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71)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8장 만두가게 개업(11)

이득수 승인 2024.07.18 16:23 의견 0

그 후로 답례로 부산친구들이 언양친구들을 부산으로 초청하는데 제대로 주선을 할 사람이 없어 열찬씨가 자갈치시장의 서대신동부녀회장 횟집에 예약을 하고 충무동 부둣가의 허름한 노래방, 시끄럽고 정신 사납기는 하지만 대낮부터 영업을 하고 아가씨든 주인이든 만사 <돈 놓고 돈 먹기>로 돈만 주면 안 되는 일이 없는 노래방에 들러 대낮부터 촌 영감들이 정신이 쏙 빠지도록 질펀한 파티를 벌여 과연 국장님답다는 인사를 듣기도 했다. 이 후로 한다, 한다 하면서 다들 바쁘기도 하지만 안 되면 다음 하면 되지 하는 식으로 어느 누구도 챙기는 일이 없는데 유독 근래에 울산광역시산림조합장이라는 엄청난 감투를 쓰고 새까만 공용승용차까지 받은 전주호조합장이 유독 사람 모으는 것을 좋아해 여기저기 모임 안 하느냐고 전화질을 해서 마지 못 해 하기는 해도 이제 굳이 힘들여 물고기를 잡느니 바로 한우 쇠고기 집으로 향하고 부산에도 회를 먹고 노래방으로 직행하는 것이 아예 공식화가 된 것이었다.

18. 만두가게 개업(11)

이튿날 치과에 들리자

“니 이빨이 좀 험한 줄은 알아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앞니 네 개를 뽑아야겠는데.”

“그레. 임플란트하면 돈이 많이 들제? 마누라가 돈천만원 들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태산이던데.”

“돈 천만 원? 돈 천만 원이 아아 이름이가? 한 2백만 내라.”

“2백이라? 진짜가?”

“다 늙어서 장개갈 거도 아이고 임플란트가 다 뭐고 그거 영구치라 하지만 한 십년 정도나 가고 요새 수명이 길어져 다시 해야 할 불편도 있는데 마 간단하게 브릿지로 해라!”

“브릿지?”

“그래. 흔들리는 이빨 빼고 남천내 공굴 놓듯이 그냥 사기이빨을 덮어씌우는 기라.”

“그래?”

“그 기 가격도 싸지만 모양도 그럴 듯 하고 수명도 길다.”

“그라까?”

“그래. 니는 다행히 송곳니가 튼튼해서 아무 걱정이 없다. 총 2백만 원인데 친구라고 10푸로 깎아주고 나중에 현금주면 또 깎아주고 큰돈은 안 들끼다.”

“이런 명색 의사가 돈 되는 걸 시켜야지 돈 안 되는 걸 시키면 우짜노?”

“친구한테 안 벌어도 먹고살 만하다.”

하긴 워낙 성실하고 알뜰하고 점잔하기까지 한 친구라 아들 둘과 며느리까지 몽땅 치과의사가 된데다 이미 병원 빌딩을 사고 삼동면 쇠꼴에 별장까지 지었으니 돈 걱정을 할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좀 너무한다 싶은 게 산우회 김몽룡씨가 싸게 이빨을 할 데가 없느냐고 열찬씨에게 물어 소개를 해줬는데 이튿날 임플란트를 해 달라는 몽룡씨의 이빨을 보고

“돈만 있다고 다 임플란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잇몸이라도 튼튼해야 뭘 할 수가 있는데 환자분은 안 되겠네요.”

거절해서

“열찬씨가 이빨 잘 하고 손끝 야물다고 일부러 찾아가라고 해서 왔는데요.”

“열찬이 친구니까 내가 더 못 하지요. 엉터리로 해서 돈만 들고 잘못 되면 나도 욕 묵지만 내 친구 열찬이와도 원수가 지고.”

