? 그 새 그 아이가 회사에 들랑거려 속깨나 썩혔다며?”

“아, 아닙니다.”

“수도권에 유일하게 처가붙이 하나 있는 것이 그 모양이라서 맘이 많이 상했제?”

“아, 아닙니다.”

“그 철없는 사람이 세상사람 모두가 제 마음 같고 제 눈에 좋으면 남들도 다 유정란을 좋아하고 못 먹어 환장할 줄 알고 말이야.”

단 말 몇 마디에 솔깃해진 현우가 빚을 내어 중고 포터를 사고 유정란 판매에 나섰지만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아 만만한 게 대기업에 다니는 6촌 누나 용화를 찾아가 사내커플인 강서방과 둘이서 복에 없는 유정란홍보요원이 되는 것은 물론 술밥을 사주고 기름 값에 도로 비는 물론 여러 명목으로 잔돈푼을 뜯긴 게 보지 않아도 눈에 선 한 것이었다.

“어느 깊은 산골 절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제 아내도 연락이 안 닿는데. 휴대폰도 반납하고 말이야. 각시도 각시지만 제 엄마 영주형수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서 말이 아니지. 자네 고생했네.”

“예. 그래도 지금은 정석이가 커서 가정을 이루고 같이 서울에 산다는 것이 집사람은 마음이 많이 든든한가 봐요? 그런데 현우는 속은 좀 썩혀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정석이는 대기업이라 바쁜지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 내 만나면 이야기하지. 그래도 피붙인데 가끔 누나랑 매형도 만나고 상계동고모를 찾아가 밥이라도 같이 좀 먹으라고.”

“예. 정석이만 오면 저도 같이 고모님 만나러 가지요.”

하는데 제 아내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던 백찬씨가

“형님!”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열찬씨가 우우 일어서 인사를 하는 상주들과 작별하고 돌아서면서 강 서방의 어깨를 툭 치며

“강 서방 보시게. 자네가 우리 집안의 요진통, 원수지를 빼갔단 말이네.”
“예에, 삼촌?”

“요진통은 핵심이란 뜻이고 원수지는 모종가지 그러니까 나무의 성장점이 있는 중심가지, 그러니까 서울말로 우듬지를 뜻하는 말이지.”

“야, 예. 우리 용화씨가 요진통, 원수지가 맞지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인데.”

주차장까지 따라 나오는 강서방에게 오늘 아니면 다시는 하기 힘들 이야기를 동생이 차를 빼오기 전까지 마저 할 요량으로

“자네도 알지? 자내 처가 참으로 두뇌가 영민한 사람인 걸.”

“에. 용화씨가 머리하나만큼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지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애가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고 그 이상으로 정신력이 투철하고 인내심이 강하다는 거지.”

“예. 멘탈도 굉장히 강하지요.”

“그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굳이 그 애가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망인인 자네 장인은 물론 신불산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살아온 우리조상들의 정신력이랄까 정령(精靈)이랄까 그런 것이 뭉쳐진 결정체 같은 것인데 자네와 그 아이의 자식들을 통하여, 뭐 굳이 말하자면 그 신불산의 혼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네.”

“예? 신불산의 정령이라고요?”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예.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아이들 데리고 자주 언양에 내려와서 신불산을 보고가지요.”

“고맙네.”

“삼촌, 그러고 보니 용화씨가 어떤 난관이 닥쳐도 참 잘 견디고 기어이 돌파하는 끈기랄까 능력이 있는데 그게 다 신불산의 힘이군요.”

“그렇지. 단순히 신불산이 아니라 대대로 그 산 아래 살던 사람들의 혼이 교감한, 아니 엉긴 그 무엇이라고 할까...”

“예.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백찬씨의 차에 올랐는데

“아주버님, 서울에 사는 그 화야라는 조카가 그렇게 머리가 대단한가요?”

