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의 드문 남자교수-유아교육·보육 통합에 헌신
교육학을 전공한 임재택에게 유아교육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79년 11월 부산대 가정대학 가정관리학과 전임강사로 교수사회에 첫발을 디딘 임재택이 유아교육과 교수가 된 사연은 이렇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던 1982년 정부가 유아교육진흥 대책을 발표하고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했다. 이에 새마을유아원과 새세대육영회가 설립된다. 새마을유아원이 국가 주요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내무부 소관이 됐고, 전국 시도에서는 시정과가 이를 담당했고, 동마다 새마을유아원이 설립되게 됐다. 이에 따라 교사양성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전두환 정부는 영호남지역 국립대학에 유치원 교사 양성교육을 위한 대학 학과 설립을 요구했다. 특히 부산대와 전남대에 유아교육과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부산대의 경우 사범대학 보육학과가 개설되어 1982년에 과 명칭을 유아교육과로 변경한다. 그래서 임 교수도 1982년 3월 부산대 사범대학 유아교육과로 과를 옮기게 된다.
“당시 사범대학이 난리가 났어요. '탁아과(?)'가 왜 사대에 생겨야 하느냐 교대로 가야하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부터, 유치원 교사는 곧 보모인데 가정대로 가야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교수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유아교육과와 교육학과 교수 간에도 의견다툼이 많았지요. 게다가 부산은 사립유치원이 발달한 반면 공립유치원은 그때 1곳 밖에 없었거든요. 우리나라 최초 유치원도 알고 보면 일본인이 세운 부산유치원이 최초였지요. 당시 유아교육과의 남자교수는 정말 드물었던 시대라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안 나온 게 교수냐고 할 정도였답니다.”
임 교수는 부산대 유아교육과의 기틀을 잡는 노력을 하면서 한편 한국 빈민탁아·보육운동에 적극 나섰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한국사회는 정책적으로 배려 받지 못한 저소득층 아이들과 여성들을 위해 공부방을 증설하고 여성들의 사회참여 보장을 위해 보육시설을 확대할 필요성이 컸다. 이때 임 교수는 도시빈민 탁아운동에서 유아교육 제도 개혁에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면서 탁아법 제정에 앞장섰다. 1987년 이후에는 ‘유아교육을 위한 전국교사모임'에 직간접적으로 자문·지원활동을 하였다. 1990년 10월‘우리아이들의 보육을 걱정하는 모임'을 창립해 회장을 맡아서는 부산의 도시빈민지역 탁아소 설립 ․ 운영을 지원하였다. 이는 민주화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교육운동 등의 연장선상에서 "어린 아이들에게는 보호․교육받을 권리를! 아이 엄마들에게는 일할 권리를!"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도시 빈민지역 아이들의 탁아문제 해소를 위한 제도개혁, 내용개혁을 앞장 서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 1991년 1월 14일 ‘영유아보육법’이 제정·시행되었다. 이는 제대로 된 법체계도 없이 정부 여러 부처에서 중구난방으로 관리되고 있던 보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해 우리나라 보육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임 교수는 이 영유아보육법에 근거하여 국립대학인 부산대학교에 보육교사교육원, 보육정보센터, 어린이집 및 영유아보육연구소의 4개 기구를 포괄하는 한국 최초의 보육종합센터 설립을 주도하였다. 이 센터는 교육부 관할의 유치원과 보건복지부 관할의 탁아소로 이원화된 한국 유아교육 현실에서, 실질적인 유보(유치원과 보육시설) 일원화를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일이라 하겠다. 임 교수는 나아가 일제시기의 잔재인 유보이원화체제의 한국 유아교육제도 개혁을 위해 1996, 97년에는‘국민학교 취학전 1년 만 5세아 무상교육을 위한 연대모임’과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유아교육 공교육체제 실현을 위한 범국민연대모임’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만5세 무상교육을 실현하였으며 유아교육법 제정 등을 주도하였다. 최근 유보통합·일원화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보다 먼저 이 문제를 말하고 지속적으로 대안을 찾아온 사람이 바로 임 교수였다. 임 교수는 학생운동을 했던 여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그 중 상당수가 유아교육에 헌신하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1980, 9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던 많은 학생들이 주로 학력을 속이고 공장에 취업해 소위 공활을 많이 했는데 저 제자들 중 여학생들 상당수는 공활·빈민탁아·보육운동을 하다 보육교사교육원에서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하여 보육시설에 근무하면서 다시 대학 대학원에 들어와 유아교육 공부를 하고 유치원 어린이집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아요. 절실함이 컸던 만큼 어려운 시기에도 일들을 잘 헤쳐나가는 걸 보게 돼 흐뭇한 면이 있어요.”