하면서 단호히 거절해 다른 치과에 가니 되고도 남는다고 해서 거금을 들여 임플란트를 했는데 일 년도 안가 탈이 나고 더는 손을 써 볼 수도 없어 싸우다, 싸우다 포기하고 다시 열찬씨를 찾아와

“당신 친구 엄영호칫과가 정직한 것 같애. 다시 갈라니 체면이 안서니 전화 좀 해 줘.”

해서 열찬씨의 전화를 받은 영호씨가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아주 튼튼하게 브릿지를 해주자 비로소 음식을 씹게 된 몽룡씨가

“그 참 언양에도 사람 같은 사람이 있네. 맨 이국장 같은 술꾼만 사는 줄 알았더니...”

하며 기뻐했던 것이었다.

“자, 인자 조금 있으면 치과기공사가 니 이빨 재러 올 끼다. 그 기공사가 바로 영옥이 신랑이다. 우짜면 영옥이도 올 지 모르겠다.”

“그래? 영관이 동생 영옥이 말이가?”

“그래. 우리 병원에 이빨 재러 오는 총각이 사람이 성실해 보여 내가 중신을 했지. 같이 지내니 외롭지도 안 하고 심심치도 안 하고 좋다.”

“그렇겠구나.”

하면서 지기의 형편없는 입속을 친구동생의 남편에게 보여준다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출산을 해서 그런지 유난히 아직 30대 초반에 어금니가 상해 치료를 위해 아내 영순씨를 데리고 와 치료를 하고 이빨을 때운 일이 있는데 나중에

“여보, 남편친구 산부인과에는 가더라도 치과에는 못 가겠더라. 산부인과는 커튼이라도 치고 치료를 하지만 치과는 그런 것도 없는 데다 아파 죽는다고 고래 땡괌을 지르니 그런 챙피가 어딨노? 나는 다시 그 양반 얼굴을 못 보겠다.”

하고 지금도 영호씨와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것이었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오빠, 열찬이오빠 왔다면서?”

중년여인하나가 들어섰다.

“그래. 니가 영옥이가?”

하면서 바라보니 어릴 때의 모습이 많이 남았다. 영순씨보다 더 늙어 보인다 싶다가 아차, 늘 동생이라 생각해서 그렇지 영순씨 보다 세 살이나 많다 싶어 멈칫하는데

“오빠, 우리 신랑.”

하자

“안녕하세요. 처남들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늙수레한 사내가 인사를 꾸벅하고

“자, 한번 보실까요?”

하고 입을 벌리는데 이마가 조금 벗어진 얼굴이 열찬씨 자신보다도 더 늙어보였다. 하긴 영옥씨보다 대여섯 살 많다면 자기보다도 훨씬 많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인자, 천천히 커피도 한 잔 하고 바둑이나 한 판 둘까?”

오후 네 시라 이제 주 고객인 노인네들도 거의 안 올 시간이었다. 한참동안 바둑을 두는데

“자, 됐습니다. 가치(假齒)를 한번 넣어봅시다.”

그새 영옥씨 남편이 임시이빨을 가지고와 끼워 주었다.

새 이빨은 모래쯤 넣어 주꾸마. 그런데 주말에 홈커밍데이는 우짤래?“

“이빨이 이래서 잘 묵지도 못 하고 마 안 갈란다.”

“그랄래? 그러면 저녁이나 묵고 가라. 내 도다리새꼬시 사주께.”

“이빨이 이래서 그럴 기분이 아니다.”

하고 금요일인 이틀 뒤 새 이빨을 넣고 송금카드로 현장에서 바로 송금을 하려니 앞뒤 다 자르고 150만 원만 달라고 했다.

“니 그래가 뭐 남는 기 있나? 내 돈 많다. 더 받아라.”

“그거만 받아도 많이 남는다. 니가 살기 힘들다면 더 깎아줘도 된다. 됐다.”

하고 헤어지면서

“자, 이거.”

봉투 하나를 내밀자

“뭔데?”