묻는 제수씨를 보고

“아이구, 우리 제수씨가 차기다리는 동안 멈바시 듣고 있었던 모양이네.”

하고 한참 뜸을 들이더니

“촌에서 농사나 짓는 우리 집안에 가끔씩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는 모양인데 해방이후 대표적인 수재가 바로 돌아가신 영주의 형님과 또 아까 그 용화라는 아이지.”

“아주버님이나 정석이도 꽤 머리가 좋다고 들었는데요.”

“내 아들이지만 정석이도 나보다는 꽤 머리가 좋아요. 하지만 아주 천재라고 할 정도도 아니고 또 세상사에 두루두루 관심이 많아 죽자살자 공부만 하는 편이 아니라 그렇게 까지 평가할 정도는 아니고 나는 그저 남한테 많이 빠지지 않은 정도고.”

“그래요? 도대체 얼마나 좋은 정돈데요.”

“내가 부산에서 중학교총동창회를 하는 데서 들었는데 김우태씨라고 형님하고 제일 가까웠다는 단짝이 내가 지은 <꿈꾸는 율도국>이란 시집을 들고 가서 낭독을 하는데 단번에 생김새나 목소리, 시를 잘 쓰는 것이 형님과 빼닮았다면서 반가워한 적이 있어요. 그 때 하는 말이 우리 일찬이형님은 중학교 3년 내내 한 번에 열두 과목 정도 치는 시험에서 어쩌다 한두 문제가 틀리지 거의 올 백점을 받았다는 거지. 그래서 중학교 3년간의 시험점수의 평균이 99점이 넘을 것이라고 말이야.”

“야, 대단한데요.”

“그래서 그 기록이 아직 안 깨어졌을 거라고도 말했지. 그런데 그게 참 대단한 게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첫 시험을 쳐보고 같은 학년에서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사람을 셋이나 만났다는 점인데 나는 겨우 평균90점을 받아 우수상을 턱걸이하기에 바빴는데 그 세 사람은 평균 94,5점은 거뜬했어.” “그렇게나 잘 하는 사람이 있었능가? 나는 클 때 언양바닥에서 우리 형님들만큼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내 자신은 매번 시험성적도 잘 안 나오고 책만 펴면 하품이 나와 누님들 말처럼 다리 밑에서 주워온 줄 알았다고요.”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이 아니라 다리껄에 김종률, 쇠북 종에 법도 율, 김종률이란 아편쟁이의사가 아니면 니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엄마까지 잘 못 될지도 몰랐으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집이나 형제자매모두가 천재이거나 천치인 집은 없는 법이라 동생 니는 칠남매의 중간쯤이다. 영주형님이 1등, 김해누님이 2등, 내가 3등, 니가 4등 나머지 세 사람은 등외다.”

“형님, 지금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네요.”

“그렇구나. 그 화야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 하면 국민학교는 물론 서부 5개면에서 다 모이는 언양여중에서 공부에 적수가 없었지. 우리가 클 때 언양에는 여간 공부를 잘 하지 않은 이상 중학교졸업이면 시집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할 정도였고 제법 잘 사는 집 딸이라야 언양여상에 보내는 정도였는데 물론 10년이나 지난 뒤지만 언양 사는 사람이 울산의 울산여고로 진학한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가 힘든 일이었는데

담임선생은 물론 교장선생까지 나서 ‘용화는 참 아까운 머리다 저 정도면 고등학교 3년간 학비 한 푼 내지 않고 장학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역시 학비 한 푼 안 내고 서울의 일류대학으로 갈 수 있다.’ 고 설득해서 진학을 할 수가 있었지. 그런데 그렇다고 자취방을 얻고 교복과 교과서를 구입하고 양식과 김치는 집에서 가져간다고 해도 교통비나 잡비도 들어야 하는데 그걸 배다른 언니 창화가 공장에 다니며 번 돈이 아니고는 감당할 방법이 없었지.”