#아토피문제를 계기로 종래 유아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길로
임재택의 생태유아교육은 이처럼 1980년대 도시빈민 탁아운동에서 1990년대 초 영유아보육법 제정, 1990년대 말 유아교육제도 개혁, 2002년 생태유아공동체 창립으로 이어졌다. 생태유아교육 운동은 교실·수업·교사 중심의 ‘양식(養殖)’ 유아교육을 자연·놀이·아이 중심의 자연산 유아교육으로 우리나라 유아교육과 보육의 흐름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하던 해에 언론에 처음으로 아이들 몸에 아토피가 생겨 사회문제가 됐어요. 희한하게 아토피가 교실에 가둬 키운 아이들한테만 생기는 거예요. 당시 87년 민주화운동 바람도 있었지만 이걸 계기로 제 생각도 완전히 바꾸게 됐어요. 애들을 교육이랍시고 양식하듯 가둬 키워서는 안 된다는 거였죠. 그때 유치원 다니던 제 아들놈도 한 때 유치원안 가겠다고 발부둥친 적도 있어요. 바깥에 좀 더 놀고 싶은데 바로 교실에 앉혀 실내수업을 하는 게 너무 싫었던가 봐요.”
임 교수는 그때 즈음해서 대학에 오기 전에 한국행동과학연구소에서 했던 활동에 반성을 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에서 한 짓을 생각해보니 왜 교육이 행동만 바꿔야 하나 하는 것이었어요.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가 교육이래요. 정말 지나고 보니 대학에서 교육학이라고 공부한 게 다 헛공부였어요, 당시 민주화 분위기에 힘입어 전교조운동이 일어났었죠. 저는 대학친구 유상덕 선생이 주도하는 전교조운동에 적극 지지 동참하는 것이 대학시절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마음으로 교수로서 전교조운동에 참여해 지지선언을 했죠.”
임 교수는 1988, 89년 1년간 미국 위스콘신대에 교환교수로 가 있으면서 그쪽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라는 모습을 보고 정말 부러웠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동안에 줄곧 보아왔던 유아교육 관련 영어원서를 끊고 허준의 『동의보감』, 중국의『황제내경』등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1990년 당시 서울의 빈민촌에서 어느 맞벌이 부부의 어린 남매가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가면서 방문을 밖에서 잠가놓아 심심해서 불장난을 하다 그만 불이나 참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요. 이걸 가수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이란 비합법 음반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는 제목의 노래로 소개를 했는데 너무 가슴을 아리게 했지요. 그 뒤로 탁아법 제정운동에 적극 나서게 됐지요.”
#유치원·어린이집 아이들 살리려 생태유아공동체 만들어 친환경급식 전개
임 교수는 그 뒤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과 화학농업으로 죽어가는 땅과 농촌을 살리고자 사단법인 생태유아공동체를 만들어 친환경급식운동을 적극 펼친다. “유치원·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친환경유기농산물을 먹입시다.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살리고, 농촌도 살리고, 온생명을 살립시다”라며‘아이살림, 농촌살림, 생명살림’의 기치를 내걸고 2002년 3월 생태유아공동체 창립총회를 가졌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있는 유치원, 어린이집 원장들과 당시 김종철 영남대 교수, 도법 스님, 문용린 전 교육부장관, 박기호 신부, 설동근 부산시 교육감,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 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 허병섭 무주생태마을 대표 등 전국적 저명인사들을 고문으로 모시고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비영리단체로 농림부 산하의‘사단법인 생태유아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생태유아공동체가 설립되기 이전인 1998년부터는 유아교육기관의 원장과 교사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생태적 각성, 생명살림의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월례강좌를 개설했다. 각계 각층의 생명사상가, 종교인, 공동체운동 이론가와 실천가, 전통사상가, 자연의학 의사와 한의사, 자연건강·자연농업 관련자 등을 초청하여 생태유아공동체 운동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던 시기였다. 이 강좌는 20년 동안 이어져 생태유아공동체 운동이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생태유아공동체는 사람과 자연이 한 생명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아이와 농촌과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친환경유기농산물을 먹여 건강하고 바르게 기르고자 하였다. 