“평리부락망향비 초안이다. 추진위원장 영관이 주면 된다. 친구들한테 내가 못 간다고 설명하고 기왕이면 밥 묵기 전에 같이 한 번 읽어보고 뭐 고칠 것이나 소감이 있으면 전해 주고.”

“그래 알았다.”

하고 돌아오면서 근 2년을 끙끙대며 고심하다 어제 완성한 원안을 되새겨 보았다. 그럴 듯한 것도 같고 뭔가 아쉬운 것도 같기만 했지만 일단 고추친구들의 반응을 볼 작정이었다.

평리부락 망향비(望鄕碑)

이곳은 멀리 청동기(靑銅器)의 선대인들이 터를 잡은 <버든>이란 포근한 지명처럼 순하고 부지런한 이웃들이 대(代)를 이어 살아온 유서 깊은 땅이다.

한반도(韓半島)의 지형처럼 길고 잘록한 50여 호의 마을은 조국발전의 대동맥인 고속도로의 개통과 더불어 상평중평하평의 3개 부락으로 크게 발전하더니 2012년 고속철도 업무단지로 편입되어 철거되며 부득이 주민들이 떠나게 되었지만

수구초심(首丘初心), 한갓 미물인 여우도 제 살던 곳으로 머리를 향한다는데, 우리 언젠가 다시 찾아오거나 꿈에 본다면 <웃각단>, <아랫각단>, <구시골>과 <진장만디>, <봉당골>의 눈에 선한 정경과 씨 뿌리고 소 먹이며 고기 잡던 <마구뜰>, <밤살매>, <복걸>과 <당수나무>, <용당수>가 어느 한 곳 살갑지 아니 하랴. 제 태어난 땅의 꽃향기와 바람소리 반갑지 아니하랴. 담 너머 다정한 목소리와 동사마당의 풍물소리가 그립지 아니하랴.

우리 평리 사람과 그 후손이 어느 땅에 가더라도 늘 번성하며 이 땅을 그리워하며 되돌아볼 애틋한 기원을 담아 여기 망향비를 세운다.

2013. 11. 30

평리부락 출향민(出鄕民) 일동

(글: 출향시인 가열찬)

“아따, 우리 영감 인물이 훤하네. 10년도 더 젊어 보이는 걸 왜 여태 안했을까?”

열찬씨의 새 이빨을 보고 영순씨가 감탄을 하자 슬비씨도

“아빠가 좀 달라 보여. 늙은 시골영감에서 세련된 도시의 노인, 우리아빠가 명색 시인인데 이 정도의 외모는 되어야지.”

하고 깔깔거리며 들여다보는데

“그게 아니라 전보다 가지런하고 이뻐.”

아홉 살 영서가 결론을 내렸다. 전보다 예쁘다는 말에 애기처럼 신이 난 열찬씨가 목욕탕에 가서 거울을 들여다보다

“이크!”

하고 도로 거실로 튀어나와

“이거 내가 친구한테 속았네. 전과 꼭 같이 해준다는 말만 믿었는데 네 개짜리 앞니가 여섯 개가 되었네.”

“그 기 뭐 어때서 내사 마 보기만 좋은데.”

“사람이 그 아이엔디티, 그러니까 내가 누구며 어떤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다 아이가, 그런데 갑자기 앞니 네 개의 가열찬이 앞니 여섯 개로 변하니 내게 내가 남 같단 말이지.”

“내 인자사 하는 말인데 당신 앞니는 이빨뿌리에서 위로 올라가며 급격하게 넓어지는 바람에 그 사이가 뒤틀리고 윗부분이 중복이 되었더란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비록 여섯 개지만 아주 빈틈없이 가지런하니 얼마나 좋아?”

“아니야. 뭔가 이상해. 나이가 드니 이제 내 몸도 자꾸 내게 익숙한 옛날의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그거사 다 그렇지.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옛날의 몸매가 사라지고 뚱뚱한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면 순하고 부드러운 여자다움이 없어지는 것과 같이.”

