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연평균 기온 10년당 0.18도 상승…2070년 한해 절반이 여름
전문가 "적극적 대응 필요" 한목소리…일부 지자체 아열대화 준비 중
(전국종합=연합뉴스) 폭염은 흔히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불린다.
요란하게 들이닥쳐 막대한 인명피해를 주는 지진, 태풍과 달리 슬그머니 찾아와 장기간 이어지며 야금야금 사망자 수를 늘려가기 때문이다.
100년이 넘는 기상 관측 사상 낮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오른 적은 1942년 8월 1일 대구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올여름 강원도 홍천에 수은주가 41도까지 치솟는 등 무려 7곳이 40도를 돌파했다.
공식 관측소가 있는 전국 95곳 중에서 64.2%에 해당하는 61곳의 역대 최고기온도 새롭게 작성됐다.
이처럼 연일 살인적 무더위가 이어지며 온열질환자도 속출하고 있다.
특히 냉방 정책보다 난방 정책에 더 집중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처럼 이례적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6일까지 전국 온열질환자는 4천301명으로 역대 최다를 경신했으며 이 중 48명이 숨졌다.
◇ 지구온난화의 역습…기후변화에 몸살 앓는 한반도
국립기상과학원은 올여름 한반도를 덮친 '살인적 폭염' 원인을 지구온난화 때문이라 분석했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세계 이산화탄소 농도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45%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북극 둘레를 시계 방향으로 강하게 불면서 종종 강한 바람을 만들어 내는 제트기류마저 약해졌다.
추운 극지방이 따뜻한 낮은 위도 지역보다 더 빨리 데워지면서 제트기류 속도가 저하, 고기압이 한 곳에서 장기간 머물며 지표가 빨리 뜨거워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발맞추기라도 한 듯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9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6년 동안 10년당 0.18도 폭으로 상승했다.
이 추세라면 서울의 경우 2001∼2010년 열흘가량이던 폭염일수가 2071년이 되면 73.4일로 늘어나고, 121.8일이던 여름 길이도 169.3일에 달하는 등 1년 중 절반이 여름이 될 거라는 비관적 시각도 있다.
정부는 한시적 누진제 완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누진제 폐지 vs 완화라는 케케묵은 논란만 반복됐을 뿐 시민들로부터 시큰둥한 반응만 나왔다.
◇ "정부와 지자체 적극 대응해야"…인프라 개선·도시계획 등 필요
한반도 아열대화가 눈앞에 닥친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근본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임영신 박사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취약성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회복력을 지닌 도시를 만들기 위해 폭염·도시 열섬에 대응한 인프라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 박사는 선도사업 사례로 '그린 스트리트', '쿨 루프·쿨링 포그 시스템', '쿨 페이브먼트', '벽면 녹화' 등을 제시했다.
박병기 순천향대 에너지환경공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화석연료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 등의 방출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유엔 등 보고서를 보면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적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기상과학원 변영화 기후연구과장은 "2100년에는 전 지구 평균 기온이 약 4도 올라갈 것으로 보여 우선 정부 차원에서 획기적인 이산화탄소 감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도심 열섬 현상이 극대화되고 있으므로 바람길을 만들고, 하천을 복원하는 등 도시계획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하라'…지자체·관계 기관 대책 고심
아열대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진행 속도에 뒤처지지 않게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은 재작년 아열대과수담당을 신설하고, 지난해 아열대 과수 도입 시범사업을 계획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새로운 작목은 리치, 아보타도, 아떼모야, 망고, 레드베이베리, 파인애플, 올리브 등이다.
연안 수온이 치솟아 서해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해역이 사실상 아열대화한 바다 생태계도 사정이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서영상 자원환경과장은 "현재 우리 바다에 사는 물고기 상당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열대성 어종들이 대신할 가능성에 대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새로운 수산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한인성 박사는 "최근 우리나라는 여름철에는 30도를 넘는 고수온이 발생하고, 겨울철에는 한파로 수온이 급락하는 등 양극화가 뚜렷하다"며 "아열대 기후나 추운 날씨에도 잘 적응하는 새로운 품종의 개발, 양식장의 위치 이동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고심이다.
충북도는 환경업무를 전담하는 국(局)과 그 안에 기후대기과 및 기후변화팀을 신설하고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기후변화 적응대책 세부시행계획을 통해 물관리 등 총 8개 부문 53개 사업을 선정, 2021년까지 연차별로 총 1조2천302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매년 세부사업별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리스크 평가를 통해 수정·보완을 해나가고 있다"며 "기후변화 적응대책은 많은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계획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창해 김호천 김동철 차근호 이강일 김준호 박철홍 박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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