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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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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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와 마티즈.
횡단보도 정지선에 멈춰선 에쿠스와 마티즈. 에쿠스를 모는 여자가 마티즈를 운전하는 여자에게 묻는다. 저~어기 아줌마 그 마티즈 얼마주고 샀어요? 못 들었는지 대답하기가 싫었는지 대꾸가 없다. 신호가 바뀌었고 다음 신호등 횡단보도 앞에서 또 나란히 멈춰 선 두 대의 승용차… 에쿠스의 여자는 창문을 내리고 또 묻는다. 저기요, 그 마티즈 얼마주고 샀어요? 마티즈의 여자는 뭐라고 답했을까?
내가 생전 처음 구입한 차는 마티즈다. 1996년 면허증을 따고 10여 년 만에 현금 900만 원을 주고 산 차다. 물론 보험료와 기타 추가비용이 더 들었다. 그때 나는 학원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집안 살림과 직장을 병행하려니 힘든 데다 직장까지 버스 코스가 어중간해서 큰마음 먹고 구입한 터였다.
나는 그 녀석을 애칭으로 ‘마티’라고 불렀다. 마티는 내게 무척이나 필요하고 편리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씩 마티 때문에 타인들과 싸워야 했다. 하루는 바쁘게 서면에 갔다가 복개천로 빈 주차 공간에 마티를 세우는데 저 만치서 주차관리인인 듯한 아저씨가 바쁘게 달려오면서 “그~ 거기 차 빼세요.” 하면서 소리친다. 영문도 모르고 차를 빼고 나오는데 뒤따라 온 중형차를 그 자리에 주차시키는 게 아닌가.
그 장면을 쳐다보니 영 기분이 말이 아니다. 참을까 하다가 “아저씨~ ” 하고 크게 불렀다. “나더러는 차 빼라더니 왜 그 차는 주차합니까?” 마치 싸움닭처럼 따졌다. 어느 구청에서 경차는 주차하지 못하게 하라더냐, 나라에서는 경차를 장려하는데 이게 무슨 경우냐, 유럽 부강국가에서도 경차를 선호하는데 아저씨가 무슨 권한으로 경차 주차를 막느냐, 이래서 비싼 기름 값에도 불구하고 다들 중형차를 선호하는 게 아니냐, 차가 경차니까 사람도 경차 같아(사실 나는 체구가 작지만) 보이느냐고 따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아저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더 퍼부었다. 아저씨도 외제 차를 타고 다닙니까? 로 시작해서 아저씨도 서민이면서 서민을 무시하면 되겠느냐는 등. 결국 억지춘향 격으로 나는 그곳에 주차를 했지만 심장이 펄떡거려 좀체 진정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신 새벽 온천장에 목욕을 갔을 때였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빈주차면이 많이 있었다. 마티를 주차장 한가운데에 대려하자 주차관리인이 다가오더니 저쪽 구석에 주차하라고 지시하 듯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물었다. “경차는 목욕 요금을 적게 받나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눈길을 돌렸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처럼 차별 아닌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 어느 대학 후문에서 겪은 일이다. 마티를 몰고 대학을 들어가는데 수위가 주민등록증을 내고 들어가라고 했다. 아니, 불과 며칠 전에 남편이 중형차를 몰고 들어갈 때는 그냥 통과시켜주더니...? 까칠하다면 까칠한 나는 참을 수 없어 얼굴이 벌개지도록 화를 내버렸다.
시내 대부분 사설주차장들도 소형차 무시 관행은 공통이다. 일반 주차면에 세우면 경차용 주차 면이 따로 없는데도 “아줌마 저~어기 좀 세워 주이소” 한다. 요즘은 경차 주차면을 만들어놓고도 요금은 똑 같이 받는다.
내가 이런 관행과 싸우는 것은 내 개인의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라면 항의를 듣고 나면 다음부터는 한 번 생각을 하겠거니 해서였다. 800cc 마티와 이별하고 1000cc 쎄보레로 바꾼 지 몇 년 되었다. 경차이기는 마찬가지다.
경차 운전자에 대한 차별대우는 지금도 여전하다. 때로는 무시했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피하며 산다.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힘없는 주차관리인에게 “비슷한 처지에 너무 차별하시면 복 못 받습니다.”고 말하는 정도다.
김수환 추기경도 경차를 타셨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경차 탄다고 사람 우습게 보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호통을 쳐보지만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이렇게 말하며 코웃음 치는 것 같다. “몰랐니? 승용차가 권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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