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대한,

갑질에 대한,

박이훈 승인 2017.08.05 00:00 | 최종 수정 2017.08.06 00:00 의견 0

갑질 앵커브리핑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행태'를 다룬 jtbc '앵커 브리핑'의 한 장면. / jtbc 방송 캡쳐

얼마 전 모처럼 백화점에 갔다. 쇼핑을 하다가 커피 생각이 나 원두와 허브차를 구입하는 매장에 가서 허브차를 시음하고 커피도 한 잔 대접 받았다. 테이크아웃 잔 커피를 받아들고 매장 직원에게 “늘 서서 힘드신데 차 한 잔 하시지예.”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 매장은 완전 개방된 곳이 아니라 조금 외진 모서리에 있었기에 아늑했고 손님이 없을 때 서서라도 차 한 잔은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였다.

매장 직원은 차 마실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혼자 차를 마시며 몇 마디 말을 붙이는 내게 그녀가 무심히 던지는 작은 목소리. “우리는 근무시간에 차 마시면 해고 됩니다.” 아차 싶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직장의 규율도 규율이지만 온종일 근무하면서 점심시간 외에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직장이구나 싶었다. 물론 CCTV 카메라가 곳곳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사회 곳곳에서 직장 근무규정이라는 명목 하에 기업주나 관리자의 기준대로 직원들의 인권이나 복지가 외면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들도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남의 일이 아닌 듯 맘이 안 좋았다. 사업주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이런 게 직장 생활인가’도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이다. 그날은 정말 무더웠고 폭염 특보가 내렸던 날이었다. 휴가 시즌이라 간편하게 입을 옷을 하나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 오후 2시쯤이었다. 백화점 2층 주차장 진입 직전의 입구에는 아들 나이의 청년이 수신호로 차를 통과시키고 있었고, 바로 입구에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연약한 20대의 아가씨가 고개를 45도로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그날따라 폭염인데다 차량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지나가는 차량에게, 고객에게 인사하는 그 모습에 맘이 아프고 화가 났다. 내 자식은 아니지만 모두의 자식들이 아닌가. 폭염 특보까지 내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만큼(오후 2시~오후 4시)은 다른 업무로 대체를 시키든지 해주면 오죽 좋을까 싶었다.

홈플러스나 메가마켓에도 많은 고객들이 붐비지만 폭염에 주차장 입구에 정복을 입고 서서 인사하는 주차(장) 안내원은 없다. 가끔 주차장 내에서 차량 질서를 통제하고 고객이 나갈 때 박스 안에서 주차비를 계산하는 직원이 전부다. 그런데 유독 그 백화점에는 직원이 언제나 입구에서 온 몸으로 차량 매연을 마시며 서 있다.

고객들에게 베푸는 최상의 서비스로, 아니면 고객들이 백화점 입구를 못 찾을 줄로 생각하는지,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마치 파수꾼마냥 백화점 입구에 청년 직원, 아가씨 직원을 세워둔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세태에 크게 실업자를 구제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폭염과 매연 아래에서 젊은 청년들이 너무 혹사당하는 것 같아 맘이 언짢았다. 사업주가 힘든 일을 시키더라도 적절한 배려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백화점에 승용차 가지고 가 본 사람은 다 느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주 세우는 M3층에서 승용차 주차할 자리를 찾는데 그날따라 고객들이 많았는지 빈주차면이 없었고, 경차 자리에는 여느 때처럼 중형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맘을 먹고 승용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백화점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에게 이 백화점 최고의 책임자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고, 전화를 받는 사람은 왜 그러느냐고 했고, 나는 고객으로서 백화점에 건의할 게 있어 그런다 했다. 그 직원은 총책임자는 지금 자리에 없다며 다른 분을 바꿔 주었었고, 나는 ‘건의’를 했다.

오늘같이 폭염 특보가 내린 날에도 굳이 청년과 연약한 아가씨를 주차장 입구에 세워서 꼭 인사를 시켜야만 하는지, 승용차 가지고 오는 고객들이 백화점 입구를 못 찾기라도 하느냐고, 시급을 얼마나 주는 아르바이트인지, 정직원인지 모르겠으나 고객 입장으로서 오히려 불편하고 맘이 아프다고 했고, 전화 받는 당신이라면 오늘 같은 더위에 그 자리에 단 30분이라도 서 있을 수 있겠느냐고, 억지 비슷한 말을 해버렸다.

그리고 내친 김에 두 번째 건의도 한다며 말했다. 경차 자리는 그냥 만들어만 두었느냐고, 한 번도 경차가 주차되어 있는 걸 본 적 없고 거의 중형차들만 세워져 있는데, 경차 자리를 굳이 만들어야 하는 규정이 있는지를 물었던 것 같다.

나의 ‘건의’를 들은 백화점 관리자는 매너 있게 사정을 말했다. 입구의 주차청년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했지만 경차 자리는 시정한다고 했고, 주차 안내 아가씨 건에 대해서는 옆에 얼음물이 있다고 했고(하지만 내가 보았을 때는 주위에 얼음물은 고사하고 햇볕만 쨍했다.), 몇 시간마다 교대를 해준다고 했다.

나는 전화로 조용히 건의는 했지만 그게 아무런 힘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들 말처럼 이 세상 아줌마들은 무서울 게 없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그러나 나는 불공평한 세상에 청년들이 직장에서 너무 상처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백화점이 속한 그룹의 총수 일가는 형제끼리 법정다툼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특히 그룹의 장남은 대한민국이 아버지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모국어 구사도 어눌하여 실망을 주었기에 나는 백화점 카드도 가위로 잘라 버렸다가, 최근 다시 카드를 만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그 백화점 앞에는 대한민국의 귀한 청년이 뙤약볕 아래 서 있고, 물론 아가씨도 서서 인사를 하고 있다.

요즘 신문과 TV에서는 연일 갑질하는 기업주들과 자기 부인을 '여단장 대우를 해라' 하는 장군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군대에 간 아들들이 온갖 갑질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부모들은 분통이 터진다. 그러니 그 장군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하자, ‘그에게 연금을 주면 안 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갑질하는 그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가?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고 사람 위에 사람 없음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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