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남해 보리암 - 초복, 박이훈

박이훈 승인 2022.09.18 22:41 | 최종 수정 2022.09.21 21:26 의견 0

남해 보리암 - 초복
                             박이훈

             

 

며칠 소식 전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안부를 물어오는 구순의 노모

야야 오늘이 초복 날인데 밥은 묵었나
니히*가 사다 준 삼계탕 묵으러 안 올래

날씨 더워 아무데도 가기 싫다
엄마나 많이 드시유
그래도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덥제? 여름에는 묵어야 산다
얼렁 와서 묵고 가라

순간,
한평생 끼쳐드린 걱정에
쿵! 대못 하나 심장을 뚫고
그렇게 달려 온 보리암 목관음보살 전
그윽한 부처님 눈길 바라본다

법당 가득 찬 서늘한 침묵
불효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가슴 속, 무심한 담이 소리없이
자꾸 자꾸만 무너져 내린다

* 너의 언니 (밀양 방언)

보리암 [사진 = 박이훈]

<시작 노트>

남아선호가 확연했던 그 시절
어린 아들을 잃고 딸만 여섯을 키운 엄마께
나는 유독 힘든 딸이었었다
식성도 성질도 까칠했고 고집도 세었지만
외동에 막내 아들과 결혼해서
시어른 모시느랴 세명의 시누이님들과
부데끼면서 엄마 가슴에 못을 박고 함께 울었던
기억은 아직도 나를 힘들게 만든다
부처님 전에 엎드려 불효를 뉘우친다

 

박이훈 시인

◇ 박이훈

▷2010년 시집 『수신두절』 로 작품활동

▷시집 『고요의 색으로』 외 2권

▷부산시인협회, 부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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