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다스 소송비용 삼성 대납 증거로 자수서 법정 공개
MB 측 "변호사 '사기' 가능성…삼성뇌물 혐의 무죄" 주장
삼성이 과거 이건희 회장의 사면을 기대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다스 소송 비용을 대납했다는 관련자 진술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삼성 측이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을 대신 내준 것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본 검찰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진술이다.
검찰은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 재판에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자수서를 공개했다.
이 자수서는 이 전 부회장이 지난 2월 검찰에 출석하며 제출한 것이다.
이 전 부회장은 자수서에서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을 대납한 경위를 설명했다.
이 전 부회장에 따르면 미국의 다스 소송을 맡았던 로펌 '에이킨 검프(Akin Gump)'의 김석한 변호사가 2008년 하반기나 2009년 초 이 전 부회장을 찾아왔다.
김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과 관련한 미국 내 소송 등 법률 조력 업무를 에이킨 검프에서 대리하게 됐다. 대통령을 돕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비용을 청와대에서 마련할 수 없고 정부가 지급하는 건 불법이니 삼성이 대신 부담해주면 국가적으로도 도움되고 청와대도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수서에는 김 변호사가 "이런 제안을 청와대에 했더니 대통령과 김백준 기획관도 그래 주면 좋겠다고 했다"는 말도 했다고 기재돼 있다.
이 전 부회장은 "김석한이 제게 '청와대 법률이슈 대리 비용이라면서 '구체적으로 말할까요'라고 하기에 '나랏일인데 내가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고 자수서에 적었다.
이 전 부회장의 기억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그 후 몇 번 이 전 부회장 사무실에 들러 다스의 소송 비용 얘기를 2∼3차례 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께 그 내용을 보고드렸더니 '청와대 요청이면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김석한에게 삼성이 에이킨 검프 소송 비용을 대신 부담하겠다고 했다"며 "이후 실무 책임자를 불러 김석한에게서 요청이 오면 너무 박하게 따지지 말고 잘 도와주라고 지시했다"고 적었다.
이 전 부회장은 지급 내용에 대해선 "에이킨 검프가 삼성전자에 청구하면 그 비용을 대신 지급했다. 300만불∼400만불 정도 되고, 본사에서 직접 고문료 형태로 지급하다 미국 법인에서도 별도로 지급하기도 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고 기억했다.
이 전 부회장은 그 후 김백준 기획관으로부터 "삼성이 대통령을 도와주기 위해 에이킨 검프에 지급한 돈 중 남은 돈을 김석한이 보관하고 있는데, 그걸 돌려달라고 했더니 김석한이 '그건 삼성에 돌려주는 게 맞다'고 했다"는 말도 들었다고 적었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이 다스 소송 비용을 대납한 이유에 대해선 "당시 삼성에서 대통령 측 미국 내 법률 비용을 대신 지급하면 여러 가지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기대를 한 게 사실이다"라고 털어놨다.
특히 "삼성이 회장님 사면을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는 청와대에도 당연히 전달됐을 것이다. 저희가 소송 비용을 대신 지급하는 게 나중에 사면에도 조금은 도움되지 않겠나 기대를 가진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전 부회장은 검찰 수사 당시 해외에 체류 중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수사 소식을 듣고 조기 귀국했다.
그는 자수서에서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사건이라 저의 잘못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법적 책임을 감당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 조기 귀국했다"며 "당시엔 회사와 회장님을 위한 거라 믿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못된 판단"이라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이 전 부회장의 진술이 뒷받침하는 삼성의 '소송비용 대납' 의혹은 뇌물 혐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강훈 변호사는 "김백준의 초기 진술에 따르면 김석한 변호사가 제안한 것은 무료 소송으로, 이를 통해 삼성이나 현대 등의 다른 일거리를 밀어줄 것을 기대한 것"이라며 "무료변론이라면 이 전 대통령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무료 소송인지 대납 소송인지에 관해 이 전 부회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진술이 엇갈리는 것을 두고 "(변론을 제안한)김석한 변호사가 사기를 벌였을 가능성이 큰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도 했다.
김 전 기획관이 초기와 달리 나중에 대납 소송이라고 진술한 데 대해서는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 영향이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아울러 강 변호사는 삼성 측이 에이킨 검프에 월 12만5천달러를 송금할 때 사용한 '프로젝트 M'이란 설명은 이 전 대통령(MB)에 대한 법률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반도체 중국(Mandarin) 진출 사업을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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