생명농업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생태유아공동체의 친환경급식 운동은 유치원, 어린이집은 물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는 친환경급식을 견인하였고, 오늘날 친환경급식 보편화의 초석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생태유아공동체는 설립 다음해인 2003년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강병수 이사장), 2004년 광주전남생태유아공동체와 대구생태유아공동체가 설립되었고, 2005년 제주생태유아공동체, 2008년 대전충남생태유아공동체(중부권생태공동체로 명칭 변경), 2009년엔 전북생태유아공동체가 잇달아 설립되었다. 농림부 등록 법인체인 (사)생태유아공동체는 2011년 6월에는 광역지자체 단위로 독자적 법인체를 갖고 서로 연대하기로 하면서 그 명칭을 (사)부산울산경남생태유아공동체로 이름을 바꿨다. 2012년에는 산하에 아이살림 평생교육원을 부설기관으로 두었다. 현재 생태유아공동체는 전국에 8곳에서 지역별 특성을 살려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1,300여 곳의 회원시설, 70억 원에 가까운 친환경농산물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생태유아공동체 운동은 생태유아공동체 전국협의회를 중심으로 연대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면서 영유아를 위한 생태적 식생활교육과 생태유아교육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요. 어쨋든 생태유아공동체 운동의 친환경농산물 직거래와 도농교류 프로그램의 활발한 진행으로 전국의 수많은 농촌 친환경 생산자들과 새로운 상생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게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지요. 생태유아공동체의 활성화는 곧 '아이살림 ․ 농촌살림 ․ 생명살림'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하는 것으로서 아이들과 우리의 농촌 농업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담보해내는 과정이었지요. 전국 최초의 영유아 대상 친환경급식은 초·중학교의 급식을 공공급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전국 모든 초등학교가 친환경급식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태유아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임 교수의 부산대 강의도 질이 달라진다. 그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2008년부터 교양학부 강좌로 200~400명이 듣는 대형 강의로 '잘 먹고 잘사는 법'이란 강좌를 개설했다. 그 내용은 소금양치, 물 많이 마시기, 패스트푸드 안 먹기, 화학약품 멀리하기, 걸어 다니기, 헐렁한 팬티입기 등 의식주생활 혁신을 실천하는 걸 과제로 내놓고 생태적 각성과 삶의 실천을 가르쳤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생활 속에서 체크하도록 해 제대로 안 하면 학점을 잘 안 줬다는 것이다. 수강생들은 10여 명을 한 조로 수십 개 조별 과제로 세계 각국의 민족전통의학이나 동·서양의 자연의학에 기초한 생활건강법을 연구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의식주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한데 교양과정이다 보니 뭔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기에 고심하다 인바디 검사를 받게 했죠. 그래서 수강 전과 종강 때 인바디 검사를 해 변화한 정도만큼 학점을 잘 줬죠. 그랬더니 아토피가 사라졌다거나 변이 좋아졌다거나 체중이 평균 3-5㎏ 줄었다는 사례가 많이 쌓였어요. 임 교수의 이러한 강의 내용은 한겨레신문(2013년 3월 16일자, '건강해져야 A+받는 강의')와 조선일보(2013년 7월 13일자, '살 빼고 체지방 줄이면 A+받는 대학가의 별난 강의')에까지 소개될 정도였어요."
#아이들 실내 수업에서 벗어나 숲으로 데려가는 ‘숲유치원운동’ 펼쳐
임 교수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형 숲유치원’ 모델을 제시해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는 사실이다. 임 교수는 2010년 5월 사단법인 한국숲유치원협회를 설립해 초대, 2대 회장을 맡아 숲유치원이라는 이름의 유아숲교육 운동을 전개해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확산하였다. 그는‘숲과 아이들의 행복한 만남, 숲유치원’,‘수입형 숲유치원이 아닌 한국형 숲유치원’,‘어린 아이들을 숲으로 데리고 가는 선업(善業)을 짓자’,‘숲유치원 활성화에 동참하는 유아교육 혁명가가 됩시다!’ 등의 구호를 내걸고 아이들을 숲으로 데리고 나가는 국민운동을 주도한 것이다.
숲유치원은 1990년대부터 생태유아교육의 일환으로 아이들을 산과 들과 냇가로 데리고 다니는 산책프로그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자연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임 교수가 늘 말해온 밀집된 아파트, 콘크리트 유치원, 콘크리트 어린이집에 갇혀 양계닭처럼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숲으로 자연으로 데리고 나가 토종닭처럼 키우고자 하는 소망을 현실화한 것이다.