“아니야. 그것은 본질은 남아있는 상태에서 외관만 변한 것이지만 난 다르잖아? 우선 교통사고로 오른쪽 대퇴부가 2.3센티 짧아지고 접합수술을 한다고 고리뼈와 엉치뼈를 잘라내고 또 어금니의 대부분이 없어진 판에 앞니 네 개가 빠져나가고 인공이빨이 여섯 개나 들어오고.”

“당신말도 맞아. 그리고 당신이 고생했다는 데도 찬성해. 그러나 남자들은 당신처럼 불운한 몇 사람이 그렇지만 여자들은 아이를 낳으면서 대부분 석회질이 빠져나가 어금니가 녹아나고 나이 들면서 골다공증이 생겨 조금만 미끄러져도 큰 부상을 입는 거지.”

“그래도 당신은 입덧도 심하지 않고 아이도 비교적 순산했잖아?”

“아이지. 내 일 바쁜 당신에게 말을 안 하고 혼자 치과에 다녀서 그렇지 어금니의 대부분이 내 이빨이 아니야.”

“그래도 당신은 원래 개수라도 다 채웠지만 나는 많이 상실되었잖아. 세월에게 빼앗긴 내 몸의 원형...”

“아빠, 나중에 친구한테 가서 지금이라도 어금니를 해 넣을 수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알아보소.”

“새삼 그걸 알아서 뭘 하게?”

“누가 압니까? 만두장사 대박이 날지.”

“뭐, 대박이라?”

영순씨와 열찬씨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벌써 한 달 이상 두 사람이 밤마다 걱정하면서 정작 딸이나 사위에게 말을 하지 못한 고민거리가 입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아빠어금니문제가 아니지, 그건. 아직 걷지도 못하는 갓난애를 비롯한 너거 네 식구가 먹고사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설마 잘 되겠지요. 아버지가 아이를 더 낳으라고 말 할 때 사람은 모두 제 먹을 것을 타고 나온다고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가 18번이잖아요?”

“그건 객관적인 이야기, 스쳐지나가는 남의 이야기이고 정작 제 자식의 이야기가 되면 너무 긴장되어 입에 침이 안 넘어가는 거지.”

“그래. 그건 아빠 말이 맞아. 너거 아빠는 술 먹고 잠이라도 잘 자지만 나는 요즘 자다가 잠이 한 번 깨면 아침까지 그 냥이야.”

“잘 될 겁니다. 이제 고기만두, 김치만두 두 가지와 찐빵 만든 기술을 다 배웠고 오늘은 설비하고 비품 보러 간다는데 아마 다음 주면 인테리어 들어갈 겁니다.”

“그래. 참, 그 명성만두사장보고 가게자리가 어떤지 한번 봐 달라고 하지?”

“예. 벌써 데리고 간 모양인데 전망이 괜찮다고 합니다. 충렬로 대로인데다 가게 바로 앞이 버스정류소라 평소 유동인구가 많은 데다 버스를 기다리며 시장기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또 인근의 대동병원이나 보험회사 등의 사무실사람들도 간식으로 찾을 수 있고.”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사위 도연씨가 수영의 미성왕만두라는 곳에 만두기술을 배우러 다닌 지 한 달이 좀 넘었다. 말이 기술이전이지 밀가루 반죽을 치고 만두와 찐빵을 빚어 찌고 손님에게 직접 팔아도 보고 또 식판을 씻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것까지 거의 종업원이나 다름없는 허드렛일을 한 달이나 해 주고 기술이전료를 천만 원이나 주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점포의 설비와 인테리어도 일임하고 만두의 소와 호떡의 앙꼬도 반드시 미성의 것을 쓰고 밀가루를 비롯한 식재료도 지정된 가게의 것을 써야만 하고 또 간간이 술대접도 해야 하지만 요즘의 기술이전치고는 매우 수월하고 후한 편이라고 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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