“저런! 콩쥐팥쥐이야기도 아니고 참 큰일이었겠네. 그 냉정하고 칼 같은 형님한테.”

“제수씨,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살러온 형수는 그저 자기가 데려온 딸 창화를 남의 자식이라고 타박 안 하고 우리 가씨 호적에 올려서 국민학교 보내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서 전처자식 넷을 옷이라도 늘 깨끗이 빨아 입혀 남의 입정에 오르지 않도록 노력하고 막내 찬우를 제 자식처럼 늘 끼고 다녔어요. 그리고 추석이나 명절이 되면 찹쌀 동동주도 넉넉히 담아 진장형님하고 나하고 그 맛에 명절 기다린다고 할 정도로 잘 했어요. 살림도 참 깨끗하고 야무지게 잘 살아 슬비엄마가 탄복할 정도였지. 단 한 가지 문제가 성격이 칼 같아서 자기 눈에 늘 흐리멍덩한 시어마시, 작은 시어마시 그러니까, 큰엄마하고 우리엄마한테 함부로 말을 하다가 나중에 엄마 죽고 초상 칠 때 동생이 국솥을 엎고 난리가 나서 지금까지도 니하고는 말을 잘 안한다면서?”

하고 얼굴이 벌개진 백찬씨를 한번 쳐다보고는

“형수는 제수씨 말처럼 팥쥐 엄마 같은 계모는 아니야. 우선 자기가 데리고 온 딸이 밑에 4남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큰누나가 되니 굳이 말하자면 팥쥐가 아닌 콩쥐 엄마가 되는 셈인데 형수는 물론 창화도 제 번 돈으로 이복동생이 공부하는데 아무 불만이 없었어.

형수가 울산여고로 보내면서 딱 한 가지 조건을 건 것이 어떻게 하든 학비만큼은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공무원이나 은행원으로 취직해서 밑에 두 동생인 용자와 찬우의 학비를 보탠다는 조건이었지.”

“그래서요?”

“울산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자 또 다른 문제가 터졌지. 공무원, 회사원이나 은행원으로 취직하기 바란 용화를 두고 이번엔 담임선생과 교장선생이 서울대에 보내라고 권장했다네. 실력이 출중해 서울대학입학의 학교실적도 올리겠지만 그냥 썩히기는 정말 아까운 머리였겠지.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마친 판에 어림없는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차선책으로 나온 것이 서울의 어중간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보내자는 것이었는데 참 희한하게도 등록금일체가 무료인 것은 물론 학기별로 장학금명목으로 현금이 지급되는데 꽤 큰 액수라고 했네. 이번에 조건을 건 것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비나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하는 것은 물론 이제 이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찬우의 학비를 보태라는 것이었지. 바로 밑에 용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녔고 찬우가 이듬해 울산의 공고를 들어갔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 굳이 용화가 아니더라도 결혼을 앞둔 창화, 회사에 다니다 군에 입대한 용우, 또 용자까지 돈을 버니 그럭저럭 해결이 되고 용화는 졸업과 동시에 한국통신공사에 취직하고 동료인 강서방과 결혼했으니 결국은 강서방만 로또복권을 탄 셈이지.”
“그래서 딸자식은 공부시켜도 남 좋은 일이라고 하는가 봐요. 물론 우리는 아들만 둘이지만 호호호.”

모처럼 제수씨가 웃는 모습을 보고

“이제 아들딸 구별이 없고 딸이 잘 되어야 부모가 호강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집안의 정기를 쏙 뽑아간 용화가 친정에 별 도움이 안 된 건 사실이지. 또 형수가 저렇게 변한 건 자기 딸 창화가 강원도 홍천에선가 알루미늄새시 사업을 하는 류서방에게 시집을 간 후 사업이 어려울 때마다 장모의 눈치를 보며 처가에 손을 내밀고부터 그렇게 변한 것 같아.”

“...”