한국숲유치원협회는 2010년 창립 당시 50여 곳의 회원 시설이 2012년 말에는 무려 1,000여 곳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전국 17개 시·도에 지회를 결성하여 정부기관인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의 협조 하에 한국형 숲유치원의 전국 확산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을 숲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한 고민을 하던 중, 2012년 녹색사업단의‘녹색자금 지원사업’에 ‘한국형 숲유치원 활성화를 위한 원장ㆍ유아교사ㆍ숲해설가 연수과정’지원사업이 눈에 띄었어요. 이때 신청을 해 전국 17개 지회에서 약 2,400명의 원장ㆍ유아교사ㆍ숲해설가를 대상으로 숲교육을 실시했어요. 이 교육을 통하여 숲유치원 활동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전국에 숲교육을 확산하는 큰 계기가 됐죠. 또한 산림청 및 한국마사회, ‘사단법인 나를 만나는 숲’과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숲유치원 국내·국제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열었구요. 한국숲유치원협회와 전국 시도 협력을 통해 숲유치원 활성화 전국보고대회, 유아숲지도사 양성과정 개설 운영, 전국 시도별 유아숲체험원(장) ․ 유아동네숲터 조성 및 숲유치원 활성화를 위한 조례 제정 등의 운동을 줄곧 전개해오고 있어요.”
임 교수는 2010년 산림과학기술개발 사업의 총괄연구책임자를 맡아 2012년부터 3년간 국내·외 숲유치원 운영실태 및 운영방안, 활성화 방안에 대한 기초연구와 숲이라는 자연생태교육 현장의 식물, 곤충, 야생조류에 대한 조사를 통해 생태학습 콘텐츠 확보에 노력했다. 또한 숲에서 겪는 아이들 경험의 의미를 질적으로 연구하고, 숲유치원 아이들의 체격, 신체조성 및 체력을 분석하고, 숲 경험의 교육적 효과를 분석하는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하여 숲교육의 이론체계 정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애써왔다.
이런 노력이 알려져 2013년 10월 18일 제12회 산의 날에는 산림청 추천 '녹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한국숲유치원협회 창립 회장으로서 숲유치원의 전국적인 활성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숲유치원의 중요성 인식 확산에 앞장섰다고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시대 공약 이행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준 것이었다.
#행복한 아이를 만들려면 부모교육부터 시작해야
“요즘 일부의 젊은 세대들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힘든 일 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요. 우리의 교육과정이 결혼의 사회적 의미와 부모의 올바른 역할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2013년‘즐거운 부모·행복한 아이’라는 주제로 영·유아부모와 예비부모들을 대상으로 '좋은부모 자격증반'을 열었어요. 부모다움과 가정의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부모의 모습을 바로 세우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이기도 했죠. 현재 우리사회는 종족보존 본능이라는 자연의 순리조차 거스르며 출산율 최하위 수준, 자연출산율 세계 최하위 수준, 모유수유율 세계 최하위 수준의 위기를 겪고 있잖아요. 조제 이유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에 비싼 장난감을 사주고 학원에 보내야 부모 노릇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날 우리사회의 부모 대부분이 가족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인간다움의 부재, 과잉교육열, 육아의 상품화, 가정교육관의 부재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 할 수 있죠.”
이런데서 임 교수는 ‘좋은부모 자격증’ 운동은 부모상(像)을 전통적인 것에서부터 현대에 맞게 새롭게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좋은부모 자격증 운동은 2013년 진주시와 생태유아교육학회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예비부모반(고3 수험생을 위한 예비부모교육반), 영아부모반, 유아부모반, 아버지교실 등을 개설했다. 2015년에는 경기도 시흥시, 부산시 해운대구와 협약을 맺고 생태부모학교를 열기도 했다.
임 교수는 정년퇴임 후 다음해인 2015년 4월에는‘사단법인 부모애숲’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이제는 생태유아교육에서 생태부모교육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부모애숲은 아이와 부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숲길코스와 숲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부산시어린이회관, 부산어린대공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 다양한 숲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진정한 교육은 부모에서 시작되는 거죠. 좋은부모 교육운동은 교육의 근본을 되찾는 것이며 이를 통해 아이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살리는 것입니다. 아이교육을 이야기하기 전에 부모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정말 우리나라 유아교육 분야에서 임 교수는 코페르니쿠스 같은 존재였고 생태유아교육의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했다. 임 교수의 제자인 김은주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2014년 2월 임 교수의 정년퇴임식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기록앨범을 만들어 임 교수에게 헌정하였다. 김 교수는 스승에게 바치는 헌정기록앨범에서 다음과 같이 스승의 업적을 평가하였다.
“우리의 스승인 임재택 교수는 참살이꾼으로서의 삶, 교육운동가로서의 삶, 학문연구자로서의 삶, 생명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계속)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