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14>오! 거룩한 밤

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14>오! 거룩한 밤

김창욱 승인 2017.12.22 00:00 의견 0

<오! 거룩한 밤>을 노래한 유시 비욜링

오! 거룩한 밤 별빛이 찬란한데 거룩하신 우리 주 나셨네 오랫동안 죄악에 얽매여서 헤매던 죄인 위해 오셨네 우리를 위해 속죄하시려 영광의 아침 동이 터온다 경배하라 천사의 기쁜 소리 오! 거룩한 밤 구세주가 나신 밤 오! 거룩한 밤 거룩 거룩한 밤

<오! 거룩한 밤>(O Holy Night, 1847)은 프랑스의 아당(A. C. Adam 1803-1856)이 작곡한 노래다. 그는 오페라와 발레음악을 주로 썼는데, 발레곡으로는 그 유명한 <지젤>(1844)을 남겼다. 특히 이 노래는 유시 비욜링(Jussi Björling 1911-1960)이 불러야 제격이다. 그는 북구 스웨덴 출신의 스핀토 테너(Spinto Tenor)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음에서의 날카로운 소리가 매력이자 마력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김종삼(金宗三 1921-1984)의 <장편·2>(掌篇)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 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 전집⟫(나남출판, 2005)에 실린 200여 편의 시 가운데 능히 백미로 꼽을 만하다. 비록 손바닥 정도의 짧디 짧은 시편이지만, 그 울림은 더없이 넓고도 깊다.

총독부가 있을 때라면, 광복 이전 시기를 말한다. 어린 거지소녀가 똑같은 처지의 거지 아비와 어미를 이끌고 청계천변에 있는 10전짜리 균일상 밥집 문턱에 당도한다. 어버이가 모두 장님이었던 까닭에 소녀는 그들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날을 맞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주인영감은 누추한 몰골을 한 이들이 자기 집에 얻어먹으러 올까 경계한다.

그러나 어린 거지소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전 2개를 내보이며 손님으로서 당당하게 밥을 사먹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10전짜리 동전 2개는 몇 날 며칠, 어쩌면 몇 달에 걸쳐 구걸해서 모은 돈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소녀는 자기가 먹을 밥값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나 보다.

다시 한 해의 끝자락이다. 언제처럼 올해도 다사다난했다. 때때로 밤거리엔 성탄 트리가 불을 밝히고, 이따금 구세군의 방울소리도 들려오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차고 어둡기만 하다. 예나 지금이나, 겨울은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더없이 서러운 계절이다.

지금, 어디메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굶주린 배를 쓸어내리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내일 모레는 크리스마스, 누구에게라도 거룩한 밤이었으면 싶다.

오! 거룩한 밤 / 비욜링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