“용화가 벌써 KT본사에서 고참과장이 되고 여자로선 드물게 팀장으로 승진한다는 말도 있으니 어떻거나 용화랑 강서방 저거는 이미 중산층의 반열에 들어 잘 살겠지. 굳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우리 집안 측으로 말하자면 다소 아쉬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 기왕 그 좋은 머리를 용우나 찬우 다른 아들이 받았으면 하고 말이야.”

“허허, 그것 참!”

모처럼 백찬씨도 한 마디 거드는데

“그게 꼭 큰 집 문제만은 아니야. 우리 집에도 물론 형님이 공부는 잘 했지만 사회성이 없다고 할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만년 평교사로 돌아갔지만 그 위에 김해누님이 형님보다 더 머리가 좋고 대범해 만약에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떻게든 제 한 몸 출세하는 것은 물론 장남으로서 전 형제자매를 가르치고 먹고살게끔 머리를 틀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수군댔다고 하데.

그리고 재미있는 건 만약 영주형님이 여자로 태어났다면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살성도 하얗게 희고 이목구비도 오목조목한 데다 성격도 깔끔하고 손재주도 있어 아주 일등규수로 능히 한 가문을 일으킬 만 하다고 했는데 역사에 가정이 없듯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허허 그것참!”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아부지가 참 머리가 좋아 학교는 물론 서당 문 앞에도 안 가본 사람이 어깨너머로 한글을 거의 깨쳐 그 긴 판소리의 가사도 한번만 들으면 줄줄 외워 동네 할매들이 들으러 오는 판이고 한문도 한 백자정도는 아는 것 같더구먼. 그리고 달력에 닥개알 5개 50원, 승낭 한통 15원 하고 빼뚤빼뚤 가계부내지 일기까지 쓰는 걸 보면 참 응용력도 대단한 분이야. 만약 아버지와 형님이 대를 바꾸어 태어나 형님시대에 살았으면 분명히 뭔가 한자리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고만 하소, 형님. 아이구, 골치 아파라.”

자동차가 화봉동의 아파트단지로 들어설 때쯤 백찬씨가 고래를 절레절레 젓는데

“그래도 아주바님은 정석이가 공부를 잘 해 대기업에 다니니 무슨 걱정이 있능교?”

“아이구, 말도 마소. 애비가 능력이 없어 지 좋아하는 국문학박사 대학교수도 못 만들고 기껏 회사원이나 만들어 속에 골병이 드는데.”

“아니지요. 그게 어데 보통 머리로 하는 일잉교? 영주형님이 민우아버지 하고 통화하는 걸 들으면 삼형제 중에서 집안의 정기를 유독 부산에서 다 가져가서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출세를 하고 장남인 자기와 막내인 우리는 맨 고생만 한다고 말입니다.”

“저런? 그럴 택이 있나? 현우도 머리는 존데 지가 마음을 못 잡아서 그렇고 또 울산 민우도 공부는 곧잘 한다면서요?”

“아이구, 어데요? 그 머리가 어데 아주바님하고 정석이를 따라갈 수가 있능교?”

하고 아파트에 당도해 대충 씻고 작은 방에 누우려는데

“형님, 한 잔 더 할랑교? 송이 버섯주 있는데.”

하면서 민우엄마에게 눈짓을 하자

“그래. 그 귀한 것이 어데서 나왔노?”

둘이 식탁에 마주 앉는데

“청도에 큰 처남이 산에서 직접 따다 담아준 건데 혼자서는 잘 안 묵어져서...”
하는데

“당신은 쪼깨만 무소.”

제수씨가 한 잔씩 따라주는데

“참, 그 사형 돌아가싰다 안 캤나?”

“예. 5년도 넘었지요. 국민학교운동회 갔다 오다가 경운기가 엎어져서.”

“그렇구나. 그 술이 이적지 남았구나!”

“예. 오늘 한 잔 맛이나 보고 내일 형님 가주가이소.”

“고맙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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