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時調)가 있는 인저리타임】 추사 유배지에서 - 박홍재
박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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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7 11:07 | 최종 수정 2023.09.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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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유배지에서
- 신 유배 생활
박홍재
예산댁 스무 살에 서귀포로 시집와서
뭍으로 아직까지 친정 한번 못 가봤다
이웃들 제주 사투리 알겨먹는 그 소리에
검은 머리 흰 물 배게 제주살이 정붙이니
남들은 오가는 것 잘도 가고 오더니만
신행이 귀양길 될 줄 꿈도 꾸지 않았는데
젊어서 살림이야 깨도 살짝 볶았지만
간다는 기별 없이 갑자기 떠난 양반
산방산 바람 소리에 안 들린 지 오래다
도로보다 더 낮아도 눈에 띄는 진성식당
푸념 풀어 끓인 국수 맛있다는 말에 들떠
추사의 유배지 덕에 여태 발목 잡혔다
- 2022년 세종도서 선정 시조집 《바람의 여백》에서
<시작 노트>
제주도 여행 중에
추사 유배지를 보고 나니 배가 고프다.
앞쪽에 진성 식당이 있어 찾아 들었다.
신행이 귀양길 되었다며 푸념으로 말하는 식당 주인.
신랑도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고 난 뒤 고향을 가지 못했단다.
어쩌면 추사의 유배지에서 현대판 유배가 아닌가 싶다.
왜 친정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뭍으로 나간다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뭍에서 오기는 쉬워도 말이다.
◇박홍재 시인
▷2008년 나래시조 등단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2022년 세종도서 선정)
▷여행 에세이 『길과 풍경』
▷웹진 인저리타임에 시조 연재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인저리타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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