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복사열로 뜨거워진 컨테이너안은 족히 40도는 넘었다. 21톤. 1포대 무게가 25kg 나가는 밀가루처럼 생긴 화학제품 포대 840개를 2시간 안에 2명이 수작업(까데기)으로 컨테이너에 실어야 한다. 1명이 420개를 성인 키보다 높은 15단으로 15줄반을 실으면 정확히 21톤을 채운다. 바닥부터 싣다가 마지막 두칸은 어깨반동을 이용해서 25kg의 포대를 나의 키보다 높은 공간에 정확하게 던져 꽂아야 한다.
문제는 포대를 반듯하게 1줄에 정해진 갯수대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컨테이너라는 한정된 공간에 정확히 21톤을 실어야 한다. 1줄에 15단씩 15줄반을 실어야 21톤이 된다는 것은 제품 1개당 무게와 부피, 그리고 컨테이너 공간 사이즈를 감안하여 정확히 계산해낸 수치이다. 제대로 싣지 못하면 마지막 줄에서 결국 억지로 백을 구겨넣다 터지기도 하고 아예 실을 수가 없어 이미 실어 놓은 그 많은 물량을 다시 빼내야 하는 생고생을 하기도 한다.
또 보낸 컨테이너에 정해진 수량보다 적게 실려 바이어로부터 불만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거기다 바이어가 요구하는 제품이 맞는지 일일이 확인해 가며 실어야 한다. 지게차 기사들이 더러 전혀 다른 제품을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씨름 천하장사 이만기 씨나 강호동 씨도 처음에는 몇 줄 싣지 못하리라 감히 예상한다. 나도 처음에 이 일을 배당 받았을 때 호기롭게 도전했으나 2줄을 싣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동료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며 여러 번 특별개인교습을 받았다.
그 동료는 꽤 큰 제분회사에서 이런 일을 오래 한 사람으로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몸매가 다부지고 이 쪽 일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했다. 힘 만으로 하는 게 아니였다. 기본적인 힘을 바탕으로 몸의 탄력과 어깨반동을 이용해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2명이 한 조가 되어 1줄에 정확히 절반씩을 안 쪽에서부터 실어 나온다. 싣는 속도도 빠르고 정확하다 보니 그는 늘 자기가 실어야 하는 작업량을 끝내고 내가 미처 못 실은 분량을 도와주는 배려심 깊은 동료였다.
땀은 비오듯 온 몸을 적시고 화학제품에서 나오는 분진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한 입에서는 더운내가 훅훅 난다. 비정규직에 월급 180만 원 남짓 되는 하청업체 소속이었지만 막노동 3개월만에 우연히 하루 일하러 갔다가 어렵게 얻은 고정직 일자리여서 가족들 생각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당시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력서에는 고졸로 적었다. 일종의 위장취업인 셈이다. 펜대만 굴리던 내가 군대식 표현대로 ‘악으로 깡으로’ 그렇게 5년을 버텼다. 베트남에 파견 근무를 다녀온 후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으나 늦은 나이에 마땅히 정규직으로 들어갈 만 한 회사가 구해지지 않았다. 막노동은 그런 연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지게차 기사 5명 중 현장 반장은 다른 4명보다 작업속도도 빠르고 제품을 싣는 것도 정확했다. 다른 기사들은 바이어가 요구한 제품과 전혀 다른 제품을 싣는 일이 자주 발생해서 이미 컨테이너에 실은 제품들을 다시 빼내느라 밤 늦게까지 사서 고생하는 날도 많았다. 또 그로 인해 회사가 클레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했다. 일 처리가 느리고 정확하지 못한 데서 오는 건 불필요한 시간과 돈의 낭비이다. 이에 반해 반장은 다른 기사들이 1시간 걸리는 일을 30분만에 끝내고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여유있게 쉬거나, 다른 기사가 미처 못 실은 제품을 창고에서 컨테이너 앞에까지 갖다주기도 했다.
막노동보다 힘든 5년 동안 나는 ‘수작업의 달인’인 그 컨테이너 포대 작업 동료와 지게차 반장에게서 '신속과 정확'이라는 의미를 체험하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직장문화에서 필요한 '배려'라는 미덕도 발견했다. 이를 보여준 그 두 사람은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어 보였다.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원리적으로 '신속'과 '정확'은 상충되는 개념이고, 둘을 한꺼번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빨리 하려니 정확히 하기가 힘들고, 꼼꼼하고 정확히 하려니 빠른 시간에 처리하기 어렵다.
나의 직업인 헤드헌터 일도 속성상 '신속과 정확'이 생명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고객사들이 추천마감 기한을 따로 정하지 않고 ‘채용시 마감’ 조건으로 인력추천을 의뢰한다. 또 대략 3군데 이상의 헤드헌팅 회사들과 거래하기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채용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연봉조건, 경력, 어학능력, 관련 자격증보유 등)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재를 추천해야만 고객사에서 채용을 하고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가 있다.
2년 전 나는 직장 동료인 한 사람에게서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수작업의 달인’과 작업반장의 모습을 발견하고 잠깐 옛 시절을 떠올린 적이 있다. 이 쪽 일을 15년 넘게 한 사람으로 많은 고정 고객사들을 확보하고 있었고,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을 직무별로 컴퓨터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채용내역을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이 타 헤드헌터들에 비해 월등했다. 또 채용내역에 적합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신속하게 추천하여 합격시킴으로써 고객사들과 꾸준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 쪽 일을 하다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 찾아가면 바쁜 일을 멈추고 친절하고 상세하게 나의 궁금점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또 본인이 진행 중인 채용 건에 대한 후보자 추천을 위한 채용내역을 묻는 질문에도 정확하고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는 배려심을 잃지 않았다. 모두 빠르고 정확한 일처리가 몸에 밴 사람의 여유에서 묻어나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크고 인원수가 125명 정도 되다 보니 주로 ‘Co-work(공조)’ 형태로 업무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본인이 진행하는 채용 건을 동료 헤드헌터들로부터 인력 추천을 받는 형태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사에 대한 정보나 채용내역을 가능하면 상세하고 정확하게 동료 헤드헌터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동료에 대한 일종의 배려이다. 그래야만 시행착오에서 오는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고 또 고객사의 니즈(Needs)에 맞는 정확한 인재를 추천할 수 있다.
'신속과 정확'이 몸에 밴 '달인'들을 볼 때면 일종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더구나 그들이 '배려'라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에는 감동하게 된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신속과 정확'을 추구하며 산다. 여기에 동료는 물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각박한 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프로매치코리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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